승부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저자, 장자크 상페 그림, 박종대 역자 / 열린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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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의 파트리크 쥐스킨트다. 『향수: 어느 살인자이야기』를 90년대 언제쯤인가 읽은 것이 마지막이다. 꽤나 충격적인 작품이어서인지 도무지 『비둘기』 또는 『좀머씨 이야기』를 쓴 작가의 작품으로 여기지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전자가 독특한 사건에 대한 서사에 집중했다면 뒷쪽의 두 책은 평범한 삶의 한 단면을 길고 자세히 바라보는 책이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대수롭지 않은 일상을 자세히 펼쳐보여 독자로 하여금 주변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좀머씨 이야기』에서는 끊임없이 떠도는 남자를, 『비둘기』 에서는 집 앞에 나타난 비둘기를 이야기의 단서로 삼았다. 단편 『승부』의 실마리는 체스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승부』는 1994년에 출판된 『깊이에의 강요』에 포함된 단편이다. 열린책들의 <2020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판>에서는 장자크 상페의 그림과 함께 독립된 한 권으로 출판됐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기름한 책의 판형과 패브릭 장정에 시원한 편집이다. 채 100쪽이 안되는 내용이어서 잡고 앉으면 단숨에 읽을만 하지만 상페의 유머러스한 그림들을 차근히 살펴보며 느긋하게 읽기를 권하고 싶다. 독서란 누구와 승부를 내야하는 일은 아니므로.

거리는 "두 명의 체스꾼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삶의 축소판과 같은 이야기"라는 출판사의 소개 그대로다. 마을의 체스 챔피언 장은 어느 날 저녁 무렵 처음 보는 맞수를 만난다.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젊은이는 단숨에 구경꾼들의 호감을 산다.


구경꾼들의 관심은 온통 도전자에게 쏠려있다. 까만 머리에 파리한 얼굴, 상대를 깔보는 듯한 짙은 눈의 젊은이다. 남자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표정 변화도 없다. 이따금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넣고 이리저리 뱅뱅돌리기만 하다. 전체적인 인상은 세상 모든 일에 관심이 없어 보이는 냉담함이다. p.9


포커 페이스에 말이 없는 이 도전자는 장마저도 주눅들게 만들고 체스가 시작되지마자 모두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수를 둔다. 체스판 주변에 모여든 모두는 젊은 고수에게 열광한다. 그가 무슨 수를 두어도 환호한다. 심지어 퀸을 희생시키는 수에 감탄을 쏟아낸다. 누구도 이런 수를 둔 적은 없다면서.


어찌 됐건 구경꾼들은 체스판에 첫수가 두어지기 전에 이미 이 남자가 지금껏 자신들이 내심 기대해 온 기적, 즉 이 동네 체스 챔피언을 무너뜨리는 기적을 모두에게 보여줄 재야의 숨은 고수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p.12


주변에 둘러선 구경꾼들은 하나같이 체스를 좀 둔다는 사람들이지만 이제껏 이런 수를 실전에서 둔 적은 없다. 이게 바로 진정한 고수의 포스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모름지기 고수란 어느 순간이건 독창적이고 위험한 수를 과단성 있게 두는 사람이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보통의 체스꾼과는 차원이 다르다. 때문에 일반 체스꾼은 고수의 수를 일일이 이해하려고 할 필요가 없다. p.19


구경꾼들은 누가가 촉촉해지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낀다. 자신들은 그렇게 두고 싶지만 감히 두지 못하는 수를 이 젊은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실행에 옮기고 있지 않은가! 물론 젊은이가 왜 저렇게 두는지는 이해가 안 된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 그럼에도 이 젊은이처럼 두고 싶다. 저렇게 당당하고, 승리의 자신감에 넘치고, 나폴레옹처럼 영웅적으로 싸우고 싶다. p.34


장은 당황한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당연히 의도했다는 듯히 퀸을 갖다 바치는 상대에게 오히려 송구해해지기까지 한다. 이 수에 뭔가 다른 꾀가 숨어있지는 않은지, 자기가 못 본 수가 있는 건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그들이 아는 챔피언은 분명 조심조심 이 애매한 궁지에서 벗어나려고 할 것이다. 신중한 지연 전술이다. p.22


