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각의 계절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5월
평점 :
품절


각각의 계절

: 권여선

출판사: 문학동네 출판일: 202357

 

2018년에 순전히 소설의 제목만 보고, 그의 소설 안녕 주정뱅이를 읽었다. 스스로 술 좋아하는 주정뱅이라고 자신을 생각해오고 있었으니까. 여전히 이 소설은 내 책장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의 산문집 오늘 뭐 먹지?’를 읽으며 술을 좋아하는 사람의 공감대랄까? 참 그것이 뭐라고 딱히 자세하게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마음에 와닿았다고 해야 하나.

2020년에 다시 그의 소설 아직 멀었다는 말을 읽고, 잊은 듯싶었는데 그의 신간을 맞이했다. 생각할 것도 없었다. 바로 책을 주문하고, 그의 단편들이 모인 이 책을 신줏단지 모시듯 소중하게 대하며 읽어 내려간다. 내가 권여선이라는 작가를 좋아하는 것은 기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그 공감이라는 부분은 크다. 그래서 그가 최근에 쓴 글이 모여 나올 때 무척이나 궁금하다.

나와는 그 세대가 다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공감을 못 할 정도로 먼 것은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나 역시 기성세대가 되고 현재보다는 과거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 정도로 나 역시 나이가 들었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래서 이 조금은 아니 많이 쓸쓸한 그의 서사를 들어보니 깊은 생각에 빠지게 되었다.

아무래도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한 그 시작은 대학교를 입학한 이후가 아닐까? 중고등학교에서 자기 스스로 무엇인가를 결정할 수 있는 것들이 한참이나 요원하지 않았던가. 그렇지만, 대학교 캠퍼스의 뭔가 설명할 수 없는 해방감은 자기 자신을 뭔가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어른이라고 생각하게 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안다. 나 자신이 얼마나 미숙했는지 말이다.

그때 만났던 사람들은 지금 무엇을 할까? 내 인생의 한순간에 그렇게도 진지한 이야기를 밤새 나누며 술을 마셨던 그 선후배들은 지금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사실 우정이라든지 사랑이라든지 하는 그 심각했던 감정들은 나이가 들어가고 현실에 적응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에 희미한 자국만 남길 뿐이다. 사람이 그렇게 가벼운 것인가? 나만 그런 것일까?

어느 한적한 저녁에 홀로 책을 읽다가, 갑작스럽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만났던 사람이 떠올랐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그 기억을 붙잡으려고 해도 이미 흔적도 거의 남지 않았다. 상대방이 했던 말도 심지어 그 상대방의 이름조차도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오기가 났는지 나는 계속해서 그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나중에 기억을 되돌려 겨우 그 이름을 떠올렸다.

그렇지만, 무엇인가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었던 것인가? 시간으로만 내 망각을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그저, 사람은 그렇게 한정된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는 부족한 존재라는 것만으로도 나를 위로하기는 어려웠다. 그것은 어쩌면 스스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것들을 버리고 만 것 같단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러한 흔적은 비로소 우리가 치열한 삶의 한 가운데서 욕망을 버릴 때 떠올려지는 것 같다. 윤회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이전의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면 윤회라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결국 나 자신의 정체성이 영원히 사라지는 것은 마찬가지니까. 그것은 물리적인 육체의 재탄생과는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유한한 삶의 기억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한정된 존재일 뿐이다. 그래서 더 이상 그 의미를 종교에서 정치에서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쓴 소설을 읽으며 표현할 수 없는 적막감과 상실감을 느꼈다. 그가 가지는 이 감정이 내가 가지고 있는 감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다 읽고, 문득 잘 기억도 나지 않는 그 어느 순간이 그리워졌다. 그렇지만 그것이 감정에 과도하게 몰두하였다는 말은 아니다.

어쩌면 지금의 나라는 존재의 유래에 관해서 단지 탐구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탐구를 통해서 나 자신의 기억을 돌아보며, 앞으로 인생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싶었던 것일까? 문득, 그와 허름한 포장마차에 앉아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그 이야기가 비록 심오하지 않더라도 재미있지 않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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