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르게네프의 햄릿과 돈키호테 교양 고전 Pick 1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 지음, 임경민 옮김 / 지식여행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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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부단한 ‘햄릿형 인간’과 저돌적인 ‘돈키호테형 인간’ 유형을 최초로 제시한 고전

뒷표지 中


햄릿형 인간과 돈키호테형 인간에 대해 어디선가 한 번 쯤은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한쪽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느라 내내 결정을 유보하는 인간형, 다른 쪽은 앞뒤 가리지 않고 일단 행동하고 보는 인간형. ‘햄릿’과 ‘돈키호테’가 유명한 만큼 극단적으로 다른 두 가지의 인간형 구분에 대한 이런 저런 말은 많이 들었지만 정작 그 말의 출처를 확인한 사람은 드물 것이다. 햄릿과 돈키호테로 인간유형을 구분한 사람은 러시아 작가 투르게네프다. 그는 1860년 페테르부르크에 있는 ‘궁핍한 작가‧학자 구제협회’의 대중 낭송회의 강연에서 이러한 인간형의 구분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대개 햄릿형 인간인가 또는 돈키호테형 인간인가에 대해 논하는 경우는 사람의 성향에 대해 이야기할 때일 것이다. 사고력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큰 사람은 햄릿형으로 실천력이 돋보이는 경우는 돈키호테형으로 불린다. 누군가는 “사색적이고 우유부단한 인간”이고 다른 쪽은 “앞뒤 재지 않고 좌충우돌하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투르게네프는 모든 사람이 “이 두 유형 가운데 어느 하나에 속해 있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론 어느 한쪽에만 속하는 인물은 드물다고 말한다. 해제를 쓴 디타 뮐레로바(체코 흐라데츠 크랄로베 대학교 철학과) 교수의 말처럼 투르게네프는 “인간 본성의 기본원리”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이들은 두 대척적인 경향의 극단적 표현에 불과하다. 삶은 이 두 극단의 어느 한쪽을 향해 움직이지만 그들 중 누구도 한쪽에 도달하지는 않는다. 모든 것을 검토하고 탐색하는 분석의 원칙이 《햄릿》에서 비극의 극단으로까지 뻗어 나갔던 것과 마찬가지로 《돈키호테》에서는 열정이 정반대 편에 있는 희극의 상황으로 몰려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현실 속에서 사람들이 순수한 희극이나 온전한 비극을 만나는 일은 극히 드물다. p.74


여기서 반전이 있었다. 투르게네프가 단지 문학사상 가장 유명한 캐릭터를 빗대 인간 유형을 구분하는 목적만으로 이 글을 쓴 것이 아니었다. 투르게네프는 글에서 돈키호테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반면 햄릿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돈키호테는 “신뢰,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그 무언가에 대한 믿음”으로 전형화되는 인물이라고 평하면서 “자기희생의 완벽한 화신”으로 추앙하고 있다. 반대로 햄릿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인물”로 진단하면서 “그 자신에 관해 혼란스러워하는 인물”이라고 말한다. 모든 사람이 이 두가지 유형 중에 한 쪽에 속한다고 말하려면 한 쪽을 일방적으로 저평가해서는 안 될텐데 말이다. 왜 이렇게 기울어진 평가를 한 것일까. 디타 뮐레로바 교수의 해제에 답이 있었다.


투프게네프의 <햄릿과 돈키호테>가 편찬된 시기는 러시아 사회 개혁의 시기였다. 이때는 “국가의 필요한 변화를 달성할 수 있는 사회적 영웅” 즉 “새로운 인물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그 당시 문학비평 분야에서 더 선호되던 햄릿 캐릭터 보다는 돈키호테에게 더 많은 비중을 두게 된 이유다. 사회적 허영심, 회의론, 이기주의를 내보이는 햄릿형 인간보다 “이상에 헌신하고 그 이상을 위해 고통을 감내하는” 돈키호테형 인간이 더 필요했기 때문이다.


투르게네프의 소책자는 셰익스피어의 비극과 세르반테스의 소설에 대한 역사문학적 분석이 전혀 아님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p.101


투르게네프는 당시의 사회 상황이 자신의 견해에 끼친 영향 아래서 자신의 사상과 이념을 표현하고 있는데, 그의 견해는 시대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p.109


지식여행 출판사의 『투르게네프의 햄릿과 돈키호테』읽으면서 든 의문점이 있다. 책은 3개의 장과 해제 그리고 옮긴이의 말로 구성되어 있다. ‘2장 햄릿과 돈키호테’는 투프게네프가 쓴 글이다. ‘1장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의 같은 듯 다른 인생’과 ‘3장 햄릿과 돈키호테 안의 광기’는 투르게네프가 아닌 다른 저자의 글로 보인다(1장은 확실히, 3장은 아마도). 해제를 쓴 디타 뮐레로바의 인용 중 3장의 내용은 없다. 3장의 글은 두 캐릭터가 공히 ‘광기’를 표출하는 인물들임을 주장하고 있다.


돈키호테와 햄릿은 사내다운 전사이다. 전자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미친 사람이지만 후자는 확실히 광기에 사로잡혀 있다. 어쨌든 두 인물은 미친 상태로 불의와의 전쟁에 나선다. 둘 다 똑같이 “무모하다.” p.84


2장의 주장과 반대되는 내용도 종종 나타난다. 예를 들어 2장의 햄릿은 “일반 백성들을 혐오”(p.52)하지만 3장에서는 “하층민들에게 신경을 쓰고 온정적”(p.89)이다. 또 2장에서는 오필리아에 대한 햄릿의 감정이 “냉소적이거나 과장되어”(p.58) 있다고 평한 반면 3장에서는 같은 인용구에 대해 “오필리아를 향한 햄릿의 사랑”의 “진실이 드러난”(p.95) 장면이라고 말하고 있다. ‘3장 햄릿과 돈키오테 안의 광기’의 저자는 누구일까. 투르게네프가 햄릿과 돈키호테의 유사성을 ‘광기’에서 찾고 싶어 쓴 글일까. 그렇다면 2장과 3장의 글에서 보이는 괴리의 이유는 무엇일까.


“한 시인을 제대로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그 시인이 살아온 환경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 괴테 p.34


투르게네프가 인용한 괴테의 문장처럼 『햄릿』과 『돈키호테』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가 살았던 시대를 알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투르게네프의 햄릿과 돈키호테』를 이해하기 위해선 작가가 살았던 19세기 러시아를 알 필요가 있다. 이 책은 햄릿과 돈키호테를 문학의 테두리안에서만 다루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학 작품으로서의 『햄릿』과 『돈키호테』를 알고자 하는 독자보다는 투르게네프가 문학을 통해 자신의 시대를 바라본 시각이 궁금한 독자에게 더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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