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의 나무 - 북유럽 스타일로 장작을 패고 쌓고 말리는 법
라르스 뮈팅 지음, 노승영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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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에서 목조 건축물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사정을 보면 선인(先人)들은 나무에 어떤 특별한 감수성을 지녔던 모양이다. 명나라의 유명한 정원 설계자인 계성은 그의 저서 《원야》(園冶)에서, "1,000년 지속하는 집을 지을 수는 있다. 그러나 100년 후에 누가 살게 될지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조화를 이룬 한정한 집에, 이를 감싸는 즐겁고 안락한 장소를 만들면 충분하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를 통해 그들의 감수성이 어디서 발현되었는지 공감할 수 있을 듯하다. 나무는 단단하면서도 부드럽고 자연스러우면서도 방향성이 있으며 향기를 내뿜는 물성을 지녔다. 이와 같은 물성은 여전히 현대인들의 감수성을 자극한다. 조금은 자유로운 형태의 원목 가구들, 식탁이나 책상 및 의자, 책장, 서랍장, 선반 따위는 인테리어로써 일품이다. 


북유럽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나무 감수성은 생존 본능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적으면 오들오들 떨 것이요, 너무 적으면 목숨을 잃을 것이다.'는 하나의 문장에 그들의 문화가 함축되어 있다고 보아도 무리는 아닐 듯하다. 물론 근대 이후에도 수천 년 전과 같이 생존을 위하여 장작을 패고 말리고 쌓아야 했던 것은 아니었다. 전후(戰後) 라디에이터의 광범위한 보급은 불이 꺼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지키기와 땔나무를 가지러 뻔질나기 나뭇간 들락거리기, 굴뚝 청소하기 따위의 고통을 해방시켜주었다. 이 시기 땔나무 판매량이 급속도로 내리막길을 것었던 사정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노르웨이와 덴마크의 땔나무 소비량은 1976년의 열 배에 이른다고 한다. 현대사회에서 장작불이 다시 귀환한 까닭은 무엇일까.

​여러모로 흥미로운 책이다. 얼핏 장작패기와 말리기, 그리고 장작쌓기 매뉴얼을 정리한 실용서와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나무 종류에 따라 어떤 특성을 지니는지나 어떤 장비를 어떻게 사용하고 관리하는지, 수분 함량은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장작을 어떻게 쌓는지, 난로의 종류와 기능 따위는 상대적으로 온난한 기후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다지 중요한 사정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북유럽인들이 변함없이 애착을 갖는 땔나무의 문화가 갓 벤 나무의 냄새처럼 은은하게 배어 있다. 무엇보다도 나무의 질감을 주는 하드커버와 책에 실린 사진들만 보아도 마음이 평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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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문화재를 돌려주지 않는가 - 문화재 약탈과 반환을 둘러싼 논쟁의 세계사
김경민 지음 / 을유문화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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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왜 '파르테논 마블'을 반환하지 않는가>


1. 제목의 '그들은'은 적어도 이 책의 논의에서는 영국을 지칭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과거 대표적인 문화재 약탈국 가운데 왜 저자는 영국에 한정하여 논지를 전개하는가. 그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해명한다. 짧게 요약하자면, 첫째로는 19세기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릴 만큼 광대한 식민지를 보유한 제국으로 성장하면서 군인과 관료, 학자 등 다양한 계층의 활동을 통해 엄청난 규모의 해외 문화재 컬렉션을 보유할 수 있었던 점 때문이고, 둘째로는 영국은 문화재 약탈사에서 그 어느 나라보다도 가장 주목받는 유물들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리스 건축과 예술의 정술르 담고 있다고 평가받는 파르테논 신전의 일부인 '파르테논 마블'과 상형문자 해독의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 것으로 유명한 '로제타석', 현재 영국 왕실 왕관에 장식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108캐럿짜리 다이아몬드인 '코이누르 다이아몬' 등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파르테논 마블 약탈 행위는 문화재 약탈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으로, 저자가 특히 강조하여 지적하는 핵심 가운데 하나인 '영국의 문화재 수집은 사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닌 국가의 공적 지원이 중대한 역할을 했다'는 명제를 뒷받침하는 초기 사례이다. 이 두 가지 이유에 한 가지 덧붙이자면, 과거 문화재를 약탈한 여타 국가들이 오늘날 점진적인 태도 변화를 보이는 반면, 유독 영국만은 일관되고 단호하게 반환 불가의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한 이유가 된다.


