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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육아일기를 읽다 - 단맛 쓴맛 매운맛 더운맛 다 녹인 18년 사랑
김찬웅 엮음 / 글항아리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유일무이한 조선 사대부의 육아일기
'양아록'이다. 조선시대 육아일기는 이것 이외에도 몇 종 더 있다고 하니 '최초'의 육아일기라는 말이 정확하겠다. 아무튼 GOD의 육아일기도
아니고, 흰수염 마저 곧게 뻗어 있을 법한 선비의 육아일기라니 조금은 어색한 느낌이 든다. 선비들이 일생을 걸어가는 이정표인
'수신제가치국평천하'에서 '제가'가 아기 돌보는 의미는 아닐텐데...
하지만 양아록을 쓴 선비의 일생을 알고나면
공감할 수밖에 없을것 같다. 선비의 이름은 이문건(1494-1597)이다. 퇴계 이황이 '고려 500년 역사의 제1인자'라고 칭송했다는 고려말
재상 이조년(1269-1343)의 후예이다. 조광조 문하에서 학문을 닦았고, 임금이 인정할 만큼 글씨가 매우 뛰어나 위패나 기문 등을 도맡아
썼다고 한다. 후에 사간원 정언이으로서 활발하게 활동을 하다가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23년간 유배생활을 한다.
이름을 떨친 선비 가운데 유배생활 안한 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정작 안타까운 것은 그것이 아니다. 그의 삶은 지독하게 고단했을 것이다. 8세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것이 시작이었다. 곧
작은 누나가 죽었고, 스승 조광조가 중종에게 버림받아 죽으면서 작은 형이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죽었다. 그 해에는 큰형도 병으로 죽었다. 몇년
후에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곧이어 을사사화로 조카들이 몸이 찢겨 죽었다. 마지막으로 큰누나가 죽으면서 그는 부모형제를 모두 잃었다. 그의 여섯
아이 가운데 성인으로 성장한 자식은 아들 온과 막내딸 뿐이었는데 막내딸은 스무살에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하나 남은 온도 어려서부터 병치레가
끊이지 않아 심지어 지적 능력이 떨어진 상태였다. 결국 아들 온도 세상을 떠나는데 다행이라면 그 전에 손자를 낳았다는
것이다.
이런 집안의 내력 때문이었을까...이문건은
본래 철두철미한 성리학자였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성리학자에 대한 시선으로 보면 특이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선비가
육아일기를 쓴 것도 그렇고, 성리학자이면서 불교에 대한 학문적인 깊이도 있었고, 승려와도 상호 교류가 활발하였으며, 사찰에 집안 영당을 두거나
아버지 비문을 한글로 쓰기도 했다고 한다.
아무튼 이 특이한 선비는 육아 9단 뺨 칠
만큼 꼼꼼하게 손자의 성장과정을 기록으로 남기는데, 그 과정에서 자신의 손자에 대한 온갖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나온다.
'자세히, 천천히
깨우쳐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성급하게 다그친다고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때때로 나의 잘못을 뉘우치지만 가끔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한다. 이것을
글로 써서 후일을 경계하려 한다.'
손자에 대한 감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것
같다. 그리고 위의 글은 누구나 부모가 되어서라도 마음속에 간직해야 할 대목인듯 싶었다. 평소 가지고 있었던 선비의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조년
<이화에 월백하고>
梨花에 月白하고
銀漢이 三更인 제
一枝春心을 子規야
알냐마난
多情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드러 하노라.
하얗게 피어 있는
배꽃에 환한 달빛이 내려앉고 밤은 깊어 은하수 기운 자정 무렵,
배나무 가지에
깃들어 있는 봄날의 애틋한 정감을 소쩍새야 알겠냐마는
정이 많은 것도
병인 듯하여 잠을 이룰 수가 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