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기시대 세계 여성사 - 농업의 시작, 생산의 신神 여성
장혜영 지음 / 어문학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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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시대, 농업을 시작했던 생산의 신神 여성에 대한 이야기

— 뒤표지 중

 

생물학적측면에서 볼 때 인류는 (대체적으로) 남성과 여성, 두 가지 성으로 구분되어 있다.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인류는 생존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그 노력은 어느 한 쪽의 성만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인류가 지나온 시간을 재구성해 기록으로 남긴 것이 역사다. 우리가 아는 인류사는 전 인류의 생존 노력을 모두 기록하고 있는가. 남성과 여성의 삶은 역사에 같은 부피와 질량으로 존재하는가. 모두 아다시피 답은 ‘아니오’다. 우리가 배운 그리고 기억하는 인류역사는 남성사의 기록이라 할 만하다. 그들의 침략, 전쟁, 승리, 패배 등의 기록이다. 『신석기시대 세계 여성사』가 눈에 띄는 이유는 역사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여성의 이야기일뿐더러 기록과 자료가 많지 않은 시대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약 1만년 이전에 시작해 지역에 따라 몇 천 년간 계속된 신선기 시대는 문자기록이 당연히 없을뿐더러 유물도 그리 많지 않은 실정이다. 그러 유물 자료들로 여성의 역사만을 다룰 수 있을지 의아했다. 저자는 이미 『구석기시대 세계 여성사』를 집필한 경력이 있는 저자다. 중국 출신 소설가 겸 학술서 저술가로 소개되는 그는 그 외에도 『한국의 고대사를 해부한다』, 『한국 전통문화의 허울을 벗기다』등의 학술서를 저술했다. 한국사 전문가로 구성된 학계 사람이 아니기에 새로운 시각을 볼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있었다.

 

책은 전문 학술서에 가까웠다. 기존 학계의 불성실한 연구물을 비판하면서 다양한 자료들을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공부가 일천하여 저자가 주장하는 바가 얼마나 널리 인정되는지 알지 못하나 그의 주장은 근거 없는 추정이거나 미루어 하는 짐작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마디로 신뢰할 만한 의견으로 보였다.

 

신석기시대 여성의 지위를 결정지은 것은 농경의 유무다. 인류사 초기부터 채집을 담당했던 여성들은 식물과 관련한 지식이 많았으므로 농경이 생산경제의 주를 이루게 되면 권력 또한 그쪽으로 기울게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서아시에에 농경이 급속히 발달할 수 있었던 이유를 대충돌 이론을 들어 설명한다. 기원전 12,800년 경 지구에 혜성이 충돌하면서 인근 지역에 급격한 기후변화가 있었고 동시에 남성 인류 다수가 사망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신석기시대 농업과 여성중심의 사회에 영향을 준 대충돌 사건은 다름 아닌 영거 드라이어스 지역Younger Dryas Boundary,YDB에서 1만 2800년 전에 발생한 혜성과 지구의 충독 사건을 말한다. p.52

남자들의 이러한 멸종은 신석기 농업시대 여자들을 새롭게 부상시킨 토대이기도 하기 때문에 비중이 돋보인다. 남자들의 대량피해는 여자들의 독점적인 시대를 여는 계기가 된 것이다. p.61

 

북미와 서유럽 인근 넓은 지역에서 발생한 대폭발에서 살아남은 여성과 소수의 남성들은 동쪽 고원지대를 거쳐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정착한다.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 지역 이른바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는 이렇게 인류 최초의 농경과 문명이 시작될 수 있었다. 수렵을 담당했던 남성들이 없기 때문에 여성들은 자신의 기술 즉 채집과 관련된 농경을 급속히 발전시켰다. 또한 자연재해의 두려움 때문에 집락을 형성했고 사회조직과 문화가 시작됐다. 여성은 당연히 중요한 지위를 얻었고 신격화되기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여성이 주도한 정주농업은 “식량을 대량으로 수확해서 대규모 비축이 가능한 사회”를 배태시켰으며 그것을 기반으로 사유재산이 형성되고 계급분화의 싹까지 틔웠다. 농업과 정착이 아니었다면, 남자들이 지배한 구석기시대의 수렵‧채집경제만 가지고는 이 모든 인류문명은 아마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인류의 문명은 신석기시대 초반 여성의 혁신적인 농업 선택과 정착에 의해 그 굳건한 토대가 마련되었다고 가히 단언할 수 있다. p.109

 

자연은 여성에게 영광의 자리를 마련해주었지만 마찬가지로 추락의 계기도 제공했다. 티크리스, 유프라테스 강 하안 삼각지는 토지가 비옥한 반면 홍수가 잦았다. 여성들이 빈약한 힘으로 쌓은 흙집들은 홍수에 휩쓸리기 일쑤였다. 인구수를 회복한 남성들은 타고난 힘으로 튼튼한 집을 건축하고 자신들의 권력을 회복해나갔다. 여성 신화의 몰락이 예정된 것이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상황은 무역길을 타고 인근 지역으로 전파됐으며 여성이 주도권을 잡는 일은 이후 역사에선 쉽게 찾아볼 수 없게 됐다.

