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타라 납치사건
데이비드 I. 커처 지음, 허형은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6살 어린아이를 납치한 종교집단과 아이 가족의 이야기, 근대의 문턱에 선 국가의 변혁에 대한 이야기, 신과 정치가 하나에서 둘로 갈라지는 순간의 이야기, 어린 시절을 빼앗긴 아이의 돌이킬 수 없는 정체성의 변화 이야기. 이 모든 이야기가 있다. 「모르타라 납치사건」이라는 책안에.

미국의 역사학자 데이비드 I. 커처는 특히 이탈리아 역사에 관심이 많다. 「중앙 이탈리아의 가족생활」, 「교황과 무솔리니」, 「유대인을 박해한 교황들」과 같이 이탈리아의 역사와 생활을 소재로한 책을 저술했다. 관심의 연장선에「모르타라 납치사건」이 있다. 즉 이 이야기는 역사 속의 실제 사건을 소재로 쓴 책이다.

 

1858년 6월 23일 수요일 해질 무렵, 볼로냐에 위치한 유대인 상인 모르타라의 집에 경찰이 들이닥친다. 그 집의 일곱 아이 중 에드가르도를 데리러 온 것이다. 아이가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이 익명의 제보자에 의해 밝혀졌으므로 이제 교황의 자녀가 되었다는 게 이유다. 무슨말인고 하니 볼로냐는 당시 교황령이었다. 즉 교황의 말이 법이고 경찰도 교황 소속이며 정치도 교황이 하고 있다는 말이다. 세례를 받으면 가톨릭 교도가 되는 것이고 가톨릭 교도는 이교인 유대인 가정에서 자랄 수 없다. 그러므로 모르타라는 친부모의 품을 떠나 교황이 운영하는 교육시설로 옮겨져야 한다는 논리다.

교황이 나라를 다스리는 건 그것이 신의 뜻이기 때문이었다. 국민이 통치자를 직접 선택해야 하고, 원하는 대로 사고할 자유가 있어야 하며, 믿고자 하는 바를 믿을 수 있어야 한다는 혁명적 관념-이런 관념은 교황이 보기에 단순히 잘못된 정도가 아니라 이단, 사탄의 소행이며 프리메이슨을 비롯해 하느님과 기독교의 온갖 적의 방해공작이 낳은 결과물이었다. 세상은 신이 의도하신 대로 잘 굴러가고 있었다. 진보는 이단이었다. p.12

모르타라 부부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지만 지금 기준으로 어처구니 없는 이 법이 그 당시 로마를 비롯한 교황령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부모 품을 떠난 적이 없는 아이가 도대체 언제 어디서 세례를 받았다는 말인가. 모르타라는 집요하게 아이가 세례받은 일을 파헤치고 무효화하고자 노력한다. 특유의 응집력으로 유럽 전체의 유대인이 이 가족을 도우려 한다. 당시는 사분오열돼 있던 이탈리아 영토의 여러 나라들이 통일 이탈리아를 세우고자 했던 시기이며, 국제 정세 또한 혼란스러웠다.

 

교황청에 의한 모르타라 납치 사건은 가톨릭과 유대인 집단에게 각각 서로의 이익을 위해 이용되고 국제적으로도 마찬가지다. 프랑스는 이탈리아에 주둔하는 오스트리아를 견제하기 위한 빌미로 모르타라 사건을 이용한다. 이탈리아 통일을 주장하는 세력은 교황제의 억압성과 전근대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언론을 통해 이 사건을 왜곡시킨다. 전 유럽이 이 사건의 향방에 촉각을 세우지만 어느 누구도 모르타라 가족과 에드가르도의 안위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자유주의 신문 <라 페르세베란차>가 명백히 광신도 풍자극으로 본 사건을 <일 카톨리코>의 독실한 편집자들은 신앙과 기독교가 적의 만행에 맞서 승리한 감동 실화로 해석한 것이다. 묘사한 상황이 그들의 상상 속에서만 일어났다는 점은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p.359

