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으로 휴식하라 - 회복과 치유를 위한 33일간의 철학 세러피
안광복 지음 / 사계절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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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주민을 위한 교양철학 강좌에서 안광복 ‘선생님’을 처음 뵈었다. (아주 조금) 부족한 머리숱에 온화한 인상이었지만 강의를 시작하자 매우 절박한 표정이 되었다. “정말 죄송하지만”이라고 안타까워하며 삶을 직시하는 질문을 풍자했다. 또 잠깐 망설이다가 “그냥 말씀드릴게요” 하면서 누구나 알 법한 비밀을 폭로했다. 일견 코메디같았지만 단순히 웃어넘길 수 없는 지점이 있었다. 강의 내용에 포함된 사연들은 막연한 삶의 모습들이 아닌 교사로서 교육 일선에서 직접 경험한 것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웃기는 이야기들의 이면에 삶의 문제를 감추고 있는 사연들이었다. 고등학교 철학교사 안광복 ‘선생님’은 아이들, 부모들과 스치는 사소한 순간에서도 의미를 잡아내고 그것을 철학으로 환원시키는 사람이었다. 

 

논리무능자임에도 철학에 대한 관심은 수그러들지 않아 『철학으로 휴식하라』를 읽게 되었다. 안광복 저자의 『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가 읽을 만했기 때문이다. 철학 개념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사람에게 철학사란 언감생심이지만 저자의 책은 친절했다. 주요 인물들과 개념들을 중심으로 철학사를 정리한 책은 나에게 철학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이 들게 했다. 외국 저자의 서양철학사를 읽기 시작한 후로 안광복 저자의 가치가 또 새로워졌다.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철학을 말하는 국내 저자가 희소하다 싶었서였다.

 



『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가 교과서적 철학을 알기 쉽게 다뤘다면 『철학으로 휴식하라』는 저자의 말처럼 “임상철학자로서 철학 상담을 위해” 만든 책이다. 상처난 삶, 버거운 일상을 사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철학 처방전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다쳤을 때부터 마음의 상처가 쌓이지 않도록 잘 치료하는 것이리라.

이와 더불어, 평소에 마음의 근육을 튼실하게 단련했다면 어지간한 마음의 병은 감기처럼 가볍게 지나가 버린다. 임상철학자로서, 철학교사로, 철학 상담자로서 내가 매달리는 작업은 이렇듯 영혼을 건강하게 가꿔 주는 일이다. p.5

 

책은 다섯 개의 장, 총 33챕터로 구성돼 있다. 1장은 상처받은 영혼이 위로를 바랄 때, 2장은 욕망과 집착으로 괴로울 때, 3장은 매너리즘에 빠져 허덕일 때, 4장은 세상에 맞설 용기가 필요할 때, 5장은 미래를 여는 혜안이 필요할 때 필요한 철학적 지혜를 담고 있다. 각 챕터는 하루를 의미한다. 마음의 치유를 위해 하루에 한 가지 지혜를 마음에 새기라는 뜻이다. 각 장은 철학자의 어록을 담고 있다. 많이 들어본 말들이지만 저자가 풀어내는 이야기 속에서 한 줄의 문장은 풍부한 삶의 면면이 된다.

 

"다 이기려 하지 마라“, ”왜 우리는 정의롭게 살아야 할까“, ”삶의 의미는 나보다 큰 것에서 나온다“ 등의 격언은 어찌 보면 고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듣기 좋은 말이고 맞는 말이지만 정작 삶 속에서 이런 말들을 숙고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한편으론 그만그만한 힐링서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안광복 저자의 차이점은 철학적 논리에 있다. 철학자의 금언을 철학자가 살았던 시대와 현재 삶 속의 사례에 접목해 풀어가는 과정이 논리 정연하다. 그야말로 철학적이다. 선생님의 말이라면 반항기부터 앞서는 사람도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책 속에서 만나 철학자 중 ‘길거리 철학자’ 에릭 호퍼가 인상에 남는다. 그는 “도전 정신을 잃지 않고자 가진 것을 놓아 버리려 애”쓴 사람이었다. 거짓말이 싫어서 성공적인 장사도 그만두고 누군가 바라는 모습으로 살고 싶지 않아서 평생의 연인과도 헤어진다. 과한 면이 없지 않아 보이지만 ‘버릴 줄 아는 용기’라는 면에서 생각해볼 만한 일화들이었다.

 

용기 있는 사람은 가진 것을 버릴 줄 안다. 인생은 치열하게 타오를 때 아름답고 살 만한 법이다. p.82

 

이런 철학이 필요하다. 아파도 아프다고 못하거나 상처 입은 줄도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제대로 된 처방전이 필요하다. 고통을 알아봐주고 증상을 완화하고 원인을 치유할 수 있는 도움말이다. 아픔을 아픔으로 인정해주고 알맞은 치료법을 찾아주는 일은 신체적인 병 뿐 아니라 마음의 경우에도 필수적이다. 보통의 삶과 동떨어진 학문적 철학보다는 내 삶의 문제에 적용할 수 있는 철학이 필요하다. 『철학으로 휴식하라』는 ‘삶의 방식으로의 철학’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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