 

그 사건으로 인해 여성이 지배하고 견인하던 강력한 모권제는 전복되고 부권제가 권력을 대체했으며 남성에 의해 재산은 개인 소유가 되고 축적되면서 남계에 의해 계승되고 상속되기 시작했다. p.190

그런데 부처거주와 그 제도에 의해 파생된 재산의 사유화로 말미암아 “여성의 노동은 사회성을 상실”했으며 원래 존경과 숭배의 대상이던 “인구출산, 자녀양육”은 물론이고 그들의 모든 “가사노동까지 순수한 개인노동”으로 분류되며 어머니신‧여신‧생식신에서 생산을 위한 단순한 생리적 도구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p.256

 

대폭발의 영향을 받았던 서구여성들과 달리 다른 지역들은 역사의 주역이 되는 기회가 오지 않았다. 저자에 따르면 아시아의 신석기 시대 연구에서 모계사회와 여신숭배를 주장하는 것은 서구의 신석기 역사 연구 체계를 지나치게 따른 결과라고 한다. 아시아의 신석기 시대는 중국을 제외하면 농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증거가 부실하며 따라서 여성이 권력의 주체가 되거나 모성신이 될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신석기 시대 중기 이후 농업이 시작된 중국의 경우도 권력 전복의 이유가 없었으므로 남성이 농업 생산의 주체가 되었다.

 

농업생산의 담당자‧조직자가 되려면 그 무덤에서 …… 남성 무덤에서처럼 농업생산도구가 출토되어야만 한다. 그래야 비로소 “돌도끼를 이용하여 나무를 채벌하고 돌괭이로 땅을 고르게 할” 수 있으며 그와 같이 눈부신 활약의 기반 위에서만 비로소 핵심적인 상위권에 등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적 특성을 무시하고 중국의 신석기시대 역사를 모권제가 먼저이고 부권제가 다름이라는 식으로 서양의 신석기시대 발전과정의 패턴에 억지로 꿰맞춰서는 안 된다. pp.369-370

 

한반도 신석기 시대 여성에 대한 장에서 고고학 연구의 자세에 대해 저자가 지적한 바를 새길 필요가 있다. 고고학은 학문이지 민족주의나 애국주의의 일환이 아니라는 말은 남북 연구자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 일 것이다.

 

증거 충분율의 과학적 원칙을 무시한 이러한 연구와 졸속 판단은 결코 진실을 반영할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농업 기원의 연대 판단과 같은 고고학적 연구 행위는 심정적인 욕구가 아니라 과학적인 증거에 냉철하게 의존해야만 한다고 할 때 이러한 추정치는 창졸함을 넘어 마땅히 지양돼야 할 그릇된 학술자세라고 생각된다. 학문은 철저히 객관적인 행위이기에 당연히 민족주의나 애국주의 같은 요소를 배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p.483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가까웠던 인도-파키스탄 및 중앙아시아는 대충돌 피난여성들의 영향으로 농업이 비교적 일찍 발달했고 여성의 지위도 다른 아시아 지역에 비해 높았다. 하지만 그 영광은 서유럽에 비해 짧았다.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 하류에서 시작된 가옥 건축과 관련한 남성 권력의 물결이 일찍이 옮겨왔기 때문이다.

 

고대의 여성사를 다룬 책이지만 읽는 과정의 생각은 고대사 전반의 궁금증에 가 닿았다. 인종적 유래를 밝히지 못했다는 수메르인은 서구 대폭발을 피해 이주한 사람들이었을까. 인도 유럽 어족으로 묶인 집단의 이주는 대폭발이 원인이었던 걸까.

 

신석기 시대 권력의 향방은 물리적 힘의 여부에 따랐다. 물리적 힘의 원천이 멸종에 가깝게 소멸하자 약자였던 여성들이 주도권을 잡을 기회가 왔던 거다. 만약 대폭발로 남성 인구가 대폭 감소하지 않았다면 그래도 여성에 의한 농업혁명이 도래했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이후의 역사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는 성별 쪽에 우세한 역사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역사로 다루어지지 않던 소수의 역사를 다룬 책이 나오는 건 고무적인 일이다. 적어도 뭔가 변화하고 있다는 거니까. 신석기 시대 서구 여성 주도권이 빛나는 시기는 어느 날 갑자가 하늘로부터 갑자기 왔지만 앞으로의 평등한 세상은 이런 작은 변화들이 쌓여서 오지 않을까. 그런 점진적인 변화들이 모여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불가역적인 현재로 고정되길 바란다.

 

아쉬운 점 몇가지. 중국에서 활동하는 저자의 책이다 보니 사용하는 단어들이 어색한 경우가 다수 있었다. 주장의 근거로 인용한 문헌들이 중국의 것일 때 (아마도) 저자가 직접 번역한 문장들이 매끄럽지 않기도 했다. 본문을 이해하는데 참고가 되는 많은 이미지 자료가 제시되는데도 불구하고 큰 도움을 받지 못했다. 도판이 너무 작고 해상도가 낮아 알아보기 힘들기도 했고 색깔로 구분됐던 것으로 보이는 자료를 흑백 처리해 자료간 경계를 구분할 수 없었다. 학술서로 좀 더 많은 독자층을 만나길 바란다면 개선해야할 문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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