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대 갱년기 문학의 즐거움 55
제성은 지음, 이승연 그림 / 개암나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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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춘기보다 무서운 게 갱년기라는 말이 있다. 사춘기와 갱년기가 싸우면 갱년기가 이긴다고도 한다. 우스개 소리로 하는 말들이지만 사람들 입과 귀를 오래 흘러다니는 말들엔 (함량이 제각각 다른) 진실이 숨어있다. 어린이에서 청년으로 넘어가는 극적인 변화를 겪는 사춘기에 대해선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시기나 증상은 물론 대처방법이랄 것들까지. 반면 중년에 맞게 되는 갱년기는 어떤가. 갱년기의 신체, 심리적 변화는 사춘기때처럼 극적이지 않아서인지 그리 심각하게 대하지 않는 듯하다. 갱년기는 사춘기보다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시기일까. 성인으로서 준비를 위해 겪는 사춘기와 삶의 중간 시기를 넘어가는 부모의 갱년기는 다르다. 갱년기가 젊은 시절 이른바 한창 때의 마무리를 뜻하는 거라면 심리적인 고뇌는 더 깊어질 듯하다. 사춘기를 이기는 갱년기는 이런 뜻에서 나온 말 아닐까.

 

이쯤 되면 사춘기와 갱년기가 함께 사는 상황은 어떨지 궁금해진다. 공존의 지혜를 발휘해 서로를 이해할 것인지 혹은 그 반대일지. 『사춘기 대 갱년기』는 그런 궁금증을 정확히 반영한 책이다. 열두 살, 5학년이 된 루나에게 바야흐로 ‘그분’이 오셨다. 설상가상 루나의 엄마에게도 남다른 변화가 나타났으니, 시도 때도 없이 열이 오르고 몸은 한없이 무거우며 기분은 우울하기만 한 갱년기가 시작된 것이다. 갱년기에 대해 알기는 커녕 자신의 사춘기도 감당하기 어려운 루나는 급기야 엄마가 동생을 임신했다는 착각 속에 빠진다. 절친한 친구의 엄마가 임신을 한 탓이다. 복잡한 딸의 마음을 몰라주는 엄마가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고 혼자 지내는 동안 루나는 엄마의 빈자리를 절감한다.

 

 

『사춘기 대 갱년기』는 ‘내 마음 나도 모르는’ 사춘기 소녀와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은 갱년기 엄마가 일상을 지내는 이야기다. 그 둘이 생활 속에서 주고받는 대화가 정말 사실적이다. 사춘기의 내가 했을 법한 말들과 그 시절의 엄마가 했던 말을 작가가 듣기라도 한 듯해 뜨끔했다.

“엄마는 근무 태만이야. 나한테는 공부가 내 일이니까 열심히 하라고 하면서, 엄마 일은 살림인데 왜 열심히 안 해?”

말이 끝나자마자 ‘등짝 스매싱’이 날아왔다.

“어디서 밥투정이야? 먹기 싫으면 억지 마!”

엄마가 내 숟가락을 잡았다.

“아, 싫어! 먹을 거야!”

나도 숟가락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먹지 막!”

“싫어! 먹을 거야!” p.35

 

 

초경을 맞이하는 아이들의 마음과 행동, 짝사랑 남자친구에게 어떻게 고백할지 고민하는 모습 등 또래 아이의 생활을 옆에서 지켜본 듯 한 책이다. 휴대폰 채팅으로 소통하면서 발생하는 에피소드 부분에서 글 줄을 채팅창 형태로 넣어 이야기의 실감을 더 한 부분도 좋았다.

 

늦둥이 셋째 동생이 태어나 슬퍼하는 친구를 위로하던 루나는 엄마와 화해의 여행을 떠난다. 모녀는 현재 자신이 맞고 있는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서로를 이해한다. 루나의 사춘기와 엄마의 갱년기는 호르몬의 변화 때문이다. 둘은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으로 호르몬의 밸런스를 맞춰보기로 한다.

“사춘기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찾아가는 시기잖아. 갱년기는 자기 자신에게 엄마 노릇을 시작하는 시기래.” p.136

 

 

어쩌면 치열한 신경전으로 점철될 수도 있었던 사춘기와 갱년기의 대립은 모녀의 다정한 포옹으로 끝을 맺는다. 엄마는 아이에게서 배우고 아이는 엄마를 이해할 실마리를 찾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이는 엄마가 말해준 갱년기 증상을 듣고 엄마의 고충을 이해하게 됐다. 엄마는 아이의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태도를 보고 용기를 얻었다. 서로 이해하려 마음을 연 루나 모녀의 현명함에 박수쳐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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