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지에 혼자 남은 소녀가 있다. 엄마가 떠난 6살 무렵부터 혼자 살아간다. 형제자매마저 떠난 아이의 곁에는 음주와 폭력만을 일삼는, 없는 것보다 못한 아비가 있을 뿐이다. 아이의 이름은 카야.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숨어야 하는 사람들이 사는 습지에서 카야는 혼자 살아남는 법을 배운다. 혁대를 휘두르고 불에 달궈진 부지깽이로 아이를 때리는 아비라도 곁에 있길 바랄만큼 깊은 고독 속에서 산다.

 

제목「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저 숲속 깊은 곳, 야생동물이 야생동물답게 살고 있는 곳” 즉 카야가 사랑하는 바닷가 습지를 말한다. 카야는 습지를 어머니 삼아 살아간다. 아직 인종차별이 심한 시절에 흑인 점핑의 배려를 얻어 생계를 꾸린다. 흑인의 도움을 받는 백인 아이는 마을에 속할 수 없다. 더군다나 습지에 사는 그 아이는 손가락질과 경계의 대상이다. 카야는 자신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없이 마을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괴물이 되어간다.

 

혼자 자란 카야가 성인이 된 어느 날 마을 유지의 아들이 시체로 발견된다. 한 때 그와 사귀었던 카야가 즉시 용의자로 지목된다. 몇 가지 정황 증거 외에 확실한 물증은 아무 것도 없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마녀를 잡기 위해 달려든다. 카야와 청년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마녀를 쫒는 마을 사람들과 카야를 이해하고 아끼는 소수의 사람들 중 어느 쪽이 미소짓게 될까.

 

야생 생물학자 델리아 오언스의 첫 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살인 미스터리의 외피를 쓰고 있다. 시체가 발견되고 증거를 찾고 알리바이를 끌어 모은다. 추리 소설처럼 범인을 쫒다보면 어느 새 로맨스 소설이 되어 있다. 여섯 살이던 아이가 예순 여섯에 이르는 과정을 따라가는 성장 소설로도 읽을 수 있다. 읽기를 멈추기 힘든 이야기다. 과학자로서 평생을 산 사람이 어떻게 이런 서정적인 문제를 구사할 수 있는지 놀라웠다. 중간 중단 나오는 시 이외에 이야기를 풀어가는 문장 곳곳에 시와 같은 문장이 산재해 있다. 그야말로 “시적인 묘사가 어우러진” “습지의 언어”로 쓰인 소설이었다.

 

카야는 말들이 손아귀로 강렬한 의미를 움켜쥐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그 손을 활짝 펼쳐 의미를 풀어낼 수는 없었다. 혹시라도 시인이 된다면 카야는 메시지를 명료하게 쓰고 싶었다. p.144-145

 

이 소설에서 자연은 또 하나의 주인공이다. 소설에 묘사된 습지는 작가가 평생 야생동물을 연구한 미국 남주의 노스캐롤라이나주 아우터 뱅크스 해안이다. 바다를 눈앞에 두었을 땐 그 풍요로운 아름다움을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델리아 오언스의 문장으로 만난 이국적인 바다와 습지는 천변만화하는 모습으로 다가왔다. 따뜻하게 감싸주는 바다에서 사람을 해칠 듯이 흉포한 바다로 변화했다. 작가는 순간순간 변하는 자연을 눈에 그린 듯 손에 잡힐 듯 그려낸다. 이야기의 매끄러움과 또다른 책 읽는 재미를 선물받은 순간들이었다.

 

사람들은 낚시할 때 말고는 습지를 제대로 보지도 않거든. 매립해서 개발해야 할 황무지라고 생각하지. 바다 생물한테 습지가 필요하다는 것도 몰라. 자기네들이 그것 때문에 먹고 살면서. p.152

 

이 책은 여섯 살 소녀가 자기를 버리고 떠난 엄마를 이해하는 과정, 호의없는 세상에서 스스로를 구원하는 과정, 그녀의 가치를 알고 서로를 완전하게 할 사람을 찾는 과정으로 읽을 수 있다. 또 습지소녀가 자신들과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마을사람들이 받아들이면서 자신들 안에 쌓인 편견을 얼마쯤 무너뜨리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카야가 여섯 살이던 1952년과 살인 사건이 일어난 1969년을 오가는 이야기 구조는 소녀의 성장과 마을 사람의 변화를 더 선명하게 보여준다. 카야가 자신의 고독과 어떻게 싸우는지 또 마을 사람들이 습지소녀를 바라보는 눈을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말이다.

 

느닷없이 카야는 엄마가 왜 참았고 엄마가 왜 떠났는지 선명하고도 뚜렷한 깨달음을 얻었다.……“이제 알겠어. 이제야 엄마가 왜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는지 알았다. 몰랐어서 미안해.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해.”

“난 그렇게 살지 않을 거야. 언제 어디서 주먹이 날아올까 걱정하면서 사는 삶 따위 싫어.” p.339

 

혼자 외톨이로 사는 건 그렇다 치자. 하지만 두려움에 떨며 사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p.352

 

짐승에 가까운 폭력성에 맞서는 용기, 피해자로서 살지 않겠다는 용기, 무엇보다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인정하는 용기, 그 끝에서 자신의 인생을 새롭게 할 결단을 내린다. 카야의 결단을 불편하게 바라볼 수도 있다. 그러나 카야가 더 이상 자신을 누르는 폭력에 꺾이지 않고 스스로를 구원할 용기를 낼 수 있었다는 사실을 응원하고 싶다. 카야의 행동에만 초점을 둘 것이 아니라 그녀가 처한 상황을 알아보려하지도 않고 또 알고 있으면서도 올바른 판단없이 멸시하고 동조하기까지 한 대다수의 마을 사람들에게 시선을 두어야 한다. 우리의 시선이 마을 사람들의 그것과 얼마나 다른지를 생각해 봐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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