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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안녕달 지음 / 창비 / 2018년 7월
평점 :
나는 눈으로 기억하거나 어떤 상황을 장면으로 기억하는 편이라 그림책을 참 좋아한다. 어릴 때 보다 오히려 커서 더 그림책을 많이 보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림책에는 어른들이 상상 못할 많은 꿈과 이야기들이 숨어있는데 숨어 있는 내용에 비해 읽히는 시기가 짧아서 항상 아쉬웠다. 어린 시절은 너무 빨리 흘러가니까. 그리고 어른이라면 왠지 그에 맞는 수준의 독서를 해야 할 것 같은 알 수 없는 의무감이 있어 시선을 의식해서 잘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그렇게 지내지 않기로 했으니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도 마음껏 볼 수 있다.
안녕달 작가님은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선 우리 그림책의 성취라는 평을 받으며 제57회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그만큼 따뜻하고 기발한 상상력들이 그림책 속에 꼭꼭 숨어있다. 안녕달님의 인터뷰를 읽었는데 안녕달이라는 이름은 라디오를 듣다가 어떤 인디밴드가 이름이 예뻐서 공연에 불러줄 때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작가님도 이름이 예뻐서 날 좀 써줬으면 좋겠다 해서 예쁜 단어를 조합해서 지었다고 한다. 왠지 그럴듯하다. 그리고 물 흐르고 경치 좋은 산속 학교에서 시각 디자인을 공부하고, 저 멀리 바닷가 마을 학교에서 일러스트를 공부했으며 지금도 어느 먼 바닷가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한다.
다른 분들의 서평을 보다가 겉표지를 벗기면 또 다른 표지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겉표지를 벗겨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소시지 할아버지와 아이컨택을 하게 된다. 열어본 나도 놀랐지만 할아버지의 표정으로 봐서는 할아버지도 많이 놀라신 눈치다. 엄청 귀여우시다.

안녕달님의 그림책 <안녕>의 주인공은 매력적이고 오동통한 소시지다. 맞다. 우리가 아는 그 소시지. 맛있는 소시지. 그리고 이 책은 총 4부로 되어 있다. 1부는 소시지 할아버지가 엄마로부터 태어나 함께 살아가는 내용, 2부는 소시지 할아버지가 강아지를 만나는 내용, 3부는 할아버지의 강아지가 친구인 불과 폭탄을 만나는 내용, 4부는 그것을 사후세계의 먼 행성에서 소시지 할아버지가 바라보는 내용이다. 앞부분에는 글이 거의 없고 끝으로 갈수록 이야기가 나오지만 그 글 또한 길지 않다. 온전히 그림으로만 이야기하고 그림으로 보여준다. 나 혼자 대사를 생각하기도 하고 잘못 봤나 싶어 여러 번 넘겨보기도 하고, 그림책은 이런 묘미가 있어 참 좋다.

소시지 할아버지는 엄마 소시지에게서 태어났다. 소시지는 소시지를 먹고 소시지 똥을 눈다. 그들은 아주 먼 행성에 살고 있다. 소시지 할아버지는 어린 소시지일 때 밖에 나갔다가 놀림을 당하고는 쭈욱 엄마와 함께 지냈다. 세월은 흐르고 어린 소시지는 소시지 할아버지가 되고 자신의 전부였던 엄마와 첫 번째 이별을 하게 된다. 소시지 할아버지는 너무 슬퍼 곰인형을 데려와 함께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소시지 할아버지가 오가는 길에 다른 행성에서 데려온 애완동물을 파는 상점이 생긴다. 애완동물이 유행을 하고 그 유행에 맞춰 선호하는 종이 달라진다. 유행은 강아지에서 고양이로 그리고 외계 고양이로 옮겨간다. 팔리지 않게 된 강아지들은 50% 할인, 70% 할인으로 팔리게 되고 결국 한 마리의 강아지만 아무나 데려가세요라는 팻말과 남겨둔 채 문을 닫고 만다.
상점의 이름은 '지구별 강아지 나라'. 지구별의 ㄱ이 떨어져 '지ㅜ별 강아지 나락'이 될 때까지 강아지를 데려가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 길로 산책을 다니는 소시지 할아버지는 강아지에게 자신의 소중한 우산을 주고, 먹이도 준다. 왜 데려가서 키우지 않지 하는 생각을 하다 아차! 했다. 소시지 할아버지는 소시지니까. 강아지는 소시지를 좋아하니까. 좋아해서 먹으니까. 결국 우여곡절 끝에 강아지를 데려오고만 소시지 할아버지는 강아지를 만지고 싶지만 만질 수가 없다.

아침이면 지나가는 아이들이 낚싯줄에 소시지를 매달아 강아지를 유혹하고 소시지 할아버지를 놀린다. 소시지 할아버지는 큰 결심을 하고 우주복 세트를 구입해서 처음으로 강아지를 만지고, 강아지를 품에 안고 곰인형과 잠이 들 수 있게 되었다. 엄마와의 이별이 곰인형과 강아지의 만남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 책은 이렇게 이별과 만남에 대해 이야기한다. 소시지 할아버지에게 엄마와의 이별은 강아지와의 만남으로 이어지고 강아지에게는 소시지 할아버지와의 만남이 소시지 할아버지와의 이별이, 다시 다른 친구들과의 만남으로 말이다.

우리의 인생도 끊임없이 만남과 이별로 되풀이된다. 우리는 많은 것을 떠나보내고 또 많은 것을 마주한다. 그것이 시간이든 어떠한 사물이든 사람이든 감정이든 할 것 없이 말이다. 매일이 만남으로 반복되다 보니 어느 순간 소중함을 잃어버릴 때도 있다. 항상 그 자리에 있음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만다. 떠나고 나서야 우리는 후회한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에게 건네는 따스한 인사와도 같다.
잃은 것에 대해 괴로워하고 자신을 미워하고 슬픈 나날을 눈물로만 보내지 마시라. 소시지 할아버지처럼 먼저 떠나간 이가 우리네 삶을 계속해서 지켜봐 주고 응원해주고 있으니까. 너무 잘 살 필요도, 스트레스받아 가며 열심히 살려고 본인을 속일 필요도 없다. 지켜봐 주는 이들의 마음은 너무나도 넓어서 우리가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든 응원을 해줄 테니 말이다.
나는 이 나이 먹도록 아직도 이별이 무섭고, 죽음이 두렵다. 그래서 곧잘 조바심을 낸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만남도 이별도 모두 소중하다. 우리 모두는 혼자이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니 외로워 말자. 없는 걸 아쉬워하고, 잃는 걸 두려워하기보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소중하게 대하는 날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읽으면 그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을 테고 어른들이 읽으면 어른들의 눈높이에서 또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책이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나와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앞으로 만날 사람들 모두에게 안녕?이라고 인사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세상을 떠나 사후세계의 별에 가는 날, 남겨진 사람들에게 또 이렇게 인사하고 싶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