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만 3형제 방랑기 사계절 그림책
신동근 지음 / 사계절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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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동네가 화살 투성입니다. 옆집 초가지붕에, 산 중턱 정자 머리에, 할아버지 망건에, 길가는 아주머니 머리 위의 짐 보따리에. 심지어 돌산꼭대기까지. 옆 집 할아버지는 곰방대를 휘두르며 성을 냅니다.

 

저 눔 호랭이가 안 잡아가나!

 

허구헌 날 활만 쏘는 그것도 기막히게 잘 쏘는 잘만쏘니 이야깁니다. 잘만쏘니가 하루는 친구를 만나는데요. 이 친구 이름은 잘만뛰니네요. 뜀박질을 하도 잘해서 잘만뛰니랍니다. 두 친구가 산길에서 눈을 데굴데굴 천리를 보는 잘만보니를 만납니다.

두둑한 몸집에 활통을 멘 잘만쏘니, 가늘고 기다란 다리를 자랑하는 잘만뛰니, 왕방울만한 눈의 잘만보니의 모습은 각자의 장기를 잘 표현하고 있는데요. 서로서로 만나게 되는 에피소드가 흥미롭게 전개됩니다. 열두 고개 너머에 위험에 처함 새 새끼를 구하면서 서로 죽이 잘 맞은 셋은 의형제를 맺습니다. 이렇게 잘만 3형제가 탄생합니다. 책「잘만3형제 방랑기」는 이들 형제의 모험이야기입니다.

 

 

세상 구경을 나간 3형제 눈에 비친 주변의 모습은 특별할 것이 없습니다.

 

세상은 뭐 다 비슷비슷해. 가도 가도 산이고

 

비슷비슷한 세상 속에도 형제들을 위한 순간이 있습니다. 어느 날 잘만 3형제에게 드디어 모험의 기회가 옵니다. 전재산을 걸고 달리기 내기를 하는 최부잣집이 있는 마을에 도착한 거죠. 내기에 진 마을 사람들은 모두 최씨의 머슴을 살고 있습니다. 달리기 내기라는 말에 눈이 번쩍 뜨인 3형제는 마을로 달려갑니다. 최부잣집 발이여섯 아씨와 산꼭대기 우물물 떠오기 내기를 하려는 거죠. 발이여섯 아씨를 우습게 본 잘만뛰니는 한쪽 다리를 묶고 출발선에 섭니다. 잘만뛰니는 발이여섯 아씨를 이기고 마을 사람들을 머슴살이에서 구하게 될까요?

 

 

산 너머 경기 상황을 실시간 중계하는 잘만보니와 토끼처럼 낮잠에 빠진 잘만뛰니를 깨우는 잘만쏘니 화살의 도움으로 경기는 아슬아슬하게 진행됩니다. 잡을락말락, 잡을락말락 아슬아슬. 누가 이겼을까요?

 

 

「잘만3형제 방랑기」는 입에 착 붙는 문장으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마치 할머니가 “옛날옛날에...”하면서 들려주던 전설을 듣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림책으로 읽기보다 리듬을 타며 소리내어 읽는 맛이 특별한 책입니다. 위트있는 그림체도 매력적입니다. 3형제를 특기를 살려 묘사한 모습도 그렇지만 발이여섯 아씨는 특히 눈길을 사롭잡네요. 처음 잘만 3형제가 최씨 집을 찾아갔을 때 아씨는 긴 속눈썹을 내려깔고 다소곳한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잠시후 경주가 시작되자 기다란 눈을 치켜뜨고 송곳니를 드러낸 표독스런 얼굴로 바뀌죠. 그리고 마지막 경주 도착 지점에서 아슬아슬하게 결과가 갈리는 장면의 아씨 표정은 이 책 전체 그림 중 가장 압권이었습니다.

 

 

용감한 형제들이 폭정을 일삼는 양반을 처단하고 백성을 구한다는 교훈을 굳이 들먹이고 싶지 않은 책입니다. 3형제가 서로서로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는 모습,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무엇보다 풍자와 해학이 가득한 그림을 보는 맛이 있는 옛이야기다운 책이었습니다. 잘만 3형제의 방랑이 계속되길 바랍니다. 이렇게 매력 가득한 캐릭터를 한 번밖에 볼 수 없는 건 좀 아까운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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