2. 문화재 개념은 다양한 층위에서 접근할 수 있다. 《문화재의 개념》(아모르문디, 2016)이라는 책에서는 이것이 "한 국가의 역사와 관련된 다양한 시대적 사건 및 현상들과 깊은 연관이 있으며, 특권적인 지위를 얻게 된 사물들과 그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 및 규칙과도 관련을 맺으며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복합적인 현실이 빚어낸 복잡한 관계 속에서 파악하여야 할 문제"라고 하였다. 그런데 문화재가 본격적으로 법적 개념으로 포섭된 직접적인 배경은 '보호의 필요성'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저자는 그 배경을 제국주의로 설명하고 있다. '제국주의적'인 영국의 군사·외교적 우위는 식민지로 삼은 지역에서의 역사적 가치 있는 유물을 수집하고 전시·연구 행위를 가능케 했고, 이는 식민지인이 하지 못하는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는 일을 영국만이 할 수 있다는 문화적 우월성을 표방할 수 있는 원천이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문화재 수집과 가치 평가에 기여한 공이 컸던 고고학은 결코 순수했다고 볼 수 없다. 저자는 영국이 약탈 문화재를 돌려주지 않는 현실에 접근하기 위해 매우 긴 호흡으로 문화재 개념의 발생과 제국의 등장 및 약탈의 역사를 검토한다. 영국이 약탈 문화재 반환을 거부하는 법률적·이론적 근거는 바로 여기에 연원하는 것이다.

3. 문화재 보호를 위한 법의 역사는 유구하지만, 나폴레옹 전쟁으로 촉발된 1815년 유럽 협조 체제의 탄생은 국제법 역사에서 하나의 중요한 기점으로 평가된다. 이때의 합의 사항에는 전쟁 시 약탈당한 물건의 조건 없는 반환이라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문제는 '문명국가들' 사이에서 존중되는 합의에 불과했고, 이와 같은 19세기 문화재 반환에 관한 인식은 20세기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를테면, "문명국에 의하여 승인된 법의 일반 원칙"과 같은 표현이 바로 그것이다. 이후 전시 문화재 보호와 관련된 규정을 종합적으로 다룬 최초의 포괄적 국제법인 「헤이그 협약」(1954)에서 「유네스코 협약」(1970), 「UNIDROIT 협약」(1995)으로 발전되어 왔지만, 국제법은 영국이 문화재 반환을 거부할 때 사용하는 강력한 무기 가운데 하나이다. 저자는 국제법의 성립 배경과 내용, 성격, 한계를 상세하게 검토하여 소개하고 있다. 아울러 문화재 반환을 어렵게 만드는 영국의 국내법, 대표적인 「영국박물관법」의 법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살펴본다.

4. 위와 같은 법률적 근거를 뒷받침하는 이론적 근거가 실질적으로 중요해 보인다. 문화재 반환에 대한 입장으로 저자는 '문화민족주의'와 '문화국제주의' 두 가지 이론적 근거를 소개한다. 전자는 "문화재를 특정 국가의 민족 정신과 정체성을 구현하는 상징물로 보고, 부당하게 빼앗긴 유물들이 본래 있었던 원산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몇 가지 한계가 있는데, 아프리카와 같은 불안정한 국가 체제에서 문화적 역량을 신뢰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있고, 스리랑카의 예시에서 볼 수 있듯이 문화적 연관성을 인정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있으며, 하나의 문화재에 대해 여러 나라가 소유권 반환을 주장하는 경우 원소유주는 누구냐는 문제도 있다. 한편, 후자는 "문화·역사적 가치를 지닌 문화재는 특정 민족이나 국가에만 속하는 것이 아니라 전 인류가 함께 보호하고 향유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입장이다. 즉, 영국이 내세우는 이론적 근거로서, 문화재 보존과 문화재 통합성, 문화재 접근성 원칙에 따라 문화재 소재를 결정하는 것이 인류 문화를 위한 것으로 본다. 다시 말해, 파르테논 마블이 영국박물관에 있음으로써 완전성의 훼손 없이 보존될 수 있으며, 보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마치 빅토리아 시대와 같은 문화우월주의의 단면을 볼 수 있다.

