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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민의 겨울 ㅣ 토베 얀손 무민 연작소설 5
토베 얀손 지음, 따루 살미넨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7월
평점 :

무민은 핀란드의 작가 토베 얀손(Tove Jansson)의 여러 책과 만화에 나오는 캐릭터이다. 무민은 하마를 닮았지만 사실 트롤(초자연적 괴물 또는 거인)이라고 한다. 벨벳 같은 부드러운 털을 가졌고 포동포동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무민의 가족들은 핀란드의 숲속에 있다는 무민의 골짜기에서 많은 친구들과 모험을 하며 살아간다고 한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도 나는 무민이 하마인 줄만 알았다. 캐릭터로만 많이 봤던 무민을 이야기로 만나보게 되다니 신기하고 기대됐다.
<무민의 겨울>은 <위험한 여름>을 포함한 토베 얀손의 무민 연작소설 다섯 번째 이야기로 옮긴이는 따루 살미넨이라는 미수다에 출연한 방송인이라고 한다. 무민 연작소설은 토베얀손이 특정 연령을 생각하고 쓴 소설이 아니라서 남녀노소 모두가 읽어도 재밌게 빠져들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중간중간 들어있는 무민의 삽화가 반갑고, 정겹다.
무민들은 해마다 11월이 되면 전나무 잎을 잔뜩 먹어두고, 집안에 토탄을 쌓아둔 뒤 거실에 있는 난로에서 옹기종기 모여 다음 해 4월, 봄이 오기까지 겨울잠을 잔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무민이 한겨울에 깨어나 겨울잠에 들 수 없게 되었다. 무서워진 무민은 무민 마마를 깨워보지만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잠이 들어있는 엄마는 아무리 깨워도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두려움과 불안함에 떨던 무민은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봄이 되는 첫날에 오게 될 스너프킨이를 자기가 먼저 마중 나가기로 한다.

난생처음 보는 쌓인 눈과 추위, 무민은 이 모든 것이 무섭고 외롭다. 동굴에서 잠을 자다 깬 미이를 만나고, 노래를 부르는 투티키를 만나지만 새로운 것이 너무 신나는 미이와 말하는 것이 어째 자기를 계속 화나게 하는 투티키가 반갑지만은 않다. 혹독한 겨울은 끝날 기미가 안 보이고 얼음 여왕까지 나타나 무민을 두렵게 한다.
겨울은 계속되고 무민은 이제 혼자가 아니라 미이, 투티키, 해물렌, 살로메 그리고 여러 손님들과 함께다. 얼음 여왕 때문에 먹을 것이 동이 나 무민의 집에서 잼을 함께 나눠먹게 된다. 하지만 무민 말로 그들은 너무나 가지각색이며 해물렌은 무민에게 자꾸만 스키를 가르쳐 주겠다고 한다. 무민과 친구들은 그런 해물렌과 지내는 것이 싫어 거짓말로 속여 해물렌을 내보낼 계획을 세운다.

외로운 산에 스키를 타기 정말 좋은 비탈이 있다고. 그 말을 들은 해물렌은 진심으로 친구들에게 고마워하며 무민에게 감동을 전한다. 그 모습을 본 무민은 결국 참지 못하고 자신이 착각했다며 그 산은 엄청나게 위험하다고 우리와 함께 계속 있자고 말을 한다. 이러나저러나 겨울은 아직도 많이 남았고, 우리 친구들과 무민은 남은 겨울을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누구나 처음은 무섭다. 누군가와 함께 있어도 무서운 건 무서운 거다. 하지만 무민은 친구들과 함께 그리고 또 혼자 무서움을 이겨내는 법을 배웠다. 앞으로는 겨울도, 봄도, 여름도, 가을도 즐겁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무민은 한 해를 모두 겪어낸 용감한 무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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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 버렸어.
내가 잠든 동안 온 세상이 죽어 버렸어. 이 세상은 내가 모르는 누군가를 위한 곳이야. 그로크 같은 녀석을 위한 곳이겠지. 여기는 이제 무민들이 살 만한 곳이 못 돼.
무민이 물었다.
너랑 같이 사는 뾰족뒤쥐들은 나는 법을 어디에서 배웠을까? 투티키가 말했다.
글쎄. 모든 걸 꼬치꼬치 캐묻지 마. 비밀을 조용히 간직하고 싶어 할지도 모르니까. 쟤들이든 눈이든 신경 쓸 필요 없어.
무민은 생각했다.
내가 겨울을 이겨 낼 수 없다는 사실을 똑똑히 보여 주고 무릎 꿇리려고 이런 짓을 하는 게 틀림없어. 겨울은 먼저 부드럽게 떠다니는 눈송이로 아름다운 커튼을 만들어 무민을 속인 다음, 아름다운 눈송이를 눈보라로 바꾸어 얼굴에 마구 내던진다. 그것도 무민이 막 겨울을 좋아하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에 말이다.
...
무민이 온몸의 힘을 빼고 생각했다.
나는 공기고, 바람이야. 나는 눈보라와 하나야. 지난여름에도 딱 이런 느낌이었어. 그때도 처음에는 파도에 맞서서 씨름하다가 몸을 돌렸더니 밀려드는 파도에 어우러져서 무지갯빛 물거품 속에서 코르크 마개처럼 둥둥 떠다니다가 조금 겁먹을 때쯤 바닷가 모래바닥에 딱 도착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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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민의 겨울>을 읽고 나니 이 뜨거운 여름이 조금 수그러든 기분이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그것이 무민에게는 겨울이라는 계절이었다. 생전 본 적이 없는 눈을 맞고, 눈썹에 고드름이 얼고, 세상은 회색이고 흰색이고, 춥고, 싸늘하다. 겨울을 함께 할 친구를 만나지만 반가운 마음도 잠시 너무나 성격이 안 맞는 그들, 그래서 무민은 더 고독하고 외로웠다.
나약하고 연약했던 무민은 추위를 이겨내고 무서움을 이겨내고, 죽음을 경험하면서 (작가님의 귀여운 스포 잘 봤습니다.) 겨울이 무섭지만은 않음을 깨달아간다. 다름을 이해하고 자신의 조상까지 알게 된 파란만장했던 무민의 겨울, 겨울과 함께 혼자 힘으로 훌쩍 성장한 무민을 볼 수 있어서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