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에서 도착한 생각들 - 동굴벽화에서 고대종교까지
전호태 지음 / 창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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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선사 문명에 대한 책을 읽을 때마다 한반도의 선사시대는 어땠을까 하는 질문이 따라다녔다. 인류 최초의 문명들이 빛을 밝히는 시기, 우리 땅의 조상들은 어떤 발전의 단계에 있었을까 궁금했다. 대략의 연대를 따지며 어림해보기도 했다. 연대별 역사의 흐름을 서술하기보다 유물, 유적을 바탕으로 하되 너무 흥미에 치우치지 않는 책을 읽어보고 싶었다.

 

『고대에서 도착한 생각들』은 선사시대를 산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그것을 신앙으로 삼아 종교로 키웠는지를 다룬다. 구석기를 다룬 부분은 유럽 초기 벽화들을 사례로 삼고 이후 신석기 시대를 지나면서 한반도 문명을 주요 소재로 다룬다.

 

저자 전호태 울산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책 머리에서’ 이 책이 사상사나 종교사와는 거리가 있다고 밝힌다. 오히려 ‘나와 역사의 만남’ ‘내가 역사와 나누는 대화’에 가깝다고 적고 있다. 저자의 의도를 반영해 책은 시종 대화체로 서술된다. 학자인 아버지와 대학생 아들의 대화다. 지인 부녀도 등장해 대화에 변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아버지가 아들 또래에게 설명하듯 이어지는 대화체가 역사를 다루는 책에서 익숙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료가 부족한 고대 사람들의 삶과 생각을 옛날 얘기하듯 풀어내기 위한 장치라고 생각하고 보면 어색한 감을 얼마간 줄 일수 있을 듯하다. 또 대화의 상대가 대학생이고 보니 주고받는 질문의 수준이 고대 사상을 다루기에 부족함이 없다. 역사 이야기를 하다 아들과의 일상사가 불쑥불쑥 끼어드는 부분을 쉼표로 생각하면 진지한 독서에 그리 방해되는 바는 아닐 것이다.

 

저자는 선사시대 사람들에 대한 현대인의 평가에 일침을 가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돌도끼를 들고 짐승을 잡으러 다녔다고 해서 그들의 인지나 사고가 우리보다 못하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사실 선사시대와 지금을 비교하면 논리적 전개 과정이 더 복잡해진 것 말고는 사람이 세상을 보는 눈, 우주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방식이 질적으로 얼마나 크게 달라졌는지 나는 확신하지 못한다. p.5

선사시대는 현재와 문명적, 기술적 차이가 아주 커. 그러나 이것이 현대인이 선사시대 사람보다 인지적으로 앞섰다는 걸 뜻하지는 않아. 현대인이 인지적 깊이에서는 오히려 대단히 원시적일 수도 있다. 탐욕과 편견에 깊이 물든 현대인이라면, 그 사람은 오히려 선사시대 사람보다 더 야만적인 존재일 수도 있지. p.19

책에는 문명의 발달이 인간의 사고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를 각 장마다 질문으로 던진다.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토기의 발명으로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농경은 신석기시대 사람의 생각을 어떻게 바꾸었을까’, ‘유교는 고대 한국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와 같은 질문이다.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를 거치면서 도구의 발전은 인간 생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한 대화가 이어진다. 삼국시대의 건국이야기는 어떤 생각을 담은 신화들이 있는지 소개하고, 고대의 샤머니즘과 음양오행론이 어떻게 우리의 생활와 사상에 자리잡았는지에 대해 이야기 한다. 후반부에는 불교, 신선신앙, 도교, 유교 등이 어떻게 전래되어 우리의 사고와 문화를 바꿨는지 살펴본다.

 

단군 신화에 대한 해설에서는 샤머니즘 신화에 대한 불교의 영향을 알 수 있었다. 환인이라는 하늘신의 이름이 불교의 유래에 따라 바뀐 것이라는 말이다. 유럽 신화의 변천에서 볼 수 있는 여성신의 남성신으로의 교체 현상이 단군 신화의 변천에서도 나타남을 살필 수 있다. 탄생의 주체로 숭배받던 여성신들이 청동기 무기와 전쟁의 확산에 따라 남성신에게 우위를 내주게 된다. 시대의 조류에 따라 신화도 재서술되고 변화한다.

