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눈
딘 쿤츠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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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타게 엄마를 부르는 아이가 있다. 아이는 어떻게든 엄마의 주의를 끌려한다. 장난감들을 흩어놓고 침대를 흔들고 라디오를 만지작거린다. 그렇게 방이 시끄러워도 엄마가 알아채지 못하자 자기 방의 칠판에 쓴다.


죽지 않았어. 

p.42


티나는 1년 전 버스 사고로 아들 대니를 잃었다. 겨울 캠프에 갔던 아들은 두 명의 인솔자와 열네 명의 아이들이 사망한 사고의 희생자가 됐다.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한 커리어 덕분에 슬픔을 잊어가던 티나는 몇 주 전부터 꿈을 꾸기 시작한다. 아들의 꿈, 자신을 구해달라며 손을 내미는 아들의 꿈 말이다. 이미 죽어 장례를 치른 지 오래다. 티나는 자신이 미쳐가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한다. 하지만 의심에만 머무르기엔 아들의 목소리가 너무나 또렷하다. 혹시 아이가 정말 살아있는 건 아닐까. 어떻게 하면 확인할 수 있을까.




딘 쿤츠의 장편소설 『어둠의 눈』은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엄마와 아이의 죽음을 덮으려는 거대 권력의 이야기다. 근작 『위스퍼링 룸』을 읽으면서 액션 스릴러물의 대가를 만난 듯했다. 약자의 정의를 쫒아 거대 권력에 맞서는 여성영웅 서사가 인상적이었다. 스티븐 킹과 나란히 서스펜스 소설의 양대산맥으로 불린다는 말이 수긍이 갔다. 딘 쿤츠의 『어둠의 눈』은 40년 전에 씌인 소설이다. 1981년에 처음 출판됐고 1996년 초판을 수정한 개정판을 냈다. 초판 출간시의 세계는 냉전 중이었고 개정판이 나올 즈음엔 냉전은 종식돼 있었다. 소설 속에는 생물학 무기 개발 경쟁과 국가 권력에 희생되는 힘없는 개인의 이야기가 맞물려 있다.


거대 권력은 자신들만의 대의를 위해 진실을 숨긴다. 권력의 장벽 뒤에 약자의 희생은 가려진다. 정부가 어긴 규칙, 그 뒤에 숨겨진 진실이 드러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책에서 국가 권력 남용의 사례로 ‘웨이코 포위전(1993)’과 ‘루비 리지 사건(1992)’이 등장한다. 미국 사람들에겐 이 사건들이 국가 권력의 폭주를 대표하는 사건인 모양이다. 타라 웨스트오버의 『배움의 발견』에서는 이 일들로 인해 국가의 보호를 기대하지 않고 스스로 자구책을 모색하는 가장이 등장한다.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상상은 실제 세계에서도 소설 속에서도 믿을 수 없지만 존재하는 현실이다.


“대니의 죽음에 뭔가 있군…… 스카우트 단원들이 모두 죽은 게 이상하긴 하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과 진실은 달라. 그 버스 사고…… 거짓말이지?” p.190


“… 이건 국가안보 사업이라고, 친구. 아주 큰 사업이란 말이야. 정부는 마음만 먹으면 규칙을 어길 수도 있어. 결국 정부가 만든 거니까.” p.192


“… 웨이코 포위전을 생각해보세요. 아이들도 다 죽었습니다. 루비 리지 사건에서는 FBI가 쏜 총에 열네 살 짜리 소년이 죽었죠. …… 아무리 좋은 정부라 해도 덩치가 커지면 아주 못된 상어 같은 놈들이 어두운 물살에 숨어 휘젓고 다니게 마려이에요. 우리는 이런 이상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티나.” p.257


귀신이 나타날 것 같은 심령물의 분위기로 시작한 이야기는 전직 국가 기관 출신의 변호사가 등장하며 액션물이 되는가 싶다가 오컬트 소설로 마무리된다. 현실에 기초한 이야기를 기대했던 독자로선 생뚱맞은 결말일 수도 있다. 그리고 ‘코로나19’의 등장을 40년 전에 예견해 세계적인 역주행 베스트셀러가 됐다는 홍보에 책을 집어든 독자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코로나19를 예견했다기 보다는 냉전시대에 군비경쟁의 일환이었던 생물학 무기 개발이 소재로 등장할 뿐이다.


내겐 ‘코로나19’와 관련된 ‘우한’에 대한 부분보다 예상치 못한 재난을 만난 후 일상을 그리워하는 주인공 티나에 대한 묘사에 더 마음이 갔다. 우리 곁에도 사회적 타살이라 불릴만한 재난에 희생당한 이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희생자들의 남은 가족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티나에게 일어났던 ‘비논리적인 일’이, 진실을 담은 ‘비논리적인 일’이 우리에게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평범하고 행복한 일상의 한가운데서 평범하게 식사를 즐기며 평범한 저녁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오래오래 편안하고 평범한 삶을 기대할 만반의 이유를 갖고 싶었다. … 이들은 자신이 얼마나 운이 좋은지 모르고 있다. 티나는 자신과 이들 사이에 절대로 메꿀 수 없는 엄청난 차이가 벌어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p.265


"알아요. 하지만 이 세상은 비논리적인 일로 가득하죠. 그 비논리적인 일이 진실이고요. 이번 일 역시 그렇죠.“ p.282


티나는 주변을 맴도는 비현실적인 아들 대니의 존재를 통해 눈에 보이는 현실이 아닌 진실이 따로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해할 수는 없었어도 다른 이야기를 하는 어떤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실마리를 끈질기게 쫓은 끝에 아들을 찾을 수 있었다. 숨겨졌던 진실과 함께. 우리 주변에도 우리가 알아채주길 원하는 어둠의 눈들이 존재한다. 비록 대니의 그것처럼 강렬하진 못하지만 현실이 외면하는 진실, 큰 힘에 짓눌려 희미해진 삶들이 있을 것이다. 외면당한 현실과 희미해진 삶에 담긴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


“있죠, 마치 …… 밤 자체가 우리를 보고 있는 것 같아요…… 밤과 그림자와, 어둠의 눈이요.”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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