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미술관 - 인간의 욕망과 뒤얽힌 역사 속 명화 이야기
니시오카 후미히코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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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욕망과 뒤얽힌 역사 속 명화 이야기

부의 미술관

저: 니시오카 후미히코 역: 서수지

출판사: 사랑과나무사이 출판일: 2022년 3월31일


마틴 루터로부터 촉발된 종교개혁은 중세로부터 이어온 회화의 경향을 크게 변화시켰다. 엄격한 개신교 신자들은 회화를 우상으로 단정하여 성상을 파괴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가 잘 알다시피 17세기 네델란드에서 유행한 회화의 흐름에서 큰 변화를 감지하게 된다. 지금까지 회화의 주요 수요를 차지했던 교회와 왕실 대신에 일반 시민들이 예술작품의 구매자가 된 것이다. 그러한 변화는 17세기 동안 그려진 그림이 무려 600만점 이상이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페르메이르의 작품과 렘브란트의 초상화를 보면서 감탄한다. 당시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을 그렸다. 이전의 교회나 왕실에서 주문한 그림과는 전혀 다른 대상이다. 이제 사람들은 서로 비용을 부담하여 단체로 초상화를 그리기도 한다. 그림은 이제 일반 시민의 집을 장식하는 대중적인 것이 되었다. 페르메이르의 ‘우유를 따르는 여인’을 보자. 이 그림은 페르메이르 집안의 3년치 빵 값을 대가로 그려졌고, 빵집에 걸려 오늘날의 광고와 같은 역할을 했다. 물론 100% 같은 의미는 아니지만.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는 잘 알려져 누구나 알고 있다. 수많은 대가들이 떠오른다. 미켈란젤로, 다빈치, 라파엘로 등. 그들이 심혈을 기울여 그린 수많은 그림을 나 역시 유럽여행을 했을 때 본 적이 있다. 현대와 같은 수많은 미디어가 난무하는 시대에도 그 그림들은 영감을 주고 감동을 자아낸다. 문득, 그 그림이 완성된 당시에는 어땠을까? 아마도 수많은 사람들이 심장이 멎을 것 같은 충격과 성스러움을 느꼈을 것이다. 교회가 주문한 그 그림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고, 일종의 프레젠테이션과 같이 신앙심을 불러일으키는 도구였다. 


미술재료의 변화를 동산으로의 회화, 부동산으로의 회화라는 관점에서 본다는 것이 신선했다. 사실 캔퍼스가 대중적으로 사용되기 이전에는 회화는 벽화가 주를 이뤘다고 할 수 있다. 주로 왕권과 신앙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선전도구로 사용되었다고 보면 되는데, 캔퍼스와 유화의 등장은 쉽게 소지하고 옮길 수 있는 형태의 회화를 발명시켰다고 할 수 있다.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지만, 모나리자가 그렇지 않은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목판에 그려진 모나리자는 동산의 회화, 따라서 개인이 소지할 수 있기 때문에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지 못하는 것이다. 


나폴레옹을 그린 그림을 아마도 적어도 2개 정도는 기억할 것이다. 하나는 나폴레옹의 대관식, 알프스 산맥을 넘어가는 백마 탄 나폴레옹. 군주가 아닌 일개 장군이었을 때 조차, 나폴레옹은 화가를 대동했다. 아마도 미디어를 잘 이용해야 된다는 것을 알았던 영리함이랄까? 앞에서 이야기를 한 것 처럼, 회화는 단순한 예술로의 기능 뿐만 아니라 선전의 기능을 수행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사실, 회화와 관련된 책들을 몇 권 읽으면서 그림의 경향, 변화에 대한 연대기적 이야기를 접한다. 그리고 그 과정의 마지막은 주로 인상주의로 흘러간다.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모네, 마네, 고흐, 고갱과 같은 화가의 작품은 천문학적 가격을 자랑한다. 하지만 처음 등장했을 때는 조롱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그림들의 예술적 가치를 사람들은 알고 있었던 것일까? 사실 그러한 의문을 가진 것은 꽤 된 것이지만, 내가 그것을 파악하기란 어려웠다. 결국 사후적 평가를 접하고 그 작품이 가지는 예술성을 다시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미술상인 뒤랑뤼엘의 전략, 즉 마케팅 전략의 힘을 알았다. 사실 많이 놀라운 일이었다. 그가 구시대의 유물과 같은 왕실문화의 대표인 ‘금테 액자’와 ‘카브리올 레그’를 활용했다는 사실. 유럽과 같은 전통과 귀족계급을 가지고 있지 못한 신흥 부국인 미국인 부자들에게 인상주의 회화를 초고가 상품으로 마케팅 했다는 것은 사실 많이 놀라운 사실이었다. 회화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그러한 사실을 알려주는 책은 없었다. 


생각해보니 왜 미국에 인상주의 작품이 그렇게 많은 지를 알 수 있었다. 에밀 졸라의 소설에 왜 그의 친구인 세잔이 그렇게 분노했는 지도 알 것 같았다. 에밀 졸라는 이러한 미술계의 세태를 참으로 실랄하게 비판했고 세잔은 자신을 빗댔다고 생각한 것이다. 문득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NFT에 대해서 생각하게 했다. NFT는 정말로 그 가치가 있는 것인가? 개인적으로 나는 그 가치에 대해서 상당히 부정적이라고 말해야겠다.  


예술작품에 대해서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은 주관적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작품이든 당신에게 어떤 영감과 통찰력 혹은 감동이든 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가치가 있을 것이다. 회화를 볼 때, 그 작품 자체의 의미도 중요하고 그 기교와 기법도 중요할 수 있다. 그렇지만 한가지 그 시대적 배경에 대해서도 알아야만 할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그 작품이 지니는 진정한 가치를 제대로 알기 위한 필수적인 최소한의 노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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