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30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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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에 관한 가장 체계적이고 분석적인 저서

2,400년 동안 읽히고 연구되어 온 ‘설득의 기술’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의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이 또 하나 나왔다. 그리스어로 씌인 작품을 번역한 철학, 비극 작품들을 읽으면서 원전 번역의 필요성을 느껴왔다. 한 사람만 건너가도 의미와 뉘앙스가 미묘하게 달라지는 것이 말이고 언어다. 하물며 서로 다른 언어라는 매개를 몇 단계씩 거친 작품 속에는 원래의 의미에서 멀어진 내용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읽으려 하는 책의 원래 작품의 시기가 오래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시간에 흐름에 따라 원어의 변화에 더해 중역까지 거치게 되면 원작자의 의도와는 다른 작품을 읽게 될 수도 있다. 원전을 바로 우리말로 번역할 수 있어야 오류의 수도 적어질 것이라 믿는다.

 

그리스어와 라틴어 번역으로는 천병희 교수의 번역이 잘 알려져 있다.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을 많이 번역하기도 했거니와 읽기 쉬운 문체를 사용해 일반 독자 선호도가 높다. 충실한 각주로 생소한 문화권의 책을 읽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점 또한 미덕이다. 기존에 아리스토 텔레스의 수사학을 번역한 책이 없진 않았다. 철학 전공 연구자들이 번역한 원전 번역본이 전집으로 나와 있다. 충실한 해제와 각주가 담겼지만 본격적인 연구를 작정한 경우가 아니라면 일반 독자는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안그래도 읽기 어려운 철학서다. 다양한 번역이 있다면 비교 독서로 책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것이란 아쉬움이 있었다. 현대지성의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은 이러한 번역의 다양성 차원에서 반가운 책이다.

 

번역자는 전에 읽은 바 있는 『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의 박문재 전문번역가다. 읽기 쉬운 문장에 더하여 적절한 각주와 작품 해설이 이번 책에서도 기대 이상이었다.

 

수사학의 내용은 학교 교과과정에서 얻어들은 바도 있고 하여 아주 낯설지 않다. 하지만 대략의 줄거리를 아는 것과 실제 문장을 읽는 것은 천지차이다. 설득의 방법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과정을 따라가야 하는 독서에서 초반부터 나오는 '변증법‘, ‘생략삼단논법’, ‘예증’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 같은 개념의 의미가 모호하다면 읽기를 이어가기 쉽지 않을 수 있다. 만약 그런 경우라면 책 뒤에 붙은 역자의 해제를 먼저 숙독하도록 권한다. 짧은 분량이지만 책의 내용 해설, 요약 뿐 아니라 당시 그리스에서 수사학이 이용되던 사회적 배경과 용어에 대한 설명을 살펴볼 수 있다. 또 아리스토텔레스의 생애와 저작, 사상에 대해 정리를 읽는다면 책의 맥락을 이해하는데 한층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본문의 1권에서는 수사학의 개략적인 정의와 연설의 종류를 다룬다. ‘조언의 위한 연설’, ‘법적 변론을 위한 연설’, ‘선전을 위한 연설’에서 어떤 전제들을 사용할 수 있는지 설명한다. 2권에서는 설득 수단으로 ‘파토스’, ‘에토스’, ‘로고스’를 다룬다. ‘파토스’는 청중의 감정을, ‘에토스’는 청중과 연설가의 성격을, ‘로고스’는 논리적 추론을 말한다. 3권은 문체와 구성과 전달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책에는 그리스 철학자가 생각한 설득의 기술이 상세히 담겨 있다. 지금의 시대에 이 책을 읽는 이유는 아마도 기술을 익히고자 한다기 보다는 철학자의 생각을 알고 싶어서일 것 같다. 그리스 시대 말기에 정의과 미덕과 같은 이전 시대의 가치는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대중의 감정에 영합하고 자신의 탐욕에 충실한 권력층이 득세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학당 리케이온에서 이성적인 정신을 가진 인간에 대해, 행복에 대해, 정의의 실현에 대해 가르쳤다. 존경받는 철학자였던 그가 말년에 쫓기듯 아테네를 떠나게 된 데는 반메케도니아 세력도 있었지만 올바름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한 몫했을 것이다. 부패와 탐욕이 넘치는 때에 정의를 외치는 목소리는 눈엣 가시였을 테니까.

 

정의를 현실세계에서 실현하고자 했던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의 관점에서 보자면 수사학은 그 정점에 있는 저술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수사학은 그가 제시한 윤리학과 정치학을, 그가 제시한 변증학을 기반으로 대중 연설과 법정에서 현실 정치로 구현해내는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p.318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은 ‘수사학과 변증학은 짝을 이룬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수사학의 본질과 정의를 설명하는 첫 부분에서 대중을 미혹하는 소피스트의 연설을 비판하고 수사학의 유용함을 주장하는 대목이 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것처럼 ‘수사학의 유용함’이 제대로 발휘되고 있는 걸까. 수사학을 제대로 사용한다면 진리와 정의가 그 반대편보다 보편적인 상식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모두가 자신이 ‘진리’임을 내세우고 ‘정의’를 위한다고 말한다. 그 가운데 순수한 ‘진리와 정의’가 우리와 조금 더 가깝게 있기를 바란다. ‘진리와 정의’가 지닌 본성적 힘을 역설하는 철학자의 말이 진실임을 믿고 싶은 이유다.

그럼에도 수사학은 유용하다. 진리와 정의는 그 반대되는 것보다 본성적으로 더 힘이 있기 때문에 수사학이 유용한 것이다. 따라서 판단이나 판결이 적절하게 내려지지 않아 진리와 정의가 패배했다면 그것은 변론한 사람의 잘못이기 때문에 그들이 비난을 받아야 한다.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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