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나 1 - 개정판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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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은 소설이 오직 한 가지에 관한 내용이어야만 한다는 듯이 “뭐에 관한 내용이에요?”라고 물을까. 1권 p.318

 

작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일침이다. 소설 「아메리카나」를 ‘세계로 꿈을 펼치려는 젊은 나이지리아 여성의 삶’에 대한 이야기라고만 말하기엔 부족하다. 여기엔 무엇보다 인종 차별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여성, 사회 계급, 편견 그리고 삶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모두 담겨 있다. 아디치에의 첫 장편소설 「보라색 히비스커스」를 읽고 나서 이 책을 손에 드니 지명과 음식, 이보어 표기 등이 익숙해 단번에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전작의 소녀가 자라서 여성의 삶을 들려주는 듯했다. 때론 흔들리지만 자기 안의 중요한 것들을 지킬 줄 아는 여성말이다.

 

나이지리아인 여성 이페멜루는 안정적으로 정착한 미국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가려 한다. 인종 문제를 다루는 블로거로 이름을 얻고 있었고 예일대 교수 남자친구도 있다. 그녀는 그 모든 것을 버리고 고향을 택한다. 고국 나이지리아에 있을 때 미국은 그야말로 약속의 땅이었다. 어떻게든 비자를 얻어서 도착하기만을 바라는 곳. 미국 입국 초기의 힘든 적응기를 거쳐 안정적으로 정착한 후에도 이페멜루는 이질감과 결핍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미국은 그녀에게 “뿌리를 내리고 난 뒤에도 계속해서 그 뿌리를 뽑아내어 흙을 털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장소(1권 p.17)일 뿐이다.

 

그는 더 이상 확신할 수 없었다. 아니, 사실은 한 번도 확신해 본 적이 없었다. 지금의 자기 인생을 정말로 좋아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인지, 아니면 좋아해야 마땅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인지를. 1권 p.43

 

이페멜루가 미국 사회에 적응해나가는 과정에는 그녀 주변의 다양한 인물에 대한 묘사가 있다. 친구 기니카와 우주 고모는 세대별로 미국 사회에 적응하는 모습이 다름을 보여준다. 고국 나이지리아에서 군(軍)장성의 첩으로 살던 고모는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상황에서 아이까지 데리고 도망치듯 미국으로 갔다. 예상치 못했던 이주였던 탓에 생활고에 시달리고 본연의 모습을 잃어간다. 반면 대학생 기니카는 미국의 모든 것을 온 몸으로 받아들인다. 말그대로 자연스러운 ‘아메리카나’가 된다.

 

나이지리아에서 우주 고모의 전화를 받았을 때는 상황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지금 돌이켜 보니 고모의 말이 늘 모호했고 자세한 내용은 없이 “일”과 “시험”이 어떻다는 얘기만 했음을 알 수 있었지만.……미국이 그녀를 굴복시켰던 것이다. 1권 p.188

 

우주 고모와 달리 젊은이의 유연성과 유동성을 가진 기니카는 미국에 와서 문화적 신호를 피부로 흡수한 덕에……. 1권 p.211

 

삶의 터를 통째로 바꾼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나이지리아 인에게 미국은 선망의 땅이지만 두 나라는 문화가 다르고, 역사적 굴곡까지 겹쳐있다. 이페멜루의 초기 미국 생활 부분에 이러한 상황이 잘 묘사돼 있다.

 

나이지리아에서는 누가 너한테 살 빠졌다고 하면 나쁜 뜻이잖아. 그런데 여기서는 누가 너한테 살 빠졌다고 그러면 고맙다고 해. 그냥 여긴 좀 달라. 1권 p.210

 

갑자기 안개에 싸인 느낌, 자신이 하얀 거미줄을 뚫고 나가려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반(半)장님의 가을, 어리둥절함의 가을, 자신이 모르는 난해하고 다층적인 의미가 있음을 나는 상태에서 겪게 되는 경험들의 가을은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 1권 p.222

 

나이지리아 뿐 아니라 아프리카 출신 흑인이 미국에서 겪는 차별은 먼 일이 아니다. 우리가 외국에서 나가서 마주하는 일일 뿐 아니라 국내의 동남아 출신 이주자에게 행하는 일이다. 이페멜루를 대하는 미국 백인 사회 일원들의 말과 행동이 우리 동양인에게도 다르지 않을 것이며 또한 우리 자신도 동남아 이주자에게 그들과 비슷한 말과 행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킴벌리는 “문화”가 자신에겐 낯선, 유색인들의 다채로운 보고(寶庫)라고, 반드시 “풍요로운”이라는 형용사의 수식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특유의 다정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녀는 절대 노르웨이가 “풍요로운 문화”를 가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1권 p.248

 

그녀는 켈시에게서, 자기는 틈만 나면 미국을 비판하기만 외국인이 그러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 진보 성향 미국인들의 민족주의를 알아챘다. 그들은 외국인 이민자가 군말 없이 고마워하기만 기대했고, 그가 어디서 왔건 미국이 그의 고국보다 얼마나 더 좋은 곳인가를 늘 상기시키려 했다. 1권 p.318

 

인종에 대한 편견은 서로 다른 인종 사이에서 뿐 아니라 동일한 인종 사이에도 존재했다. 이페멜루가 보모로 일하는 집에 유색인 카펫청소부가 방문한다. 그는 그녀가 그 대저택의 안주인이라고 착각한 순간 적대감마저 드러낸다. ‘질서’가 파괴된 것에 대한 분노였다. 같은 유색인이면서도 그녀가 그런 집의 주인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대혼란은 이페멜루가 본인의 위치를 밝히면서 수습된다.

 

우주가 다시 질서를 되찾았다. 1권 p.281

 

나이지리아로 돌아온 이페멜루는 자신의 삶과 사랑을 이루기 위해 분투한다. 타인의 기준 때문에 연기하지 않고 자유로운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고자 한다. 이페멜루 이야기는 어려움을 끝에 왕자님을 얻는 신데렐라 스토리는 아니다. 그녀는 큰 소리로 웃고, 하고 싶은 말이 터져나올 때는 (설사 나중에 사과를 하더라도) 해야 하는 사람이다.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나라 나이지리아에서 여성으로 살면서 이런 자기 본연의 모습을 지키는 것 자체가 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이페멜루의 상처와 고통이 조금 덜 하길 바랄 뿐이다.

 

인종과 차별에 대한 인류학 또는 사회학 보고서를 읽은 듯 한 소설 「아메리카나」에서 개인적으로 얻은 가장 큰 성찰은 나라를 떠나는 사람들의 상황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리 특별할 것 없는 말이다. 어려울 것 없이 살았지만 더 나은 삶이 다른 나라에 있다는 믿음이 있을 수 있다.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타국인들을 생각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할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알렉사와 다른 손님들, 어쩌면 조지나조차도 누군가가 전쟁으로부터, 또는 인간의 영혼을 파괴하는 가난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은 이해했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다는 사실이 가져다주는 억압적인 무기력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은 욕구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오빈제 같은 사람들, 즉 유복하게 자랐지만 불만에 빠져 있고 태어날 때부터 고국이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보도록 길들여진, 진정한 삶은 그 다른 곳에 있다고 영구불변하게 확신하는 사람들이 단지 떠나기 위해-그중 어느 누구도 굶주리거나 강간당하거나 마을이 불타지 않았지만 그저 선택의 가능성과 확실성에 목말라서-위험한 일, 불법적인 일을 하기로 결심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2권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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