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성적인 여행자
정여울 지음 / 해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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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끌린다. 내성적인 여행자라니 외향적인 집순이 만큼이나 이상하게 들린다. 그렇다고 꼭 내성적이라 혼자 여행을 잘 못하고 외향적이라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사람은 마음속에 자기도 모르는 외향과 내향이 동시에 있다고 생각하니까. 20대에 누구나 한 번쯤 꿈꿔본다는 유럽을 나는 30대 중반이 되도록 동경해본 적이 없다.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었고,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는 생활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돈도 시간도 (넉넉하진 않지만) 한 번쯤 다녀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사실 가장 큰 걸림돌은 용기가 없다는 것이었다. 유럽 어디를 가야 할지도 모르겠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겁이 났다. 만약 갔다 온다면 그만큼의 비용을 메꾸기 위해 또 노력해야 하는 것도 싫었다. 결국 유럽은 꿈도 못 꾸고 또다시 시간이 없는 생활이 시작되었지만 정여울 님의 <내성적인 여행자>를 통해 대리만족으로 유럽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그녀의 따뜻하고 감성적인 에세이와 함께 말이다.

 

이 책은 삶을 사랑하는 정여울 님이 유럽 36개의 도시를 거닐며 담은 에세이 집이다. .

6가지의 큰 제목과 그 속에 담겨있는 여러 도시들이 마치 여행을 다녀와서 친구에게 수다 떨듯 말하는 이야기보따리인 것처럼 느껴져 기분이 좋았다. 더블린은 어땠어? 뮌헨은 좋았어?라고 묻는 나에게 내성적이고 조용한 정여울 작가가 자신만의 말투로 이곳은 이러이러했어. 이 땐 이랬지 뭐야라고 말을 하는 것 같아서 유럽여행이라곤 생각해 본적도 없는 역시나 내성적인 나를 자꾸만 호기심을 일게 했다.

 


사실 최근 <꽃보다 할배 리턴즈>를 보며 프라하, 체코에 마음을 빼앗겼었다. 유명한 관광지, 꼭 봐야 한다는 건물들이 아니라 같은 시대를 살았던 친구들과 함께 그 나라의 분위기에 폭 빠져 여행을 한다는 것이 상당히 매력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유럽여행이라는 말이 나와서 말인데 꿈을 꿔본 적은 없지만 만약에라도 혹시나 가게 된다면 나는 핀란드의 헬싱키가 가보고 싶었다.

아마도 아르토 파실린나라는 소설가의 영향이 클 테지만 휘바휘바한 핀란드는 왠지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북유럽풍의 아기자기함이 차가운 눈도 녹여줄 것만 같다. 특히, 최근에 알았지만 무민도 핀란드의 숲 어딘가에 살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정여울 작가도 핀란드 헬싱키에서 느낀 소박함과 미니멀리즘 (그래도 행복의 크기는 작지 않은)을 나 또한 느껴보고 싶다.

 

 

그리고 또 하나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면 반 고흐 미술관이 있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가보고 싶다. 아니 유럽여행 꿈도 안 꿔본 사람 맞냐며... 이 책 속에도 암스테르담이 나온다. 정여울 작가 또한 반 고흐 미술관을 갔다고 한다. 반 고흐의 작품을 실제로 보면 어떤 느낌일까? 그의 입체적인 그림에 압도되진 않을까 괜히 또 설레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은 여행지 곳곳에 그녀의 기억과 추억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기분이 드는 책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작가님이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하는 에세이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텐데 그게 아니라는 점이다. 오롯이 그 나라를 느끼기 위해 사진을 안 찍으셨는지는 모르겠고, 책 사이사이에 있는 사진들은 하나같이 아름답고 멋있지만 왠지 모를 이질감이 느껴졌다. 글과 어우러지는 사진이었다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마지막에 이런 말을 했다. 그 장소가 어떤 모습이고, 얼마나 넓고, 얼마나 편리한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내가 늘 나다운 모습으로 존재하는, 아주 일상적이고 제한적인 공간의 울타리를 벗어나 세상 밖으로 홀로 나온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것이라고 말이다.

 

여름은 서서히 지나가고 있고, 가을이 오니 나도 이제는 떠나보고 싶다. 이 책을 읽고 결심한 건 아니지만 비슷한 시기에 이런 글을 읽다니 이것도 우연을 넘어서 필연인 것 같다. 작가님처럼 혹은 남들처럼 모든 걸 다 내버려 두고 홀연히 떠날 성격은 못된다. 하지만 나 또한 내성적인 여행자의 기지를 발휘해 40살이 되기 전엔 유럽 여행 한번 다녀와야겠다는 결심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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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어딘가에 도착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여행의 과정 자체다. 여행의 목적지보다도 여행을 떠나는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여행의 정수를 온몸으로 빨아들일 줄 안다. (p.45)

 


나는 기도하는 방법을 모른다. 하지만 매일 나만의 어설픈 방법으로 오늘도 기도한다. 내가 내 소원을 이루기 위해 이기적인 행동을 일삼지 않기를. 내가 내 절망에 붙박여 스스로 침잠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절망을 경청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우리의 분노가 우리를 찌르는 칼이 되지 않기를. 우리의 분노가 성마른 증오와 복수의 불길로 타오르지 않고, 이 세상을 치유하는 더 깊고 오래가는 힘으로 타오를 수 있기를. (p.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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