에드가르도는 풀려나지 못한 채 가톨릭 교육기관에서 무려 12년의 교육을 받게 된다. 그 사이 교황령은 무너지고 사보이 가문을 수장으로 하는 통일 이탈리아 정부가 들어선다. 새로운 정부는 구세력의 대표적인 잔재를 청산한다는 차원에서 에드가르도를 자유롭게 풀어주려 한다. 모르타라 가족은 꿈에 그리던 상봉을 기대하며 로마로 달려온다. 12년의 간극이 가족에게 가져온 끔찍한 변화는 어떤 결말을 가져왔을까.(이 부분이 스필버그가 영화화를 결정하는데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궁금하시면 직접 읽어보시길.)

통일 이탈리아의 군대가 진격해오기 전에 교황의 로마지배가 종식되기를 바란 모르타라 가족의 기도는 오랜 기다림 끝에 1870년에야 응답을 받았다.……교황청 경찰이 볼로냐의 집에 들이닥쳤을 때 에드가르도는 여섯 살이었다. 이제 그는 열여덟 살이었다. pp.476-477

나에겐 이 책이 세계사와 권력의 소용돌이에 휩쓸려버린 일개 가족과 개인의 이야기로 다가왔다. 성실하고 올바르게 살지만 크고 작은 외부의 힘에 의해서 가족이 찢기고 개인의 인생은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입는다. 개인의 정체성마저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바뀌고 만다. 무엇보다 모르타라의 이야기는 실제 사건이라는데 큰 울림이 있다. 흔한 말로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이야기다. 작가는 모르타라 가족의 서사를 풀어나감과 동시에 그 사건을 바라보는국가 내외의 다양한 시선, 가톨릭과 유대교인의 서로 다른 주장을 입체적으로 서술한다. 이 사건과 관련된 주요 인물들뿐 아니라 교황청 관계자, 각국의 대사와 정치인들, 이탈리아 각지의 유력인사들의 진술 자료를 서사구조 사이사이에 체계적으로 직조하는 솜씨를 발휘한다.  수많은 자료를 한 줄기의 이야기 속에 매끄럽게 직조해 넣은 덕분에 숨 쉴 틈 없는 역사 다큐멘터리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모르타라 납치사건이 발생한 때는 이탈리아 땅의 세계관이 뒤바뀌는 시기였다. 교황이 모든 것의 중심이던 시대에서 개인의 법앞의 평등과 자유를 보장하는 시대로 바뀐 것이다. 거대한 역사의 변화를 거스르려던 교황령의 사람들은 바티칸을 유지하는 선에서 명맥을 유지한다. 구체제가 스러지는 와중에 부서져나간 개인의 삶은 어디서 되찾을 수 있을까.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유연하게 변화할 능력이 없는 집단은 도태되기 마련이다. 그 집단이 크면 클수록 또 우리 삶과의 거리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그들이 휘청일 때 우리의 일상도 흔들린다. 그들이 제때 변화하지 못하는지 자신들의 특권만 움켜쥐려 변화를 거부하는지 제대로 지켜볼 일이다. 우리 삶이 함께 쓸려 내려가는 고통을 얼마간이라도 줄여보려면 말이다.

 

1997년에 전미도서상 후보에 올랐던 책이 이제 와 출판된 이유는 소설보다 더 믿기 어려운 이 이야기가 영화화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영화계의 미다스의 손’ 스티븐 스필버그에 의해서. 주연배우 이름까지 책 날개에 명시되어 있는 걸 보면 빈말은 아닌 모양이다. 출판된지 20년이 넘은 책, 그것도 사람들의 관심이 적은 이탈리아 근대사를 다룬 책을 출판되도록 만드는 영상화의 힘, 아니 스필버그의 힘에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이탈리아의 중세가 어떻게 끝을 맺었는지, 그 와중에 ‘모르타라’라는 이름의 개인이 겪은 고통이 어떤 것이었는지 영영 알 일이 없었을테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