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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중독 - 인간이 타인을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
나카노 노부코 지음, 김현정 옮김 / 시크릿하우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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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중독 

인간이 타인을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

人は,なぜ他人を許せないのか?

저: 나카노 노부코 역: 김현정

출판사: 시크릿하우스 출판일: 2021년 5월10일


인터넷이라는 익명의 공간에서 타인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각종 악플과 비난을 생각해보라. 비난을 받아 마땅한 잘못을 저지른 경우도 무심코 경솔하게 SNS에 올린 글 하나로 고초를 겪기도 한다. 이전에는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과 같은 일방향의 매체만이 있었다. 그런 시대에는 오늘날과 같이 실시간에 가깝게 화제가 되는 경우는 없었다. 


그렇지만 양방향 매체의 발전으로 인해서 많은 것이 변했다. 각종 플랫폼을 통한 통로가 다양해지면서, 많은 기회가 열렸다고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현상들이 나타났다. 일본에서는 특히 이러한 현상이 이전에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쉽게 분노하고 비난을 퍼붓는 것이 일반적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익명성에 기댄 일탈행동일까? 아니면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무엇인가 큰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일본인의 집단주의적 성향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한 일본인의 사고방식은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저자는 일본인이 처한 자연적 조건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외부와의 교류가 활발하지 못한 섬나라의 특성과 지진과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는 공동체라는 집단에 순종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 것이다. 


이러한 집단주의적 성향은 비단 일본인만의 것은 아니다. 인간은 모두 이러한 성향을 가지게 마련이다. 이렇게 형성된 집단은 내집단과 외집단으로 나누어져 타자에 대한 적대감 혹은 거리감을 형성한다. 진영논리는 결국 내가 속한 집단이 무조건 옳다는 비뚤어진 정의감을 양산한다. 설령 집단과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개인이라도 동조압력에 쉽게 굴복하고 만다. 


인터넷에서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 수많은 사람들이 편을 나누어 상생적인 결론보다는 극한의 대립을 일삼는 일들. 이 배경에는 집단을 형성하고 자신만이 정의를 독점했다는 편협한 생각에 물들어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이러한 문제들은 우리가 고민하는 자신의 정체성 문제와도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우리 자신을 규정하는 것들, 종교라든지 기존의 공동체적 사회구조라든지 이런 것들에서 자유로워진 우리 자신 말이다. 


결국, 자유를 쟁취한 우리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보면,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를 얼마나 쉽게 포기하는 지를 알 수 있다. 정체성의 혼란, 고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도피처는 집단주의에 빠지는 것이다. 오늘날 정의중독이니 하는 개념이 나오는 것도 이러한 상황의 결과가 아닐까? 


저자의 조언처럼 우리는 메타인지, 자기 자신을 계속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통해서 이것을 극복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우리의 정체성이라는 것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고, 그러한 가운데 그 누구에게도 일관성을 요구할 수는 없다. 설령 그것이 자기 자신이라고 할지라도. 대립적 사고방식이 아니라 병렬적 사고방식을 통해서 어쩌면 우리는 정의중독이라는 현상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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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동화는 어른을 위한 것 - 지친 너에게 권하는 동화속 명언 320가지
이서희 지음 / 리텍콘텐츠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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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너에게 권하는 동화 속 명언 320가지

어쩌면 동화는 어른을 위한 것

저: 이서희 

출판사: Ritec Contents 출판일: 2021년 11월10일 


사회생활을 시작하고서 직장을 충실하게 다니고 일하는 것에 그다지 큰 의심을 품지는 않았었다. 하고 있는 업무 자체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업계라고 하는 그 한 가운데서 서로 입장은 다르지만 비슷한 고민을 하는 것이 어떤 연대감을 느끼게 해주기도 했다. 물론 나는 안다. 그것이 대부분이 살아가는 하나의 방편이라는 것이. 너무 확대 해석할 여지도 없고 너무 의미를 축소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관계는 그런 것이다. 


동화작가를 하고 싶다는 회사 후배가 있다. 계속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까? 이렇게 현실에 안주하며 하루하루 살아간다면 아무런 발전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이가 들어 더 이상 회사에서 자신의 능력을 알아주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관계는 끝이다. 그래서 글을 쓰고 싶다는 것. 사실 나는 잘 모른다. 그가 글을 정말로 잘 쓰는지. 동화라는 특성 상, 상상력을 엄청나게 요구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쩌면 실용적인 글보다도 몇배는 힘들지도 모른다. 


에릭 칼의 동화책이 생각났다. 어른인 내게도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 동화책에 왜 수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지를 잘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후배는 한국의 동화가 교훈을 주는 목적이 강하다고. 그래서 무엇을 해야만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고 했다. 하지만 해외에서 출간된 동화책을 보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어른인 자신이 읽어도 느끼는 점이 많다고 했던 것이 기억난다. 


이 책을 펼치니 동화가 아이들의 상상력이나 교훈이나 여러가지 이야기를 풀어나가겠지만, 그 속에서 어른이나 어린이에게 공통되게 관통하는 주제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조금 삶을 보는 눈높이가 다를 뿐, 그 속에도 우리가 느끼는 여러가지 감정이 왜 없겠는가? 달리 생각해보면 오늘날 내면에 자본주의적 속성을 강하게 구조화한 우리 자신들은 그런 감정을 억지로 억제하는 것 같았다. 바로 표현하지 않고, 숨기고 만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그러한 마음의 장벽이 무너질 때, 억눌러진 감정은 터져버린다. 


어린 시절에 읽었던 낯익은 책들이 보인다. 어린 왕자, 크리스마스 캐럴,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모모, 톰송의 모험, 빨간 머리 앤, 하이디, 비밀의 화원, 오즈의 마법사,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키다리 아저씨 등등. 몰론 잘 모르는 동화도 여럿 있기는 했지만. 청소년 시절에 읽었던 책도 있고, 어른이 되어서 읽은 책들도 있다. 책의 제목이 기억났다. 그래 어쩌면 동화는 어른을 위한 것. 


이 책을 읽고 억눌렀던 감정을 조금은 살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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