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베를린 - 분단의 상징에서 문화의 중심으로
이은정 지음 / 창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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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10여명이 베트남으로 입국하려 시도하던 중 발각돼 중국으로 추방됐다. 이들은 북한으로 강제송환될 위기에 처해있다고 한다. 11월 30일자 뉴스다. 뉴스화되는 경우 이외에 숨겨진 탈북민의 수는 얼마나 많을지 짐작하도 가지 않는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가 고대가요처럼 느껴진다.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 진심으로 동의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도 의문이다. 이산가족은 통일을 진심으로 바라는 거의 유일한 사람들일 것이다. 분단 후 너무 오랜 세월이 흘렀다. 이산의 아픔을 몸에 새긴 분들은 상당수 이미 고인이 되었거나 고령으로 생의 마지막 날을 살고 있을 것이다. 이 분들이 모두 떠나고 나면 그때 우리는 통일을 어떻게 바라보게 될까. 한 민족이라는 환상이 전무한 때에 통일은 어떤 방법으로 이뤄야 할까.

 

「베를린, 베를린」은 베를린자유대학교 한국학과 학과장 이은정 교수의 책이다. 저자는 1980년대부터 독일에 거주하며 독일 통일 과정과 통일 독일의 발전 과정을 함께했다. 때문에 이 책에서 다루는 통일 이전과 이후의 독일에 대한 이야기가 더 가깝게 와 닿는지도 모르겠다.

 

책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지 얼마되지 않는 1992년 겨울 베를린 거리에서 시작한다. 무거울 수도 어려울 수도 있는 역사를 책임에도 독일 거리 곳곳을 생생히 묘사하며 서술을 이어가는 덕분에 수월히 읽힌다. 저자는 이 책에서 분단이전에 베를린에 대해 쓰는 이유를 “분단이 완전한 차단이어야만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작년에 나온 박한식 교수의 「선을 넘어 생각한다」를 생각나게 하는 말이다. 박한식 박사가 제시한 통일의 방법 역시 ‘충돌의 가능성을 최소화한 상태에서의 소통’이었다. 그렇게 ‘동질성을 회복함’으로써 통일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했다. 이은정 교수 역시 ‘다름을 인정하는 합의’를 강조한다. 베를린은 ‘정치적 충돌을 야기할 사안을 배제한 기술적 교류에 집중’하면서 동․서의 연결을 놓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베를린은 정치적으로는 분단되었지만 사실상 완전히 분리된 적이 없었다. (…) 분리되지 않은 인프라망을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상호 접촉과 협업이 불가피했다. 이 과정에서 서베를린과 동독은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접근 방법으로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했고, 정치적으로 충돌할 수 있는 사안은 배제한 채 기술적 교류에 집중했다. (…) 누구도 협상을 깨면서까지 자신의 입장을 포기할 수 없다고 고집하지 않았다. 결국 협상에 임하는 당사자들의 합리적인 사고가 냉전 중에도 교류를 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p.125

 

저자는 독일 통일 과정에서 동․서독 젊은이들이 한 역할을 중요하게 보고 있다. 대학생과 좌파 지식인을 중심으로 보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문화를 거부한 움직임이 68운동이다. 독일의 민주주의는 68운동을 기점으로 질적으로 변화를 겪었으며 이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데 일정의 역할을 했다. 하지만 자유를 향한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역사는 기억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우리나라의 1987년과 68운동을 비교하는 저자의 시각에 공감이 갔다.

 

독일의 현대사에서 68운동의 사회적․정치적 의미는 한국의 현대사에서 1987년이 갖는 의미와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 실제로 68운동 이후 서독사회는 그 이전의 서독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사회가 되었다. 모든 형태의 권위주의적인 문화를 거부하며, 자율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대안문화도 정착되었다. p.185

 

통일된 독일의 연방외무부는 보위의 사망소식이 알려진 2016년 1월 11일 SNS를 통해 장벽을 무너뜨리는 데 도움을 주어서 고맙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동베를린 쪽에서 “장벽이 없어져야만 한다”라고 외치다가 경찰에 무자비하게 체포되었던 사람들에게 통일 후에 누군가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는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다. 역사는 항상 ‘영웅’만 기억하려 한다. 그런데 장벽을 넘어 부는 바람에 응답하한 것은 그 자리에 있었던 수천명의 젊은이들이었다. p.196

 

통일 후의 베를린은 ‘천의 얼굴을 가진 도시’가 되었다. 저자는 과거를 망각하는 것이 아닌 기억으로 만든 베를린으로 재건될 수 있었던 이유를 ‘교육에 대한 사유’에서 찾는다. 정형화된 해석을 주입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말이다.

 

건물이 사라진다는 것은 그곳에 담긴 역사가 잊힌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러나 통일 이후 베를린은 역사를 잊은 공간이 아니라 기억을 품을 도시가 되었다. (…)

이 공간들은 누구에게도 역사의 한 단면을 특정 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기억의 공간으로서, 잊지 말고 성찰해야 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줄 뿐이다. 거기에서 독일 시민교육의 근간이 되는 ‘사유’가 그대로 드러난다.

어떤 방식의 교육이든 사실에 대한 특정한 해석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받는 사람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를 보는 비판적 시각과 함께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만 나치체제와 같은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견해가 이런 사유를 뒷받침하고 있다. pp.239-240

 

한국의 분단에 대한 해답을 독일의 사례에서 찾을 수는 없다. 분단의 과정도 달랐거니와 동족 전쟁과 서베를린이라는 섬 같은 도시의 유무에서도 차이가 있다. 그들은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지 않았다. 그러므로 서로 간에 적대감정이 깊어졌던 적이 없다. 또 공산주의 국가 동독 땅 한가운데 자리한 서베를린이란 존재로 인해 동․서독은 끊임없이 소통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분단 70년 동안 천혜의 자연적 경계선이 되어 버린 38선을 두고 서로가 완전한 단절 상태에 놓여있다. ‘빨갱이’라는 말이 여전히 통하는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다. 대한민국은 어쩌면 이런 최악의 조건 때문에 지구 최후의 분단국으로 남은 것일까.

 

2차 대전 후부터 현재까지 도시 베를린의 역사를 통해 저자는 우리나라의 통일을 위한 시사점을 짚고 있다. ‘통일을 꿈꾸기 이전에 먼저 평화를 만들었던 동서베를린’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기를 바란 것이다. 베를린의 과거가 우리의 현재라면 베를린의 현재가 우리의 미래이길 바라본다.

 

저자의 매끄러운 문장 덕에 암울한 시기에 대한 책을 수월히 읽고 분단국가로서의 우리나라에 대해 여러 생각을 떠올려볼 수 있었다. 다만 독일과 베를린의 사례만 제시되어 있어 우리나라의 현실적인 문제에 대입해보는데 한계가 있었다. 이런 점을 보완하기 위해 박한식 교수의 「선을 넘어 생각한다」같은 책을 함께 읽으면 균형잡힌 독서가 될 것 같다. 이 책은 남북 분단상황에 대한 분석과 함께 실행 가능한 ‘평화’를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좋은 글을 쓰는 저자의 다른 책이 있나 싶어 찾아봤지만 검색되지 않았다. 이 분야의 전문가로서 다른 저서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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