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방문객
마에카와 유타카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1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본 소설을 자주 읽지만 마에카와 유타카라는 작가의 글은 처음 읽는다. <크리피>라는 소설로 제15회 일본 미스터리 문학대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가로 데뷔했다고 한다. 아직 우리나라에 출간된 책은 많지 않지만  <크리피>라는 소설은 영화로 나올 만큼 내용이 탄탄하고 인기가 많았던 작품이라고 한다. 기회가 되면 읽어보고 싶다.

 

"사시겠어요 아니면, 살해당하시겠어요?"  문구 한번 정말 잘 뽑았다. 문구가 궁금해서 상당히 읽어보고 싶었는데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사서 읽어야지 하고 있다가 우연한 기회에 또 이렇게 읽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이런 순간들이 참 신기하다. 나는 사실 책표지만 보고 일본 소설이라고 생각 못 했다. 이런 것도 편견이지 싶다. 순하디 순한 사슴이 정장을 빼입고 한낮에 현관문 앞에 서서 기다리는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궁금하고 무서웠다. 저렇게 순한 얼굴로 살 거냐 죽을 거냐라고 말하는 거라면 더더욱 말이다.

 

주인공 다지마는 50대 중년의 남성으로, 대학교 시간강사를 하며 잡지에 사건을 연재하는 저널리스트이다. 점점 일이 줄어드는 중압감에 시달리던 다지마는 『시야』라는 인권 옹호 잡지의 편집장인 기무라의 부탁으로 시간이 좀 지났지만 예전에 일어난 사건을 다시 조사하며 사건을 재조명하는 칼럼을 쓰게 된다. 예전에 일어난 사건이 무엇인고 하니 한 빌라에서 28살의 여성이 5살 난 자신의 아이와 굶어 죽었던 사건이다. 다지마는 사건을 되짚어 하나씩 조사해 나가지만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지만 사건에 대해 분개하며 이는 현대인의 고독사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라고 사건을 풀어나가는 글을 쓴다.

 

그러던 어느 날 다지마가 살고 있는 빌라의 이웃인 류노스케 자매가 그를 찾아와 자신들을 도와달라고 말을 한다. 알고 보니 책 표지의 사슴이 방문하는 것처럼 악질 방문 판매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누가 문을 그렇게 함부로 열어주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의 방문 시간대는 오후 2시~ 4시, 젊은 사람들보다는 노인들이 많을 테고 누군지 모르지만 일단 문을 열어 무슨 일인지 확인하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이들의 수법은 대충 이렇다. 5~6명의 남자들이 한낮에 어떤 집을 방문한다. 회사원들이나 젊은 사람들은 집에 거의 없을 테니 주로 퇴직한 중년들, 노인들 혹은 가정주부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문을 열어 줄 것이다. 그들은 수질검사를 무료로 해주겠다며 막무가내로 집안으로 들어온다. 대여섯 명의 남자들이 들어오면 당연히 그제서야 아차 싶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방문 판매자들은 수질검사의 결과가 엉망진창이라며 엄청난 위험에 처해있다고 정수기를 바꿔야 한다며 정수기를 판매한다. 그것도 엄청나게 비싼 가격으로 말이다. 5만엔도 안될 것 같은 정수기를 50만 엔, 100만 엔에 설치할 것을 요구한다.

 

류노스케 자매 또한 이런 악질 방문판매에 걸려들었고, 다지마가 나서서 도와주려고 하지만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하게 커지기 시작한다. 알고 보니 이런 악질 정수기 판매업자들이 더 있었던 것이고 그들은 설치를 요구하고 상대방이 거절하거나, 돈이 없다고 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살인까지 일삼는다는 것이다. 한낮의 방문객이 한낮의 살인자가 되는 순간이다. 가장 평화로운 시간대에 소리 소문 없이 나타나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은 일이 커지자 다지마는 사건의 심각성을 알게 되고, 류노스케 자매의 일로 알게 된 미도리카와 형사와 연락하며 방문판매 살인사건을 주제로 사건을 취재해가며 글을 쓰게 된다. 하지만 방문 판매 구성원의 멤버가 계속 바뀐다는 점, 5~6명 중에서 3~4명은 살인사건에 처음 가담했다는 점들이 그를 미궁 속으로 몰아넣는다.

 

그리고, 다지마는 자신을 동경해 다른 학교 학생이지만 자신의 강의를 들으러 오는 여학생이 모녀 아사 사건에 대해 자꾸만 무언가를 파헤치려 한다는 걸 알게 된다. 과연 방문 판매 사건과 모녀 아사 사건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모녀 아사 사건도 방문판매자들의 짓일까? 평온한 일상 속 홀연히 나타나 사람들의 일상을 끔찍하게 찢어놓는 방문판매 연쇄살인의 범인을 밝혀내고, 잡을 수 있을까?

 

예전에 <폰부스>라는 영화가 있었다. 생각해보면 단순하다. 폰이 없던 시절 우리는 집에 전화가 걸려오면 누가 걸어온 지도 모르면서 받았어야 했다. 공중전화라는 점이 다르고 전화해 온 사람이 엄청난 악질이었다는 것이 일상과 다른 점이지만 말이다. 이 책 속 사람들도 그런 사람들이지 않을까 싶어 <폰부스>라는 영화 생각이 많이 났다.

 

책은 재밌었지만 여러 가지 사건이 동시에 진행되다 보니 헷갈리고 산만해지는 느낌은 있었다. 사건의 개연성을 속임수처럼 얹어둔 것인지 아닌지 작가의 의도는 알 수 없지만 가끔 억지로 연관시키려 하는 점이 아쉬웠다. 그리고 등장인물이 많은 데다가 성과 이름이 자꾸만 헷갈린다. 나처럼 일본 이름을 잘 기억 못 하는 분들은 헷갈릴 수도 있겠다.


범인은 이 안에 있어!라고 외치고 싶지만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사건의 범인이 누군지 몰랐다. 둔하다고 해도 할 수 없다. 범인이 밝혀졌을 때 내 심정은 아니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였으니까. 엄청난 반전이고 놀라고 심장이 쿵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나는 그랬다.

 

소재가 소재인 만큼 일본의 현대사회, 나아가서 우리의 현실도 잘 반영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뉴스를 보고 있으면 내가 소설을 읽고 있는 건지, 저런 일이 정말 일어날 수 있는지 싶을 정도로 과격하고 비상식적인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한낮에 울리는 초인종 소리가 일상 속 섬뜩한 소리로 다가올 것 같다. 심지어 벨을 누르고, 방문한 사람이 누군지 모른다면 말이다. 언제든,  무슨 일이든 함부로 문을 열어주는 건 고려해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