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필요한 순간 - 삶의 의미를 되찾는 10가지 생각
스벤 브링크만 지음, 강경이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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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두 가지 삶이 주어진다면 어떤 쪽을 선택하겠는가. 타인의 자유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삶과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이코패스 독재자의 삶. 게다가 이 독재자는 건강하게 장수하기까지 한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어찌보면 단순한 질문이다. 마음껏 세상을 좌지우지하는데 암살당할 위험조차 없는 독재자의 삶이 한 번 사는 인생의 ‘가성비’ 측면에서 유리한 선택이 아닐까.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독립을 위해 일가 전체의 재산과 목숨을 바친 독립투사 자신과 그 후손이 어떻게 살게 됐는지 생각해보자. 우리는 그 처절한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 단지 옳다는 이유로. 단지 그런 행동이 선하다는 이유로.

 

‘효용성’을 따지며 ‘행복한’ 삶을 추구하면 과연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 철학하는 심리학자 스벤 브링크만이 책「철학이 필요한 순간」전체를 통해 묻는 질문이다. 저자의 답은 정해져 있다. 그 답은 물론 ‘아니다’다.

 

 

저는 삶의 의미가 무언가를 성취하거나 얻기 위한 도구적인 일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일과 그 자체를 위해 몰두하는 활동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p.13

 

저자는 의미있는 삶을 힘들게 하는 요소로 ‘도구화’를 경계한다. 책에서 말하는 도구화란 ‘우리가 목적으로 삼아야 하는 것들이 다른 것들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이나 도구처럼 취급되는 현상’(p.13)을 말한다. 이상적인 삶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돈을 벌려고 애쓰지만 종당에는 돈을 벌려는 목적은 잊은 채 돈만을 숭배하게 되는 것과 같다. 도구주의적 사고는 각자의 삶마저도 가치를 매겨 서로를 비교하고 우위를 판단하려 한다. 이러한 도구화된 삶을 벗어나기 위해 저자는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닌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비록 ‘쓸모’를 따지자면 실용성이 없지만 삶의 도구화를 피하기 위해선 삶의 방식으로 철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철학적 삶의 초점은 우리가 가진 꿈이나 욕망을 최대한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아니라, 그 꿈이 우리의 짧은 삶에 비추었을 때 과연 추구할 가치가 있는지 따져보는 것이기 때문이다.p.235

 

책에는 저자가 생각하는 ‘그 자체로 의미있는 삶을 위한 관점’ 10가지가 제시되어 있다.

 

1. 우리가 그 자체를 위해 하는 것이 선이다(아리스토텔레스)

2. 존엄성은 가격으로 따질 수도 없고 대체될 수도 없다(칸트)

3. 인간은 약속하는 동물이다(니체)

4. 자기란 관계 그 자체와 관계하는 관계다(키에르케고르)

5. 진리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인간은 진실할 수 있다(아렌트)

6.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일은 그의 삶 무언가를 손에 쥐는 일이다(로이스트루프)

7. 사랑은 우리 자신 외에 다른 무언가가 실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가능한 무척 어려운 깨달음이다(머독)

8. 용서는 오직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일이다(데리다)

9. 자유는 특권이 아니라 책임으로 이루어진다(카뮈)

10. 죽는 법을 배운 사람은 노예가 되는 법을 잊는다(몽테뉴)

 

책에 제시된 철학자들의 말들의 단편만 읽고서는 이 말들이 의미있는 삶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이들 철학자에 대한 얼마간의 이해가 있다면 또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저 대단한 철학자들의 명성만으로도 목차에서부터 난해함을 전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의 장점이 여기서 발휘된다. 얼핏 이해하기 어려운 ‘수수께끼’같은 철학자의 말을 쉬운 예를 들어 설명해준다. 또 목록에 나온 철학자 외에도 비슷한 주장을 한 철학자를 소개하고 각각의 주장이 어떻게 비슷하고 또 다른지 풀어 설명한다. 부담스런 철학자의 이름들에 무거워졌던 마음을 벗고 저자의 주장에 공감하며 읽어나갈 수 있었다. 나중의 기억은 차치하고라도 책을 읽는 동안은 말이다.

 

저자가 강조하는 여러 관점 중 타인에 대한 부분이 많이 남았다. 가성비를 따져서 나에게 득이 되는가, 이익의 크기는 얼마인가를 따지는 주관주의에서 쉽게 간과되는 부분이다. 책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을 전제로 공동체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다.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인간다운 인간은 조직된 사회나 공동체 안에서만 자라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우리는 인격을 형성할 수 있는 안정적인 사회구조 안에서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람이 될 수 있다’(p.52)고 말이다. 윤리 교과서에서 본 듯한 이 말들이 지금의 사회에서 더욱 절실하다. 자기 이해와 자아 성찰 조차도 혼자서는 제대로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채 자기 성찰만 해서는 결코 자기 자신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p.120

 

취향의 존중, 중요하다. 개인의 행복, 이 또한 중요하다. 하지만 유한한 인간의 생을 감안할 때 좀 더 의미있는 삶은 무엇일까. 저자는 자신의 제안이 전부는 아니라고 말하며 이를 바탕으로 과연 의미있는 삶이 무엇인가에 대해 논의해보자고 권한다. 주관성과 도구화의 늪에서 벗어나 공동체적 존재인 인간을 인식하고 마땅히 추구해야할 미덕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고 말이다.

 

 

우리는 단순히 행복을 최대한 많이 얻는 삶이 아니라, 의미 있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사람들과의 복잡다단한 진짜 관계 속에서 말이지요……그리고 삶의 의미는 경험만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다고 말하지요. 의미 있는 삶은 오직 우리가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진 활동에 참여할 때 얻을 수 있습니다.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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