5. 문화재 반환에 대한 원산국과 영국의 입장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문화재가 돌아가야 할 곳으로 가야 한다는 점을 아무리 주장하더라도, 영국이 문화적 관용을 보이지 않는다면 물리적으로 가져갈 방법이 없다. 저자는 이와 같은 상황에서 이전 시대의 문화재를 소유한다는 개념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고 본다. 따라서 21세기에 걸맞는 여러 대안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 지금까지의 문제상황을 우리나라에 대입해본다. 우리는 일본에 대해, 혹은 프랑스에 대해 도덕적 우월성을 가지고 있을까. 여기에서 등장하는 것이 이른바 '오타니 컬렉션'이다. 이 책의 전반부에서는 아우렐 스타인의 중앙아시아 약탈과 실크로드 컬렉션 이야기를 다루었는데, 이 컬렉션의 상당 부분을 우리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그 경위는 물론 책에 잘 정리되어 있다. 돌려받을 문화재가 수도 없이 많은 우리나라는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이 책은 단순히 저들이 왜 약탈한 문화재를 돌려주지 않는가에 대해 비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보다 다양한 층위의 문제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나아가 오늘날 문화향유의 중심인 박물관이라는 장소는 무엇을·어떻게·왜 보여주는지, 이곳에서 무엇을 배우고 느껴야 하는지 생각할 기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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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의 죽음 - 우리가 모르는 3-7세기 중국 법률 이야기
리전더 지음, 최해별 옮김 / 프라하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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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을 여자가 썼더라도 첩을 들이는 것을 권장하는 구절이 있었을까?

이 질문을 던진 사람은 4세기 무렵 동진의 재상 사안의 아내 유씨였다. 유씨는 사회가 만들어 놓은 유가적 예교 질서에 자신을 예속시키려는 사람들을 향해 "만약 주공의 아내더러 시를 쓰라 했다면 필시 그런 말은 없었을 것"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물론 이 기록은 허구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한 사회의 근본질서를 이루는 사회규범과 윤리가치라도 누구의 시각과 위치에서 이루어진 것인지 의문을 제기해볼 필요가 있다는 측면에서는 오늘날에도 유용한 문제의식이라 생각된다. 이를테면, 형법상 강간죄를 생각해보자. 만일 여성이 이 조문은 만들었다면 그 구성요건으로 '폭행 또는 협박'이라는 행위태양을 선택했을까. 그 대신 '의사에 반하여'라는 문언이 들어가지 않았을까. 만약 그랬다면 폭행 또는 협박에 관한 광의설이니 최협의설이니 하는 학설도 여기에서는 필요 없었을 것이고, 아마도 논의 양상은 절차법적 측면에서 펼쳐졌을 것 같다. 아무튼, 저자는 이 책에서 여성 통치자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법률상에서 여성의 지위를 토론할 때 각종 조항과 판례에서의 여성들의 처지만을 분석할 게 아니라, 여성이 법률을 활용할 수 있었던 기회 및 여성이 입법에 참여할 수 있었던 가능성도 반드시 검토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이런 문제의식은 오늘날 사회적 갈등이 일어나는 다양한 이슈에 확대해 적용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접근하지 않더라도, 이 책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한 사건만으로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이 사건에 대한 판결은 중국 법률사에서 대표적인 사례로 취급되어 왔다고 하니, 오늘날로 보면 이른바 리딩 케이스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겠다. 사건 개요는 다음과 같다. 북위 선무제(재위 499-515)의 누이 난릉장공주는 유휘라는 사람과 혼인을 했는데, 그는 남조 송나라의 황족이자 장군으로서 북위에 투항했던 유창의 손자이다. 둘은 선무제 즉위 초기에 혼인을 하였는데, 공주의 투기가 매우 심했다고 한다. 한 번은 유휘와 가까이 지내다가 임신한 노비가 있는데, 공주가 노비의 배를 갈라 태아를 꺼내 여물에 싸서 유휘에게 보냈다고 한다. 경악한 유휘는 공주를 멀리 했는데, 다시 부마가 평민 여성들과 간통을 한 사건을 두고 싸움이 일어났다. 문제는 싸우는 도중 부마의 폭력으로 공주가 유산을 했고, 결국 공주가 죽음에 이른 것이다. 공주의 유산 후 도망중인 유휘 및 그와 간통한 여성 둘, 그리고 그녀들의 오빠들을 심판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논쟁이 벌어졌는데, 한 쪽은 황권을 옹호하고 공주를 보호하는 법리를 내세운 문하성(사실상 영태후)였고, 다른 한 쪽은 가부장적 가족 윤리를 법리로 내세운 법학 명문가 출신의 최찬 등이었다.

