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 샘과 함께하는 시간을 걷는 인문학
조지욱 지음 / 사계절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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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길에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수많은 인간의 발자국이 묻어 있다. 어떤 길은 수천 년의 시간을 견디며 수만 킬로미터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니 길을 공부한다는 것은 인간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과 같다. 그런 역사가 깃든 길을 걸으며 수천 년 동안 그곳을 지나간 수많은 사람들과 사건들을 만나는 상상을 해 보는 것은 어떨까? p.7

 

「시간을 걷는 인문학」은 지리에 얽힌 여러 시대의 사회, 문화, 경제, 환경 등의 이야기를 길이라는 주제로 묶어낸다. ‘1장 하늘부터 바다, 땅속까지, 세상은 길로 이어져 있다’에서는 여러 가지 길에 대해 소개하고 ‘2장 우리와 또 다른 사회를 연결하는 길’에는 문명과 문명을 연결하는 길과 그 길이 있음으로 일어난 변화에 대해 다룬다. ‘3장 오고 가는 길에서 피어나는 문화’에서는 길과 강이 문명의 생성과 문화의 발달에 미친 영향을 서술하고, ‘4장 경제 발전과 전통 사이에 놓인 길’은 교역과 소통을 위한 길이 경제와 어떤 상관 관계를 맺는지 알아본다. ‘5장 자연환경과 길은 공존할 수 있을까?’에서는 인간이 만든 이기인 길과 자연이 주고받는 영향을 다룬다.

 

저자는 세계 도처의 길을 소재로 하는 동시에 그 길에서 파생된 문명 그리고 길을 통해 이뤄진 소통과 발전, 쇠망에 이르는 역사의 현장을 함께 보여준다. 길을 알면 길에 담긴 인간사를 알게 되고 인간 문명을 통찰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시간을 걷는 인문학」이라는 책의 제목은 책의 의도를 가장 적절하게 요약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길을 소개하는 부분에 눈이 갔다. 나라 땅 여기저기에 낯 선 이름의 길들이 오랜 시간동안 자리하고 있었다. 각각 길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저자는 ‘토끼비리’ 길을 설명하면서 ‘비리’란 강가나 바닷가의 낭떠러지를 뜻하는 사투리라는 것과 조선 선조 때 재상 유성룡의 일화와 고려 태조 왕건의 이야기를 한다. 역사를 담은 길 이야기가 길지 않은 에피소드로 차곡차곡 담겨있다.

 

 

이야기 사이사이 따로 영역을 만들어 넣은 단편적인 설명도 재미있다.

 

배는 어떻게 발달해 왔을까?

원시 시대의 통나무배로는 ‘카누’, 가죽배로는 ‘카약’이 있다. 단순히 재료의 뜨는 성질을 이용하던 것과 달리 인간의 힘으로 뜨도록 만든 최초의 배는 이집트인의 ‘파피루스배’다. 나일강의 갈대(파피루스)로 만든 이 배는 앞과 뒤의 끝이 올라간 모양을 하고 있으며, 처음으로 돛을 달았다. p.94

 

「시간을 걷는 인문학」은 지나온 시대에 대한 이야기에 더해 현재 그리고 앞으로 문제가 될 환경 이야기도 다루고 있다. 특히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국토가 물속에 잠기는 현상이 우리나라도 나타난다는 것에 놀랐다. 제주 ‘용머리 해안 산책길’ 이야기는 지구 환경 변화에 예외는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산책로가 바닷물에 잠기기 시작하더니 최근 들어 잠기는 시간이 길어져 하루 평균 4~6시간에 이른다. 산책로가 사라지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지구 온난화가 그중 하나라고 한다.

제주 해수면은 지난 40년 동안 22센티미터 상승하고, 바닷물의 온도는 30년 사이에 1.2도 높아졌다. 제주 해역의 해수면 상승률은 우리나라 다른 해역보다 가팔라서 1년에 4.55밀리미터씩 상승한 것을 분석됐다. 이것은 전 세계 평균 해수면이 1년에 1.8밀리미터씩 상승한 것보다 2.5배 정도 높은 수치다. 과학자들은 지구 기후 변화로 수온이 상승해 바닷물의 부피가 커진 것을 원인 중 하나로 꼽는다. 이는 이어도 남측을 지나 동해안과 일본열도 동쪽으로 들어오는 쿠로시오 해류의 유량과 수온 변화 등의 영향이다. pp.182-183

 

하나의 이야기 길이가 길지 않아 어린이가 읽기에 적당하다. 책 내용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시각 자료가 알차게 들어있다. 지도뿐 아니라 그래프, 에피소드를 설명하는 사진 등은 읽기의 흥미도를 높이는 포인트다. 다만 한 지형을 설명하며 시대나 지명, 인물 등 여러 가지 이야기가 뒤섞여 나와 배경 지식의 정도에 따라 어렵게 느껴질 수 있겠다. 연결해서 읽지 않더라도 짧은 시간에 한 에피소드씩 넘겨보아도 좋을 책이다. 역사를 공부하고 있다면 흥미로운 지역의 길 이야기를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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