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 예찬 - 숨 가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품격 있는 휴식법
로버트 디세이 지음, 오숙은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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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 예찬」의 원제 ‘The Pleasures of Leisure’에서 leisure는 ‘틈, 여가, 한가한 시간, 자유 시간’을 뜻한다. 게으름으로 검색되는 영어단어는 laziness, idleness 이다. 게으름을 국어사전에서 찾으면 ‘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태도나 버릇’이라고 설명되어있고, 여가는 ‘일이 없어 남는 시간’이라 나온다. 지은이 로버트 디세이가 예찬한 것은 ‘게으름’일까 ‘여가’일까? 또는 여가를 게으르게 보내는 것일까? 아무튼 ‘게으름’은 ‘일하지 않는 시간에 관한 불안감과 초조함’을 불러오는 죄의식에 시달리도록 교육받아온 이들에게 금기를 깨는 유혹적인 말이다.

 

누군가는 그들의 식탁에 오를 음식을 위해 밭에서 일하고, 동물을 도살하고, 또 그들의 위해 길을 놓고, 옷을 짓고, 집을 짓고, 군불을 때고, 요리를 하고, 그들의 글을 출판하기 위해 인쇄를 한다는 걸 그들이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다. ······ 어쩔 수 없이 노동하면서 ‘바보’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무시해버린다는 건 너무 쉬운 일이 아닌가.

이 점을 간파한 또 다른 작가와 사상가 집단은 빈둥거림이 이상적으로 어때야 하는가에 관해 더욱 적극적이고 조심스러운 관점을 취한다. 여기서 우리는 특히 러셀을 떠올릴 수 있을 텐데, 그는 다른 사람들의 노동으로 사는 사람들의 빈둥거림(아마도 나태함)을 혐오했던 반면 모든 사람의 목표로서 여가의 증대를 권장했다. pp.25~26

 

내게 공짜나 다름없는 헐값의 차가 사실 등골 휘는 노동의 산물이라는 건 물론 알고 있다. pp.69~70

 

‘남 보기에 흉하지 않고 순탄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하려면 청소와 빨래, 요리, 정리 같은 날마다 해야 할 일이 있다. 작가와 사상가 집단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노동으로 나태하게 살아가면서 이를 알지 못한다. 「게으름 예찬」에서 말하는 ‘게으름’은 우리가 소비하고 있는 상품과 서비스가 누군가의 ‘노동의 산물’이라는 것을 간파하고 ‘모든 사람의 여가’에서 ‘게으름’을 권장한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우리는 오늘날 서구의 많은 나라와 일본에서는 일주일에 7일, 완전히 일에 소비되는 삶을 사는 방향으로 슬금슬금 후퇴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이탈리아는 확실히 아니지만, 나머지 모든 나라의 사람들은 바쁘다. 설사 바쁘지 않다고 해도 그 자신과 나머지 사람들에게 바쁘다는 믿음을 심어주느라 바쁘다. ······ 그나마 얼마 안 되는 나머지 자유 시간까지 우리 대신 그 시간을 관리해줄 사람들을 두는 데 쓰는 경향이 점점 늘고 있다. 그만큼의 대가로 우리는 더 열심히 일해야 하는데도 말이다.

관광은 이런 경향을 보여주는 확실한 예이며, 그 저울에서 문화적으로 척박한 다른 쪽 끝에는, 심지어 나르시시즘을 동방의 영원한 영적 지혜로 포장해 파는 요가를 넘어서, 헬스 클럽이 있다. pp.220

 

주당 법정 근로시간은 줄어드는 반면 24시간 영업, 새벽배송 등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간은 늘어가고 있다. 출근 전, 퇴근 후에도 휴대폰이나 태블릿으로 업무를 본다. 정말 근로시간은 줄어드는 것일까? 여가라고 생각해왔던 관광, 요가, 헬스를 자유 시간을 다른 사람에게 관리하게 하여 ‘생산 네트워크’에 다시 통합시키는 것이라는 시각이 흥미롭다.

 

노는 것은 당신 시간의 주인이 된다는 것이다. ...... 당신은 당신의 시간이 주는 즐거움을 위해 어떻게 시간을 쓸지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다. 노는 것에 그 이상의 목표는 없다. 몇 백 년 동안 지배계급이 성직자들과 군대와 함께, 노동은 신성하다고 주장해왔던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부자를 포함해 나머지 모든 사람이 뼈가 부서져라 일할 때, 그들은 자유롭게, 종종 목숨을 걸어가며 그들의 게임을 하며 놀 수 있었으니까. 일해야 할 의무가 대체 무엇이 “성스럽다”는 말인가? 이는 이제 우리가 드러내놓고 콧방귀를 뀌어야 할 허튼소리다. p.274

 

책을 다 읽고 난 후 ‘노동이 신성하다’는 지배계급의 주장에 콧방귀를 뀔 것인가, 「게으름 예찬」을 허튼소리라고 할 것인가? 지금까지처럼 열심히 일할 것인가, 이제부터 어떻게 잘 놀 것인지 생각해볼 것인가? 선택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노동이 누구의 게으름을 위한 것이고, 내가 즐기는 여가활동이 누구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해’주는 것인지 생각해보고 싶어졌다. 지은이 로버트 디세이는 당신의 게으름과 당신의 주머니는 아니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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