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프 이너프 - 진실을 직시하는 강인함에 관하여
데보라 넬슨 지음, 김선형 옮김 / 책세상 / 2019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감상주의를 배제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직시하는 미학적‧정치적‧도덕적 의무를 열정적으로 설파했던 여성 작가, 지식인 그리고 예술가들에 관한 책이다. p.9

 

시몬 베유가 궁금했다. 그녀의 저작을 읽어보지 못했지만 은유 작가의 책에서 등장하는 인용구에서 느껴지는 강렬함에 매료됐었다. 예를 들면 『노동일기』중의 아래와 같은 대목이 좋았다. 시몬 베유는 어떤 사람인지 그녀의 사상의 맥락은 어떠한지 궁금했다.

 

“밭을 가는 농민이 자기가 농민이 된 것은 교사가 될 만한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회 체제는 깊이 병든 것이다”

시몬 베유 『노동일기』中

 

데보라 넬슨의 『터프 이너프』는 시몬 베유를 포함해 6명의 여성 작가들을 다룬다. 그들은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작가들”이며 “현실의 고통에 맞서 연민, 위안, 구원이라는 마취제를 거부하고 냉철한 사유의 날로 진실을 도려낸 강인한 삶”을 살아간 이들이다. 한나 아렌트, 메리 메카시, 수전 손택, 다이앤 아버스, 조앤 디디온이 그들이다. 한나 아렌트와 수전 손택 이외의 작가들은 내게 낯설었다. 그러나 그들이 “진실을 직시하는 강인함”을 추구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에 책을 읽어볼 용기를 냈다.

 

사실 철학이나 사상을 다루는 책을 수월히 읽어내지 못하는 편이다. 논리적 사유 훈련이 안된 것인지 문해력이 떨어지는 것인지 서사가 없이 생각을 이어가는 책들은 읽기가 힘들다. 사사 위주의 편독에서 비롯된 문제일까. 이 책 역시 읽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저자-가 말하는 바에 어느 정도 가까운 이해에 달했는지도 의문이다. 그냥 문장을 따라가는 것도 힘들었다고 고백해야겠다. 철학적 사고 미숙련자가 읽기에 『터프 이너프』는 장벽이 높은 책이었다. 우선 개념들이 문제였다. ‘작인’, ‘수난’, ‘천형’, ‘복수성’, ‘미학적 매니페스토’ 같은 용어의 의미가 얼른 와 닿지 않았고 사전적 의미를 찾아 뜻을 새겨도 문맥이 난해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또 하나의 독서 장벽은 각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에 대한 배경지식 부족이었다. 저자 데보라 넬슨의 서술은 각 작가들의 전기적 사실과 작품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했다. 작가들의 삶에 대한 일별이 필요하다. 책 또는 (사진)작품을 읽거나 본 일이 없는 상태에서는 저자가 말하는 ‘터프함’의 흐름을 쫒는 일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 독서에 가까웠다.

 

저자가 ‘들어가며’에 소개한 작가들의 면면이다. 작가들에 대한 일목요연한 정보 습들을 위해 이 부분을 주의깊게 읽어둬야 한다.

 

시몬 베유Simone Weil는 금욕적이면서도 자유로운, 특유의 신비주의적 기독교 사상으로 세계대전 종전 후의 종교적 부흥에서 컬트적 인물의 위상에 올랐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20세기 가장 중요한 정치철학자 중 한 명으로 오히려 시간이 흘러 당대에서 멀어질수록 통찰의 별이 더욱 환히 빛나고 있다. 소설가 겸 비평가로 명성을 크게 얻었던 메리 메카시Mary McCarthy는 자서전과 베스트셀러 소설 《그룹The Group》으로 여전히 미국 문학사에서 중추적 입지를 유지하고 있다. 수전 손택Susan Sontag은 20세기 후반의 가장 대중적으로 유명한 지식인이자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본인의 예술적 저작은 비록 기대에 못 미친다 해도 예술과 정치의 비평가로서는 여전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다이앤 아버스Diane Arbus는 전후에 누구보다 큰 영향을 끼친 사진작가이자 예술가다. 그리고 조앤 디디온Joan Didion은 기자, 소설가, 시나리오 작가로 오랫동안 성공가도를 걷다가 회고록 《마술적 사유의 한 해The Year of Mafical Thinking》의 출간과 바네사 레드그레이브Vanessa Redgrave가 주연한 동명의 브로드웨이 연극(각색)으로 유명인사가 되었다. pp.9-10

 

저자가 이들 작가를 하나의 책으로 묶어낸 이유에 대한 서술이 이어진다.

 

이 책에서 이들을 하나로 묶은 것은, 문체의 유사성과 함께 20세기 후반 미국을 사로잡았던 고통과 정서적 표현의 문제에 대해 공통적인 관점을 견지했기 때문이다.……이 여성 작가들은 직접적이고 선명한 시각으로 위로도 보상도 없이 고통스러운 현실을 직시하는 과업을 자발적으로 떠맡았기 때문에 터프하다. p.11

 

이 여성 작가들은 모두 “감정의 실패를 해명하라는 요구를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반대로 생각해보자. 만일 남성작가들이 이들과 같은 태도로 글을 쓰거나 작품 활동을 했으면 과연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 과하게 냉철하다는 평가는 있었을지언정 “자비심이 없다”거나 “얼음처럼 차다”고 지적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페미니즘의 테두리 안에 속한다고 볼 수 있겠다.