 

양측이 내세운 법리를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영태후는 공주가 황실의 일원이기 때문에 그 혈육을 죽게 한 것은 모반대역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간통이 공주의 유산으로 이어졌으므로 두 여성을 사형에 처하고, 그들의 오빠들은 간통의 정황을 미리 알았음에도 이를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돈황으로 유배를 보내 병역을 지는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최찬은 이 모든 쟁점에서 반대하는 의견을 냈다. 첫째, 공주의 신분이 존귀하더라도 유휘에게 시집을 간 이상 그 태아는 유휘의 혈육이므로 단순히 친자를 죽인 죄명으로만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남성은 혼인에 따라 친속관계가 변하지 않으나, 여성은 결혼을 하면 정체성이 친정에서 시댁으로 바뀌는 부계 중심의 가족윤리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주범의 판결이 확정된 후 종범에 대한 판결을 내려야 하는데, 주범인 유휘의 체포 및 판결 전에 종범인 두 여성에 대한 판결을 내려서는 안 되며, 간통죄 규정에 따라 처벌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셋째, 두 여성은 이미 혼인을 했는데, 혼인한 여성에 대한 책임은 남편이 지는 것이지 친정 오빠들이 지는 것이 아니며 '기친(서로 1년의 복상을 하는 친속 관계)은 서로 숨겨줄 수 있다'는 법률에 근거하여 연좌 처벌은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위 법리를 살펴보면 근대 형법상 개념, 즉 죄형법정주의, 인과관계 및 귀속, 고의와 과실, 정범과 종법, 친족상도례, 형의 가중과 감경, 연좌죄 등으로 치환하여 재구성해도 그럴듯해 보인다. 아무튼 이와 같은 견해대립을 토대로 한나라와 당나라 사이 시기의 법률과 정치, 민족, 사회, 여성 등의 여러 주제를 폭넓게 다루고 있으며, 그 가운데서도 간통죄와 그 처벌은 시공간에 따라 어떻게 달랐으며 남녀 차이는 어떠했는지, 가정폭력에 있어서 그 주체가 남성인 경우와 여성인 경우에 있어서 그들의 지위는 어떠했는지, 법률제도는 어떻게 유가화되어갔는지에 관한 흐름을 중점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하나의 역사적 사건과 그 판결을 중심에 두고 쟁점을 정리한 이후에 각 쟁점과 관련된 일정 시기의 법제사적 측면을 세부적으로 다루고 있어 주제와 구성, 전개 모두 좋은 점수를 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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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블록은 죄가 없다
박대근 지음 / 픽셀하우스(Pixelhouse)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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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떤 도시를 방문하든 자연스레 가장 먼저 보도(步道)에 눈길이 간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도시경관을 감상하고 평가하는 측면에서는 적어도 보도를 바탕으로 두고 도시의 여러 요소들을 시야에 넣는다.도시미관을 결정짓는 요인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의 조각상과 파리의 고딕양식 건축물, 프라하의 스카이 라인을 떠올려본다. 아마도 아름다운 도시를 방문하면 잘 관리된 광장이나 공원, 아름다운 건축물과 조형물이 미적 감각을 가장 먼저 자극할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공간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는 보도가 울퉁불퉁하거나 부서져 있거나, 푹 패여 있거나, 혹은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있다고 상상해보자. 도시경관과 보도는 마치 그림과 액자의 관계로 치환해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림보다 액자가 좋다》(2006)라는 책에서 저자는 액자가 관람자와 그림의 중재자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즉, 액자가 너무 크거나 장식이 과도한 경우에는 그림을 압도해 초라한 작품으로 전락시키기도 하고, 반대로 액자가 빈약하거나 지나치게 단조로울 경우에도 그림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우리는 조각상과 조형물, 건축물 따위를 올려다보기 때문에 발을 딛고 있는 땅이 어떤 형태이고 어떤 상태인지 상대적으로 무관심하지만, 공간의 미추(美醜)를 판단하는 작용에 그것은 이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물론 보도는 시민의 활동과 안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림을 중재하는 액자'보다 훨씬 중요하고 기능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적극적인 관심을 이끌지 못하는 이유는, 신체부위 가운데 그와 같은 역할을 하면서도 눈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어 무관심한 '발'의 처지와 비슷하지 않을까.  

