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방문자들 - 테마소설 페미니즘 다산책방 테마소설
장류진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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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방문자들」은 페미니즘 테마소설집이다. 비교적 근래에 활동을 시작한 작가 6명의 작품을 모았다. 출판계에 한 분야로 자리잡은 페미니즘은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그렇다고 잘 아는 사람도 많지 않은 장르인 듯하다. 잘 알아보기도 전에 대놓고 불편해 하는 시선이 있기에 하는 말이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또 성차별에 대한 이야기는 국민의 절반 또는 세계의 절반이 몸담고 있는 생활이다. 뭔가 심정이 상하고 부정적인 마음이 들더라도 외면하고 살 수만은 없다. 범죄로 다루어지는 특별한 사건이 아니고 내 앞의 현실이다.

 

더 말안해도 될 법한 베스트셀러 「82년생 김지영」이후로 특별한 사건이 아닌 생활 속의 성차별에 대한 인식이 환기되기 시작했다. 할머니 세대, 어머니 세대에는 당연시 되던 생활이 왜 당연한 것이 아닌지를 어렴풋이 알아채게 된 것이다. 어떤 이들의 그런 말들, 저런 행동들이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새벽의 방문자들」도 그 연장선에 있는 책이다. 책 뒷표지의 말처럼 “픽션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여섯 편의” 불편하지만 일상적인 “이야기”가 담겨있는 책이다.

 

2018년 작품활동을 시작한 장류진 작가의 「새벽의 방문자들」이 표제작이다. 오피스텔에 혼자 사는 ‘여자’의 집 초인종을 새벽마다 울리는 남자‘들’이 있다. ‘여자’는 그들이 성매수를 위해 찾아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어느 날 익숙한 얼굴을 대면하게 된다. 결혼을 하자며 핑크빛 미래를 속삭이던 남자. 작가는 여성의 대상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현재도 성매수에 대한 대화는 어떤 자리에서는 스스럼없이 오가는 주제일 것이다. 작가는 이런 자연스러움이 비뚤어져 있는 지점을 짚어준다.

 

솔직히, 여성과의 관계를 돈 주고 사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게 어떤 형태였든 별로 인간 취급을 해주고 싶지가 않다. 여자를 구매 가능한 서비스 재화로 취급하는 사람을, 왜 나는 인격체를 가진 안간 취급을 해줘야 하지? p.40

 

2016년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하유지 작가는 「룰루와 랄라」에서 약간의 희망을 보여준다. 함께 사는 비정규직 남자와 프리랜서 여자는 자주 마주치는 한 동네 여자 ‘룰루’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여자는 가계에 보탬이 되고자 공장에 취직한다. 불합리한 공장 생활에 치이던 중 침울해 보이기만 하던 룰루의 사연을 알게 된다. 작가는 침묵을 강요당하는 현실과 사람이 주는 용기와 희망에 대해 이야기 한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침묵해야 하고 지울 수 없는 기억에 대해 침묵해야 하는 자들이 서로에게 의지가 될 수 있다고 말이다.

 

정지향 작가는 2014년 활동을 시작했다. 「베이비 그루피」에서 작가는 ‘그루피’라는 말 그대로 밴드를 따라다니는 아이들을 그린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베이비’라는 말이다. 미성년. 그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 볼 틈도 없이 밴드의 구성원들에게 휘둘린다. ‘나’는 우연히 알게 된 밴드 멤버 P와의 관계에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할 지 고민한다. ‘나’는 ‘그루피’라는 단어에서 자신 정체성을 확인한다.

내가 아는 모든 것을 거모아도 설명되지 않던 한 시절이 그 단의 발견과 함께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p.135

그 시절의 우리는 자기감정을 정확하게 짚어내지 못했다. p.137

「예의 바른 악당」은 2009년 데뷔한 박민정 작가의 단편이다. 「아내들의 학교」에서 여성문제에 대한 자신의 색깔을 확실하게 보여줬던 터라 반가웠다. 이번 단편에서 작가는 대의를 쫒는 자들이 주변인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이야기한다. 동지들과 정의를 추구하지만 연인에 대한 배려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연인, 나를 위해 많은 것을 나누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친절이 불편하게만 느껴지는 친구에 대해서 말이다. 우리라는 말로 뭉뚱그려질 수 없는 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우리는 결코 우리일 수 없었다. p.188

 

2009년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현 작가의 「유미의 기분」은 스쿨미투를 소재로 한다. 교사인 형석은 수업시간에 생각없이 “여자는…”으로 시작하는 농담을 하고 학생 유미는 그 말에 책임질 수 있는가를 따져 묻는다. 게이인 형석은 소수자로서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스쿨미투를 감행한 유미의 기분에 대해 생각한다. 작가는 차별받는 입장에 서보지 못한 자들의 오만을, 또 그들의 사과가 어떠해야할지를 이야기한다.

 

형석은 유미의 말을 계속 들었다. p.225

 

작가 김현진(1999년 작품활동 시작)은 「누구세요?」에서 이 소설집에 등장한 인물 중 가장 특이할 만 한 캐릭터를 소개한다. 직장내 성희롱 문제로 권고퇴직당한 여자 친구를 자신의 미래 계획에 차질을 주었다면 차버리는 남자말이다. 여자는 사회생활하면서 그만한 일은 감수해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이라는 ‘말’도 한다. 게다가 함께 모은 결혼자금은 맞벌이 부부의 꿈을 깬 위자료라며 가져간다. 그들은 그래도 된다고 생각한다. 과거부터 그래왔고 지금도 그렇고 미래는 모르겠다. 작가의 말대로 ‘자신을 약자의 위치에 놓아볼 상상력이 없는 어떤 남자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조금쯤 성찰할 수 있는 때가 오길 바랄 뿐이다.

 

빌 클린턴이 미국 대통령 재임 시절 군인들 중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을 완화하려는 정책을 취하자 수많은 이성애자들이 분개했는데, 이것은 ‘공포’에 가까웠다고 한다. 늘 이성을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아온 그들은 자신들이 그러한 성적 대상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다는 것이다. p.266

 

이야기가 길어졌다. 작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 주고 싶었다. 이런 소설을 써줘서 고맙다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하고 싶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이야기들,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지나가는 이야기들, 하지만 응어리와 수치심이 얽혀 파묻힌 이야기들. 우리의 이런 이야기를 더 들려달라고 우리의 생각을 더 해부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다. 책에 실린 단편에서 한 발 씩 더 나아간 이야기를 지치지 말고 들려달라고 당부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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