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 곰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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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Why Fish Don’t Exist)

저: 룰루 밀러 (Lulu Miller) 역: 정지인

출판사: 곰출판 출판일: 2021년 12월17일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Why Fish Don’t Exist)’을 읽고 싶었던 것은 순전히 마크 쿨란스키의 ‘대구(Cod)’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인간의 탐욕에 의해서 파괴된 해양생태계와 생선의 종말. 폴 그린버그의 ‘포 피시(Four Fish)’ 그리고 찰스 클로버의 ‘텅 빈 바다(The End of the Line: How overfishing is changing the world and what we eat)’를 읽었고, 여기서 많은 통찰력을 얻었다. 마찬가지로 룰루 밀러의 이 책을 통해서 한동안 내 관심에서 멀어진 해양생태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것 같다. 


책을 다 읽기 시작하면서 내가 룰루 밀러가 과학 전문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것과 책 제목에서 오해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기대한 책 내용은 아니지만, 오늘날 세계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우리는 그녀가 말한 대로 혼돈에 빠져 있을 지도 모른다. 문득, 열역학법칙, 제러미 리프킨의 ‘엔트로피(Entropy:A New World View)’가 생각났다. 어린 시절 저자는 아버지에게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녀의 아버지의 대답. 신이란 없고, 우리는 광활한 우주에 있어서 그저 아무 것도 아닌 존재라는 사실. 


어쩌면 우리는 혼돈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평생을 그 혼돈 속에서 질서를 부여하고자 했던 사람이 있다. 그녀가 아마도 데이비드 스타 조던(David Starr Jordan)에 관심을 가진 것도 그 이유가 아닐까? 대지진으로 인해서 데이비드 조던이 많든 수많은 어류 표본들이 바닥에 떨어지고 흩어졌다. 최악은 표본의 이름이 다 떨어져 나가, 표본을 구분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표본에 이름표를 하나하나 달기 시작했다. 그러한 시련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이 사건은 어쩌면 그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을 그의 인생 전반에 대한 탐구로 확대했다. 룰루 밀러는 자기 인생의 혼돈을 어쩌면 그를 등대 삼고자 했을 지도 모른다. 독실한 청교도 집안 출신의 이 학자의 어린 시절은 여러 사물에 집중되었는데, 어린 시절에는 별을 조금 컸을 때는 들판의 꽃과 식물로 향했다. 이름 중간에 Starr를 넣은 것을 보면 그가 낭만적 성품의 상냥한 인물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의 인생의 변화를 가져올 일이 생긴다. 


유명한 박물학자인 루이 아가시(Louis Agassiz)의 페니키스 섬에 열었던 자연사 수업이었다. 아마도 데이비드 조던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계기가 이것이 아니었을까? 아가시는 말 그대로 섬의 선지자로 그에게 다가왔다. 처음으로 물고기에 관심을 가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를 분류하고자 하는 욕망을 느꼈던 것 같다. 생명의 나무에서 각 생물이 차지하는 위계적 위치를 파악하고 인간의 위치를 드러내고자 했을 것이다. 그것은 심오한 일, 말하자면 독실한 청교도적 가치관에서 보자면 신성한 일이었다. 


그의 스승 아가시가 끝까지 진화론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이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프랜시스 골턴이 주장한 우생학도 받아들였다. 그는 열렬한 추종자의 한 명이 되었던 것이다.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고자 했던 그의 인생을 돌이켜보면, 생명의 나무에서 각 존재는 우열이 있어야만 했다. 그리고 가장 고귀한 사람이 신과 가장 가까운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사회를 좀 먹고 열등하게 만드는 자격 미달자들은 사라져야만 한다. 


아가시와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게 있어서 생물은 도덕적 형태까지 포함하여 언제든지 퇴보할 수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가 장애인, 정신병자, 행실이 좋지 못한 사람들까지 포함한 부적격자에 대한 공포를 어떻게 느꼈을 지를 알 것 같다. 오늘날 우리는 어두운 미국의 과거에 대해서는 들춰내지 않는다. 우생학을 받아들인 독일보다도 먼저 미국은 이러한 부적격자들에 대한 불법적인 불임시술을 자행했다. 그들에게 이것은 과학적인 방식이자 해결책이었고 도덕적으로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믿기 힘든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저자는 여전히 생존해 있는 피해자를 찾아갔다. 할머니가 된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불법적인 불임시술이 시행된 곳도 찾아간다. 그곳은 이미 폐허가 되어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곳이 되었다. 아가시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다양성을 혼돈으로 혐오했을까? 그들은 고귀한 어떤 순수함을 찾았을까? 진화론을 받아들였지만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다윈을 오해했다는 것은 확실하다. 생명이 진화를 하기 위해서는 순수한 한 종만을 남기는 것이란 오히려 해로운 것이니까. 


오늘날 우리가 어류라고 하는 단어로 수많은 해양생물을 간주하는 것은 어쩌면 데이비드 스타 조던과 아가시의 편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다양하고 전혀 다른 특성을 가진 생물들을 물고기로 분류했던 것은 다양성을 무시하고 존재하지 않는 위계구조를 만들고자 했던 노력이 아닌가? 비로소 나는 이 책의 제목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Why Fish Don t’ Exist)’말이다. 


다시 어린 시절, 저자가 아버지에게 했던 삶에 대한 질문에 답해보자. 냉소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바탕으로 한 관용과 배려, 연대를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우리는 룰루 밀러가 스스로에게 외쳤던 말이 가슴에 와 닿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중요하다. 성소수자이기도 한 그녀에게 있어서 그 말은 아마도 세상을 향해서 힘차게 외치고 싶었던 말일 것이다. 이 책을 우연하게도 내 착각으로 접하게 되었지만, 내게 남기는 여운이 정말 컸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꼭 말하고 싶다. 한번 시간이 된다면 반드시 읽어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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