장처럼 소심하게 망설이듯이 질질 끌며 두고 싶지는 않다. 이유는 분명하다. 그들 자신이 실전에서는 장과 똑같이 두기 때문이다. p.34


혜성처럼 등장한 신참은 과연 진정한 고수였을까. 장은 경기를 이길 수 있을까. 이런 궁금증이 책장을 성급히 넘겼다. 경기는 끝나고 장은 체스를 그만두기로 결심한다. 경기의 승패를 떠나 자신이 "체스를 두는 내내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욕보였"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승자의 자리에 머문 장은 언젠가 멋진 패배를 맛보기를 바랐던 모양이다. 이겨야한다는 부담감, 동료들로부터 받는 질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 한 번의 패배가 오늘이리라 기대한 탓이었는지 장의 눈이 흐려졌다. 그렇게 한심한 초짜를 알아보지 못한 거다. 장은 홀로 막 끝난 경기를 복기하며 스스로에 대해 이런 생각들을 떠올렸다.


솔직히 장은 이렇게 고백해야 한다. 그도 다른 이들과 다르지 않게 이방인에게 경탄했고, 그와 함께 자신이 수년 전부터 그렇게 기다려 온 패배를 마침내 그 인간이 최대한 강렬하고 기발한 방식으로 맛보게 해주기를 소망했다고 말이다. 그래야 자신은 언제나 최고여야 하고 어떤 상대든 무너뜨려야 하는 짐을 벗어던질 수 있고, 그래야 질투로 찌든 그 망할 놈의 구경꿈들에게 즐거움을 안겨 줄 수 있고, 그래야 스스로 평온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p.64


오늘 실제로 패배한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복수할 기회가 영영 없고, 미래의 어떤 빛나는 승리로도 만회할 수 없기에 더더욱 비참하고 결정적인 패배였다. p.64


경기의 예의도 갖출 줄 모르는 무뢰한에게 졌음에도 장은 홀로 경기를 복기한다. 그런 초짜를 알아보지 못했음에 분하기도 할테고 자신에게 한 번의 지지도 표하지 않은 구경꾼들에게 화가 났을 법하다. 하지만 장은 자신에게만 몰두한다. 왜 신참을 알아보지 못했는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경기를 질질 끌었는지, 그게 자기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말이다. 오랜 시간 챔피언의 자리를 지킨 이유가 드러난 장면이다. 경기에 대해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 끝까지 생각하고 분석하는 것. 이런 점이 "냉정하게 분석하려 하지 않"고 경기가 끝나자 마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리를 뜬 체스꾼들과 장이 구별되는 점이었을게다. 경기를 엎어 버리다시피 하고는 인사도 없이 자리를 뜬 "체스의 <체>자도 모르는 신출내기"는 말할 것도 없이.


분위기에 휘둘릴 때가 있다. 뭔가 미심쩍은데도 그냥 믿어야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때가 있다. 남들이 그렇다고 하니 그렇게 보이는 경우가 있다. 체스판을 둘러쌌던 구경꾼들처럼 보고싶은 대로 보게되는 그런 일이 있다. 눈에 뻔히 보이는 증거들도 외면하며 자기 합리화에 매몰되기도 한다. 장이 냈던 용기를 기억하고 싶다. 자신이 행하는 일이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만드는가를 생각할 수 있다면 좋겠다. 장의 복기처럼 지나 간 일을 차분히 되짚어볼 수 있다면. 그것이 누군가를 해하거나 잘못된 일이 아닐지라도 스스로의 가치를 무시하는 일은 아닌지 깨우칠 수 있다면 좋겠다. 경기 후의 복기처럼 비록 모든 일이 끝난 후, 조금 늦더라도 말이다.


장자크 상페의 삽화는 이야기를 따라가지 않는다. 그저 공원 풍경을 보여주고 체스판 위의 순간을 유머러스하게 보여준다. 삽화에 등장하는 너른 공원 한쪽에 장이 앉아 있을 것같고, 장이 체스를 두는 시간의 파리가 이런 풍경이리라 상상했다. 그림에 상상을 더하는 여유를 즐긴 독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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