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
문은강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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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랄하다. 고복희가 춤추는 장면은 끝까지 볼 수 없었지만 그녀의 원더랜드가 프놈펜에 있을 거란 상상만으로 흐믓해졌다. 왜냐구? 고복희처럼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 제대로 살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바라기 때문이다. 평범한 수준의 상식이 모든 사람에게 통용되는 사회에서 살고 싶기 때문이다. 그것이 권력자가 됐든 돈 많은 사람이 됐든.

 

소설의 주인공은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서 ‘원더랜드’라는 이름의 호텔을 운영하는 고복희다. 소설의 배경과 인물들은 모두 현 시대를 살아가는 각 세대와 계층에서 추출한 표본들 같았다.

 

배경은 80년대 우리나라의 상황과 비슷한 캄보디아. 군부의 세력이 정치를 휘두르고 자본과들과 결탁하며 비리와 불의가 득세하는 곳이다. 군사 정권이라는 점만 빼면 원칙을 교묘히 피해가는 힘있는 자들의 행태는 거기나 여기나 별 다를 바 없다.

 

군복을 입과 민간인을 위협하는 모양새라니. 이런 것마저 과거의 한국과 닮아 있다. 그때도 그랬다. 아파트가 무너지고 호텔에 불이 나 애꿎은 사람들이 죽는 이유는 모두가 당연한 원칙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

개 같은 세상. 그렇다. 총을 들고 위협하는 군인. 부패한 관료.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난에 허덕이는 사람들. 지금 이 나라의 현실이다. pp.54-55

 

고복희의 원더랜드를 찾은 손님 박지우는 청년세대의 표본이다. 열심히 살고 싶지만 되는 게 없다. 하루가 멀다하고 해외여행을 떠나는 친구를 보다 못해 진짜를 느끼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앙코르와트를 찾아 프놈펜으로. 그러나 불국사가 서울에 없는 것처럼 앙코르와트는 프놈펜이 없었다.

 

“뭔가 이루고 싶으면 죽도록 하라고 하는데. 제가 봤을 때 죽도록 하는 사람들은 진짜 죽어요. 살기 위해 죽도록 하라니. 대체 그게 무슨 말이에요.” p.93

 

한인 회장 김인석은 기성세대를 대표한다. 노년층의 안일함과 청년층의 게으름을 못마땅히 여기며 다같이 뭉쳐 한국인의 힘을 보여줄 수 있는 일을 도모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늙은이는 시도 때도 없이 고리타분한 이야기만 지껄인다. (…) 아직도 그 시대에 머물러서 빠져나오질 못한다. 젊은 놈들은 더 한심하다. (…) 훌륭한 점심을 먹는 것이 인생에서 가중 중요한 일인 것처럼 군다. p.133

그는 스스로가 한국인이라는 데에 자부심이 있다. 한국인은 보통 인간이 아니다. (…) 얼마나 대단한 민족인데. 고개를 치켜들고 떵떵거려야 한다. 이렇게 죽은 듯이 살아서는 안 되는 거다. p.134

 

호텔 원더랜드에서 일하는 캄보디아인 린은 출중한 외모에 외국어에도 능통하다. 린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한국이 부끄럽다. 우리네가 동남아 외국인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가 정확히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린이 생각하는 한국은 자랑스럽게 여기기 힘든 나라다.

 

고용허가제가 실시된 이후로 한국은 외국인에 대한 취업문을 활짝 열어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기업은 값싼 임금으로 위험한 노동을 할 수 있는 인간을 원할 뿐이었다. 부당한 대우에도 한국 정부는 제대로 해결할 생각조차 없었다. 특히 여성 노동자에 대한 처우는 최악이었다. p.99

 

고복희의 남편 장영수는 개발 논리에 희생된 사람들을 보여준다. 바닷가 출신인 그는 새만금 간척사업이 자연에 얼마나 훼손을 가하는 일인가를 알리기 위해 애쓴다. 갯벌에 의지해 살아가는 어민들을 보호하고 자연을 살리기 위한 그의 노력은 무위로 돌아간다.

 

그것은 일종의 부끄러움이었다.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살게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고 믿는 정부에 대한. 눈앞의 손실만 바라보는데 급급한 법원에 대한. 명백한 오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나약한 자신에 대한. pp.193-194

 

고복희는 원칙주의자다. 융통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것 같지만 그녀의 원칙은 주위와 불화하지 않는다. 그녀의 원칙은 일관성있고 의로움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를 불편하게 느꼈던 박지우도 호텔에서 일하는 현지인 린도 고복희를 신뢰한다. 좀 이상하긴 하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거다.

 

낭비는 고복희가 용납할 수 없는 것 중 하나다. 불필요한 쓰레기를 만드는 건 게으름뱅이나 하는 짓이다. 항상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p.88

 

우리 사회 구성원들을 대표하는 캐릭터들이 모여 원더랜드를 둘러싼 한 바탕 이야기를 엮어간다. 교민사회의 힘 있는 자들은 각자의 목적을 위해 원더랜드를 탐낸다. 남편의 꿈을 구현한 장소인 원더랜드를 순순히 포기할 고복희가 아니다. 자신을 공격하는 움직임에 대해선 굳이 애쓰지 않지만 원더랜드를 지킨다는 원칙은 고수한다. “부당함을 알고 있으면서도 참을 수밖에 없는 그런 삶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자를 향한 불의를 눈앞에서 목격할 때 그녀는 자신의 ‘옳지 못함’을 무릅쓴다. 소설 대목 중 가장 통쾌한 장면이다. 자신의 옳지 못함으로 더 큰 불의가 자신의 본 모습에 눈을 뜨게 하는 불가사의한 통쾌함이었다.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가 「오베라는 남자」보다 재미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고복희라는 캐릭터는 그 독특함 때문에 두고두고 생각날 것 같다. 짧은 단발머리와 꼬박꼬박 내뱉는 “다, 나, 까”말투와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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