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자의 인문학 - 천천히 걸으며 떠나는 유럽 예술 기행
문갑식 지음, 이서현 사진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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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티첼리와 단체의 피렌체, 클림트의 빈, 랭보의 샤를빌 메지에르, 고흐의 생 레미 드 프로방스 등 곳곳에 남아 있는 예술가들의 삶의 흔적을 마주한 뒤에야, 예술이 삶의 연장선에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p.296

 

얼핏 보면 친숙하고 생각 보면 낯선 유럽. 유럽에 대한 정보는 많고도 많다. 사진으로 영상으로 또 책으로. 서구 사회의 문화가 뿌리를 두고 있는 곳이다 보니 세월만큼의 문화와 역사의 흔적이 쌓여있는 장소들이 많다. 넓기도 하거니와 그 많은 사연들을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여행을 계획한다면 그 장소를 거친 인물들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게다.

 

「산책자의 인문학」은 15명의 역사적 인물과 인연이 있는 유럽의 도시를 소개하는 책이다. 인문학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긴 하지만 각 도시에 대한 이야기와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가벼운 담소를 건네듯 다룬다. 이 거리를 지나 저 골목에 들어가면 왼쪽에 무엇이 있고 오른쪽에는 어떤 풍경이 펼쳐진다는 서술이 많은 것은 아니다. 도시에 대한 전체적인 소개를 간략이 하고 인물과 관련된 장소 주변을 묘사한다. 그 후 그 인물이 살았던 시대상과 작품이 담고 있는 의미를 알려준다.

 

각 도시 마다 역사적 맥락을 설명해주는 부분이 좋았다. 작가의 작품을 비교하며 해설하는 서술도 좋았지만 그런 작품이 있게 된 이유를 역사적 맥락 속에서 알려주어 역사의 흐름 속에 특정 작품이 갖는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아레초와 페트라르카를 소개하는 8장이 인상적이었다. 저자도 지적하다시피 국내에는 페트라르카 연구가 적다. ‘휴머니즘의 아버지’이자 ‘현대 서정시의 아버지’, ‘인문주의의 선구자’라는데 말이다. 그가 왜 이런 이름을 얻었는지를 알기 위해선 중세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중세의 사상적 시조인 아우구스티누스에서부터 시작해 중세를 쉽게 설명한다. 그후 페트라르카가 ‘근대의 문’을 열었다고 평가되는 이유를 서술한다.

 

페트라르카는 그렇게 아우구스티누스가 열어젖힌 중세의 문을 닫고, 처음으로 근대의 문을 연 사람이다. 혹자는 둘의 관계를 이렇게 비유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독교가 로마제국에 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했고, 페트라르카는 고대 그리스·로마 문학이 기독교 세계에 해가 되지 않는 것을 입증했다.” p.177

 

인물에 대한 해설에 지면을 할애하다 보니 유럽에 대한 관심이 적은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은 제목처럼 ‘인문학’을 말하는 책이다. 인문학을 말하기 위해 산책이 필요로 한 책인 것이다. 저자는 유럽 도시들이 어떻게 인문학과 관련되어 있고 문학, 역사, 철학의 어느 지점에 기여했는지를 서술한다.

 

음악과 미술을 배태한 도시로 피렌체, 빈, 잘츠부르크, 프로방스를 소개하고, 문학과 관련된 도시로는 리옹, 샤를빌 메지에르, 뤼브롱산에 대해 이야기한다. 르네상스의 인문주의를 낳은 지역으로 아레초와 피렌체, 체르탈도, 베네치아를 여행한 뒤 스파이와 판타지의 세계로 옥스퍼드와 베를린 등을 소개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나니아 연대가와 반지의 제왕의 도시 옥스퍼드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사진과 함께 보는 재미가 있었다.

 

책에 소개된 도시들을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또는 이미 방문했다해도 그 도시들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읽다보면 여행의 의미가 한층 깊어질 것이다. 위대한 인물들이 평범한 삶을 영위했던 일상의 터를 돌아보는 동안 거대하고 멀게만 느껴졌던 그들을 좀더 가깝게 느낄 수있었다. 그와 함께 그들의 예술을 이해하는 눈도 조금은 깊어지지 않았을까. 친숙하게 또는 낯설게 만나는 유럽 도시 이야기,「산책자의 인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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