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의 거미 - 자연에서 배우는 민주주의
박지형 지음 / 이음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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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스피노자가 생물학에도 몸담았었던가? 제목을 보고 언뜻 든 생각이다. 철학에 대해서도 자세히 모르지만 생물학도 어려운 사람에겐 버거운 책 아닐까. 책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자연에서 배우는 민주주의’라는 부제 때문이다. 적자생존으로 이뤄진 진화의 세계에서 배울 수 있는 민주주의는 어떤 것일까. 저자는 자연에 대한 편견을 내려놓고 제대로 된 생태학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흔히들 자연을 적자생존과 승자독식의 원리가 지배하는 전쟁터로 생각한다.……종과 개체의 차이에 따른 경쟁과 다툼이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을 무시하고 자연을 이상화해서는 안 되겠지만, 적자생존으로만 자연을 이해할 수 있다는 잘못된 편견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 경쟁과 공존을 아우르는 제대로 된 생태학 지식이 승자독식의 원리가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이해하고 대안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pp.11-12

 

저자는 자연생태계와 인간 사회를 비교하는 동시에 근대사회의 기본 가정에 대해 살펴본다. 성장추구형 자본주의의 대안을 생각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 전제가 된 사상부터 검토해봐야 한다는 말이다. 저자는 근대의 기본 사상을 주장한 철학자들이 자신이 속한 사회 계층의 사상적 한계를 벗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결국 특정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본주의적 세계 질서는 위기를 맞았다. 자연 상태의 ‘보이지 않는 손’은 어떻게 작용할까. 책은 자연 상태의 다양한 종의 공존 방식에 대한 최근의 연구 결과를 제시하면서 한계에 다다른 자본주의 사회의 나갈 바를 제안한다.

 

「스피노자의 거미」는 생태학적 지식과 더불어 역사적 맥락, 철학사와 철학자의 사상을 아우르는 책이다. 이런 지식들을 현재 자본주의가 처한 문제에 대입한다. 경제학, 사회학에 대한 지식도 필요하다. 통섭적인 지식을 한데 모으다 보니 다양한 배경 지식이 부족한 독자는 읽는 동안 최대한 집중해야 한다. 사회계약론을 주장한 학자로 자연스럽게 묶이는 홉스, 로크, 스피노자, 루소의 주장이 같고도 다른 지점을 있었다. 철학자가 살았던 시대의 역사적 배경을 알아야 그들의 주장하는 바가 어떤 색깔인지 알 수 있었다. 미생물 배양 실험 결과 사진을 제시하고 설명하는 부분에서 저자의 치밀함에 두 손을 들었다. 모두 다 이해하기엔 벅차지만 저자의 노고엔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책이다.

 

책 내용 중 가장 공감갔던 부분은 근대가 이성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대목이다. 고대사 관련 도서를 읽거나 고전을 읽으면서 항상 드는 생각이 있다. 이렇게 오래전에 이렇게 훌륭한 문명을 건설했던 인간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대지 많이 발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원전후의 고전을 읽으면서도 같은 생각이 든다. 사람의 생각은 그리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 인간은 더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으로 발전하지도 않았으며 동물의 상태에서 대단히 많이 벗어난 것도 아닌 것 같다. 나의 막연한 생각을 저자의 손으로 정리한 것만 같은 문장들이 있었다.

 

이성의 시대로 보기에 근대사는 너무나 많은 폭력으로 점철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근대사의 전개를 계몽주의 이상이 실현되어 가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

근대는 이성이 지배하기보다는 실제로 공포가 압도한 이율배반적 시대이다. pp.40-41

 

자연에서는 하나의 종이 다른 종을 억압하지 않는다. 자원이 제한되어 있다고 해도 여러 공생의 방법으로 함께 살아간다. 환경에 최적화된 종이 더 많이 살아남기도 하지만 그런 상태는 일시적이다. 약한 종들은 함께 모여 대항하기도 하고 이른바 틈새시장을 찾는 생존 전략을 구사해 살아남는다. 그리고 공존한다. 이런 자연의 전략은 집단의 장기적 존속에도 더 유리하다. 자연의 민주주의는 현대 자본주의의 소수 독점 체제와는 다르다.

 

바로 자연생태계에서 여러 생물의 생존에 필요한 제한된 자원이 소수의 종과 개체에 의해 오랫동안 독점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환경 조건이 급변하지 않을 경우에는 자원을 분할하여 사용하는 여러 종이 서식 환경의 특성에 맞춰 다양한 방식으로 어울려 공존한다. 따라서 장기적인 생물 진화는 특정한 생태계의 환경 조건에 맞게 최대한 다양한 생물다양성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다양성이 높은 군집은 끊임없는 환경 변화에도 군집 전체의 안정성이 잘 유지될 수 있다. pp.117-118

 

자본과 자원의 편중으로 1차 세계대전과 같은 파괴적인 결말을 맞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저자는 자본을 독점하는 소수가 ‘보이지 않는 발’로 뛰어다니며 자유 시장의 원리를 침해하는 한 인간은 자연과 같은 민주주의를 이룰 수 없다고 말한다. 소수의 자본가의 보이지 않는 “사악한 정신의 손”을 제재할 ‘규범적 강제’가 필요하다. 우리들 다중은 서로의 공생, 공존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 내가 이해한 저자의 결론이다. 구체적인 협력의 방식은 독자의 숙제로 남겨두었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보장할 거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자원 배분의 민주적 원리를 찾아 나서야 할 때가 되었다. 즉 공존의 원리로부터 자원 배분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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