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인사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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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인사 

저: 김영하

출판사: 복복서가 출판일: 2022년 5월22일 


김영하 작가의 ‘작별인사’는 오직 작가의 이름만으로 기대가 되었던 소설이다. 김영하 작가는 방송에도 자주 출현하고 인지도가 있다. 그렇지만 내가 그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 전에 읽었던 그의 산문 ‘읽다’에서 그가 독서에 대해서 전우주적 관점에서 내린 매력적인 정의였다. 그 정의는 나 자신이 스스로 했던 질문에 대한 훌륭한 답변이었다. 그래서 나는 자주 그가 독서에 대해서 내린 그 정의를 인용하고 인용했다. 그것도 족했다. 


그런데 내가 읽은 그의 소설이라고는 ‘오직 두 사람’ 한 권이다. 영화로도 제작된 ‘살인자의 기억법’이 기억나기는 하지만 원작도 영화도 본 적은 없다. 하지만 그가 현대소설을 쓰는 작가라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다. 현재를 공감하기 위해서는 소설을 읽어라. 거리의 철학자인 최준영 선생이 한 말인데, ‘동사의 삶’을 읽고서 관심이 없었던 현대소설을 몇 권인가 찾아서 읽었다. 권여선을 만난 것도 그 과정이었던 것 같다. 9년만의 출간된 그의 장편소설에 관심을 가진 것은 이렇게 좀 여러가지 요인들이 있었다고 하겠다. 


내 예상은 그러나 보기 좋게 벗어났다. 나는 그가 SF소설을 쓰리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다. 그런데 한편 또 생각을 해보니 노벨문학상을 받은 일본계 가즈오 이시구로가 생각났다. 그의 소설 ‘파묻힌 거인(The Buried Giant)’를 접한 이후, 나는 그의 다른 소설 ‘나를 보내지마(Never Let Me Go)’를 읽었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색깔이 있다고 하더라도 두 소설은 많이 달랐다. 후자는 SF소설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 당시는 문득 그가 장르소설의 형태를 갖춘 작품을 썼다는 사실이 색달랐다. 물론 그 안에 담긴 철학적 사색은 나에게 많은 사유를 요구했지만. 


무엇이 인간이라는 정의를 내리는데 적합한 것일까? 단순히 SF소설이 아니라 눈부신 기술적 발전은 기계와 인간이 융합되는 형태로 나아가고 있다. 나중에는 우리 몸의 몇 퍼센트까지 자기의 몸일 때 인간이라고 정할 지도 모른다. 그 기준을 넘어서면 그는 인간이 아니라 기계인가? 혹은 우리의 의식이라는 것들이 기억이 우리를 자기 자신이라고 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일까? 만약에 몸은 그대로인데, 자신의 기억을 전부 삭제하고 다른 기억을 심었다며 그 사람은 여전히 나인가?


현실로 이뤄질 수 없다고 생각한 것들이 하나 둘 실현되고 있다. 절대로 인간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 바둑에서 인공지능은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급격한 기술발전의 양상을 본다면, 앞으로 몇 십 년 뒤에 인간보다 더 뛰어난 인공지능이 출현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그 때는 우리는 우리를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도록 하는 자신의 뇌를 스캔해서 클라우드에 백업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우리의 육신이 죽어서 사라진다면, 백업된 의식은 나를 인지하고 영생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여러가지 질문이 뒤따랐다. 


광활한 우주와 영겁의 시간. 영원한 것은 없다. 그 이외에는 오직 광활한 우주와 영겁의 시간이 있을 뿐. 어쩌면 우리가 서로 헤어진다고 하더라도 영겁의 시간 속에서 언젠가는 만나리라는 그 희망은 부질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이 인간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아마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 죽음이 있다는 사실이 일 것이다. 문득 칼 세이건이 ‘코스모스’에서 그의 세번째 아내에게 쓴 글이 생각났다. 


“앤 드루얀을 위하여

 공간의 광막함과 찰나의 순간을

 앤과 공유할 수 있었음은 나에게는 하나의 기쁨이었다”라고 


내 두서없는 글에도 불구하고, 한가지는 확실했다. 김영하 작가는 SF소설도 잘 쓴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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