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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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죽을 것인가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Being Mortal)

: 아툴 가완디 역: 김희정

출판사: 부키 출판일: 2015519

 

외할머니가 저녁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막내 이모의 전화를 받았다. 황급하게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 중환자실로 향했는데, 그날 따라서 차가 막혔다. 밤 늦은 시간에 병원 주변은 을씨년스러웠다. Covid-19로 인해서 병원을 방문하는 것도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온 몸을 두른 보호복을 입고 체온도 쟀다. 그러나 외할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너무 늦었다. 하지만 아직 체온이 남은 얼굴이라도 한번 느껴보려고 중환자실로 향했다.

 

사실 거의 100세에 가까웠던 외할머니는 현대의 시점에서도 장수를 했다. 누가 보더라도 호상이라고 할 것이었다. 하지만 그 때 나를 놀랍게 했던 것은 중환자실의 모습이었다. 의미 없는 연명치료를 받는 수많은 환자들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온 것이었다. 완치되어 일상을 회복할 가능성이 없는 모습이었다. 모두의 눈빛은 이미 약에 취한 것인지 초점도 없었다. 그 모습은 내게는 상당히 충격적인 것이었고, 장례식을 치르는 시간 내내 내 마음 속에 남아 있었다.

 

죽음으로써 우리의 인생은 완성된다. 근대까지만 하더라도 죽음은 일상적인 것이었다. 낮은 생존율과 빈약한 보건위생 여건, 낙후한 의료시스템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대개는 집에서 사망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현대식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인해서 우리는 이제까지 겪어보지 못한 시대를 맞이했다. 젊은 사람보다도 노인이 많은 시대가 그것이다. 생각해보면, 자연이 설계한 수명을 휠씬 초과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이전의 갑작스러운 죽임이 사라진 대신, 이제 죽음은 전체적인 인체의 시스템이 허물어지면서 서서히 고통스럽게 다가온다. 서서히 무너지는 상황에서 노인들에게 남겨진 선택지는 감옥과 같이 효율성을 중시하는 요양원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자존감을 가지고 독립적인 생활을 가능한 끝까지 하고 싶은 것이 일반적인 우리의 바램이다. 요양원은 그렇지만 그러한 것들, 즉 내가 편안하게 살아가고 익숙한 생활에서 나를 철저하게 소외시킨다.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즉 완치할 수 없다면 고통을 유발하는 연명치료가 의미가 있을 것인가? 아마도 죽음에 대해서 받아들이고 남은 얼마 안되는 시간을 가족과 친근한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것이 휠씬 현명할 것이다. 호스피스 케어를 선택하는 것이 화학적 연명치료를 하는 것보다 더 낫다고 할 만하다. 아직 나는 존엄사에 대해서 명확한 판단을 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인간으로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해보면 우리가 이러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할 단계가 되었다고 본다.

 

젊은 시절에는 죽음이란 내게는 상관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죽음은 항상 곁에 있고, 노화는 우리가 반드시 거쳐가는 단계이다. 문득 망각하고 있던 죽음에 대해서 떠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삶의 마지막 순간을 위해서 추구해야 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한번쯤 누구나 읽어 보길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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