 

비슷한 부류의 남성 작가, 지식인, 예술가가 이들의 성격묘사를 뛰어넘는 비정함을 삶에서 혹은 예술에서 보여준 경우는 있으나 감정이 없다는 비판을 받은 사례를 찾기는 어렵다. pp.12-13

 

책에서 말하는 감정을 절제한 ‘터프함’은 “현실 자체를 민감하게 인식하는 감수성”을 가지고 “현실을 직면할 의무”를 가지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혼자서, 또 타인들과 함께, 수난에 맞서”는 일을 의미한다. 각 저자가 ‘터프함’을 실행한 방법은 제각각이다. 베유는 ‘수난’에 ‘주목’하기를 요청한다. 처절한 수난의 과정에 공감하기보다 사려 깊게 사고하라는 말이다. 이러한 생각은 아렌트에게 이어진다. 아렌트는 수난이 지닌 감정적 장악력에 매몰되지 않기를 요구한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으로 익숙해진 ‘무사유’의 개념에 대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아렌트의 ‘무사유’는 “고의로 생각을 하지 않는 행위”고 “사유를 미루는 짓”이었다. 그저 생각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닌 모든 결과를 예측할 능력이 있고 어쩌면 무의식 중에 참혹한 결과를 원하면서도 그 과정에 대한 사유를 회피하는 일이다. 무사유의 동기는 “고통스러운 감정의 회피”다. 아렌트는 우리가 잘못을 저지르고 그것을 감지했을 때 “무사유를 선택”한다고 지적한다. 우리도 예외일 수는 없겠지만 언론을 장식했던 ‘기억상실자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아렌트는 악행을 저지르는 자들은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지만, 진정한 위험은“그 문제를 아예 고려조차 하지 않았기에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기억이 없는 사람은, 거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기억을 거부함으로서 악은 격화되는 게 아니라……부유浮游하게되므로 한계를 모르게 된다. p.175

 

6명의 여성 작가들은 여성이라는 점 때문에 자신의 주장하는 바를 올바르게 평가받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굽히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갔다. 겁먹거나 주눅들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실천을 멈추지 않았다.

 

……이 책의 모든 여성 작가들이 그렇듯, 이 공격성은 주로 남성성을 거세하는 못된 여자의 전형으로 비쳐, 손쉽게 개인적‧젠더적 측변으로 치부되며, 결국은 매카시가 연구하고 정성껏 설명한 더 일반적인 원칙들을 가려버리게 된다. p.186

 

이 작가들이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 받은 부분도 흥미로웠다. 시몬 베유는 메리 메카시에게 번역되면서 미국 땅에 알려졌고, 한나 아렌트와 메카시는 한 직장에 일하면서 “같은 편에 홀로”서 있는 관계였다. 수전 손택은 메리 메카시가 누렸던(?) 미국 문단의 다크 레이디라는 호칭을 물려받았고 다이엔 아버스의 사진을 비평했다. 조앤 디디온은 산문에서의 다이엔 아버스로 비교되곤 했다.

 

여성이 감정적이라는 흔한 통념을 넘는 여섯 명의 작가들을 알게 된 좋은 독서 시간이었다. 배경 지식 부족으로 저자의 의도에 다가가는 읽기가 되지는 못했지만 궁금했던 시몬 베유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고 한나 아렌트와 수전 손택의 생각을 얼마간 더 이해하게 됐다. 낯선 이름이었던 메리 매카시, 다이앤 아버스, 조앤 디디온을 다른 세 작가의 삶에 기대어 알게 된 것도 큰 수확이다.

 

책의 역자는 여섯 명의 지성인들이 “누구보다 ‘차가운’ 현실 인식을 견지하되 사회적 불의나 정치의 실패로 부당하게 수난받는 약자들을 구제하고 개혁을 선도하려는 의지만큼은 ‘뜨겁다’”고 주지한다. 이 대목에서 그녀들이 제시한 “환상 없는 현실 직시에 근거한 유효한 정치적 비전”과 법학자 마사 누스바움이 『혐오와 수치심』등에서 주장한 “법과 제도 뒤에서 작동하고 영향력을 발휘하는 감정들”의 차이가 궁금해졌다. ‘사회를 직시하는데 배제해야 하는 감정’과 ‘법을 집행하는데 배제할 수 없는 감정’은 서로 어떤 교집합과 여집합을 가질까.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선 많은 책들 사이에서 헤매야할 게다. 그 사이 또 감당할 수 없는 괴로운 ‘감정’에 휘말릴 것이다. 현실을 직시해 호기심에서 비롯된 감정을 냉철히 다스리고 나의 분수를 깨달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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