2. ​우리의 보도사정은 어떨까. 원칙적으로 차도에는 아스팔트를 깔고 보도에는 블록을 깔아서 양자를 분명하게 구분짓는다. 그런데 블록은 언제나 쉽게 파손되고, 침하되어 이리저리 자리를 이탈하기도 하며, 때로는 미끄러져 허리를 다치거나, 때로는 하이힐 뒷굽이 끼어 발목을 다칠 수도 있고, 설령 멀쩡하더라도 때가 되면 교체하는 천덕꾸러기 신세이다. 그래서 아름다운 길로 각광을 받았던 덕수궁 돌담길의 사괴석을 모조리 뽑아내고 아스팔트로 대체하는 사례도 종종 발생한다. 그런데 모든 비난의 화살을 보도블록으로 돌리기에는 행정기관의 감독·관리 부실과 시공사의 부실 시공, 나아가 시민의식 결여 등이 복합적으로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멀게 느껴지지만 너무나도 가까운 일본의 도시를 방문해보면 정교하게 구성된 보도블록과 섬세하고 아름다운 그 구성, 청결한 거리에 감동할 수밖에 없다. 2011년 서울을 방문한 일본의 보도블록 생산업체 임원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한국의 보도블록 종사자들은 쉽게 돈을 벌 수 있어 좋겠네요." 이 책에 실린 일본 도시의 사진을 살펴보니 10여 년이 지난 보도블록이 마치 지난 달에 시공을 마친 듯한 느낌을 준다. 심지어 30년이 지나도 탈색된 느낌만 들지, 좀처럼 파손되거나 침하되지 않는다고 한다. 서울시 도로관리과 등에서 도로포장과 관련한 정책수립과 기술연구를 수행한 저자가 일본의 관련 부서에 방문해 주고받았던 우문현답(56p)에서 의식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Q 일본에서는 보도블록을 제대로 시공하지 않은 업체들에게 어떤 불이익을 주는가?

A 보도블록을 제대로 시공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만, 예상치 못한 파손(침하 등)이 발생하면 시공업체에서 즉시 원상복구를 한다.

Q 보도에 차가 올라타거나 불법 주차를 했을 때 범칙금이 얼마나 되는가?

A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보도에 차가 올라가지 않는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일 올라탄다면 벌금이 아마도 50만 원 이상은 될 것이다. 하지만 한 번도 부과해 본 적은 없다.