 

단군은 하늘 사람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신 환웅의 아들이고 하늘의 최고 신 환인의 손자다. 청동기시대에 하늘의 주인은 남신이다. 하늘의 임금이던 큰 여신은 청동기시대가 되자 땅의 신이 되었다. 한 신은 올라가고 한 신은 내려왔다. 땅과 하늘의 주인이 뒤바뀐 것이다.

환인의 이름은 본래 ‘하늘님’이었다. 후대에 석가모니 붓다의 불교가 자리 잡으면서 인도의 브라만교, 불교, 힌두교의 하늘신 이름인 환인으로 이름이 바뀐 것이다. p.79

청동제 무기와 연장은 지배/피지배 관계를 성립시켰어. 지배자들은 ‘하늘의 뜻’을 주장하며 노예를 기본적인 생산수단의 하나로 삼게 되었지. … 지배자들은 자신이 하늘신의 자손이라는 사실을 피지배자들에게 주입하려 애썼어.

철기는 청동기시대의 생산방식과 체계를 보편적이고 항구적으로 만들었어. … 철기는 청동기보다 재료 구하기가 쉬워 이것을 쓸 수 있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보급할 수 있었어. 덕분에 전쟁의 규모도 커졌지. … 지배자들이 하늘신의 자손이라고 주장하지 않아도 법령과 군대만으로 세상을 통제하는 것도 가능해졌고. 거대한 규모의 제국이 출현할 수 있게 된 거야. 신의 뜻은 이제 현실을 설명하는 배경에 불과하게 되었어. p.171

철기의 등장은 강인한 영웅의 신화를 탄생시킨다. 주몽 신화의 함의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단군 신화와의 비교에서 둘의 차이와 시대의 변화가 어떻게 사람들의 생각을 바꿨는지 알 수 있다.

철기는 사람들을 강하고 자신있게 만들었지. 쇠로 된 농기구를 지니게 된 농부는 농부대로, 쇠로 된 무기를 갖게 된 전사는 전사대로 자연의 수목과 짐승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났어 … 사람들은 자연에서 나는 것은 무엇이든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지. pp.181-182

둘의 차이는 단군은 샤먼왕이었고 주몽은 전사왕이라는 점이야. 단군은 그저 나라를 열었지만, 주몽은 나라를 열고 다스렸어. 주몽은 농사로 풍요를 불러왔고 전쟁으로도 풍요를 불러왔지. 주몽의 시대에 세상은 신성한 존재보다 빼어난 전사를 바랐어. … 주몽은 능력으로 신성성을 보여준 영웅이야. pp.186-187

석가모니의 불교는 신분제의 필연을 벗어난 세계관을 가능하게 했다. 이러한 혁명적인 사상도 귀족들의 권력을 약화시키는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자신들이 내생에 붓다가 될 미륵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귀족의 지배를 공고히 했다. 세상에 없던 새로운 생각도 권력자의 탐욕에 따라 변형되고 수정된다. 공자의 유교도 크게 다른 길을 가진 못했다. 춘추전국 시대 혼란한 사회를 ‘예의와 염치, 분수’를 지킴으로써 수습하려 한 생각이 신분제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사회 통제수단’으로 사용됐으니 말이다.

 

‘고대 사람들은 인간과 세상을 어떻게 이해했을까?’에 대한 쉬운 접근을 원하는 독자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단, 좀 더 체계적인 사상사에 대한 기대를 가진 경우라면 대화체로 이어지는 서술이 복잡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저자가 ‘만약 내가 고대 사람이라면’을 전제로 풀어놓은 많은 추정들이 너무 소설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역사책을 기대했는데 에세이를 읽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이 추정들이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책 말미에 ‘주’를 붙여 ‘상상’을 하게 된 근거를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와 다르지 않은 ‘아주 먼 사람들의 아주 가까운 생각들’이 궁금하다면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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