이와 같은 사정은 유럽도 마찬가지다. 결국 빗발치는 민원의 원인을 보도블록이 아닌 우리의 의식과 기술력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보도 포장(鋪裝, Paving)으로서 블록 시공이 관심을 받게된 계기는 86 아시안게임과 88 올림픽을 준비하면서였다. 블록은 그 재질과 색상, 패턴에 따라 상이한 가치를 제공한다. 이때 선진국 수준의 보행환경을 만들어 보자는 구호와 함께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었지만, 아쉽게도 선물 포장(包裝, Packing)처럼 외형적 요소에만 치중했다. 저자는 이 시기를 보도블록의 1세대라고 지칭한다. 그러나 1세대는 하이힐에 무너지기까지 너무 오랜 기간이었다. 정밀시공이라는 단어가 보도블록에 등장한지 불과 10년이다.

3. 보도블록은 땅위에 깔리기 전에는 입체적인 물질이지만, 시공이 끝난 이후에는 우리에게 평면적인 물질로 인지된다. 그와 같은 이유로 보도블록이 가지고 있는 기술적인 쟁점과 제도적인 쟁점이 대중의 관심사에 포함되기 어려운 탓이 될 수도 있겠다. 이 책은 보도블록에 관한 여러 기술적인 측면과 제도적인 측면의 문제점과 현황, 발전방향을 대중이 관심을 갖고 쉽게 읽어볼 수 있도록 쓴 유일한 책이다. 도시미관에 뒷전으로 밀린 시각장애인용 점자블록이라든지 친환경 열풍을 타고 반등하는 점토바닥벽돌은 시의성 높은 이야기이며, 깨지는 경계블록과 자빠지는 경계석은 길을 걷다보면 하루에도 몇 번식 마주치는 모습이다. 얼핏 모순처럼 들리는 차도블록에 관한 쟁점도 관심을 가지기에 충분한 이야기이다.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기를 바라는 이유는 시민의식이 보도블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우리가 문제의식을 갖지 않거나 무심코 한 행위들, 이를테면 차가 보도에 올라탄다든지 불법시설물을 설치하는 등의 위법행위들이 보도블록 문화를 해치고 있다. 항상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보도는 물리적으로도 기초이며 여기에 결부된 제도와 의식 따위도 모두 사회의 기초에 해당한다. 아울러 공무원으로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문제의식을 가지고 길을 개척해가는 저자의 행보를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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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게와 옥편
김광수 지음 / 하우출판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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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가 아우르는 다양한 장르의 글마다 적합한 문체가 있겠지만, 그 가운데 회고록 성격의 글에서는 오랜 세월동안 마음속에 담아 온 감정을 실은 간결한 문장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아름답고 풍부하게 꾸민 문장은 진정성을 전달한다는 측면에서는 간결한 문장만 못하다. 마침 저자는 유년기부터 대학교에 입학하기까지 가족과, 특히 아버지와 나누었던 교감을 담담하고 담백하게 풀어가고 있다. 때로는 억제된 감정에서 은은하게 울려오는 진정성을 강하게 느낄 때가 있지 않은가. 내가 만약 먼 훗날 회고하는 글을 쓴다면 모범으로 따를 만한 글이라고 생각이 된다.


 

 

지게는 아버지께서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생업이자 평생 짊어지셨던 삶의 무게이고, 옥편은 아버지께서 이루지 못한 꿈이자 아들을 향한 충고와 가르침이었다. 직관적인 제목은 아니지만, 성장과정에서 아버지를 바라보고 느껴왔던 다양한 감정이 함축되어 있다.

 

 

어린 시절의 눈으로 바라보았던 세상과 현재의 깊은 통찰로 관찰한 세상을 함께 읽을 수 있었던 점이 인상적이다. 이와 같은 회고적 글의 경우에는 풍속생활사 측면에서 지난 시대의, 고향의 말과 생활을 복원하는 것이 그 가치를 높여주는데, 이 책은 그러한 역할도 충실히 하고 있다. 그리고 의외로 소소한 유머코드가 글에 내재되어 있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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