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사랑할 수 있어 참 좋았다 - 곽재구의 신新 포구기행
곽재구 지음, 최수연 사진 / 해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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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라 함은 배가 드나드는 개의 어귀로 항구와는 다른 의미라고 한다. 이 책은 지은이 곽재구 님이 포구를 다니며 쓴 에세이다. 지은이 소개를 보니 예전에도 포구기행을 쓰신 적이 있다. 그래서 곽재구의 신 포구기행이라는 제목이 붙었나 보다. 이 책은 월간 <전원생활>이라는 잡지에 연재된 글 중 25편의 산문을 추려낸 책이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엄마 덕에 늘 사람이었다. 2부는 열렬히 사랑하다 버림받아도 좋았네. 3부는 당신을 사랑할 수 있어 참 좋았다로 구성되어 있으며 페이지의 중간중간에는 글만큼이나 아련하고 쓸쓸한 바닷가, 혹은 신비로운 포구의 사진들이 보이는데 <전원생활>의 기자로 일하고 있는 최수연님의 작품이라고 한다.

 

 

 

 

 

 

나는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랐고, 부산에서 살고 있다. 지금은 그래도 덜하지만 예전에는 부산에 산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다가 가까워서 좋겠다거나 마치 집 앞에 바닷가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실이 놀라웠다. 한때는 바다 근처에서 살아보긴 했지만 포구라고 불리는 곳, 항구라고 불리는 곳 근처에서 살아 본 적은 없다. 여행을 가서야 포구, 항구, 바닷가를 본다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어쩐지 포구라는 말은 살아본 적이 없어서인지 정감 어리고, 그곳 사람들의 체취가 느껴지는 말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여행자의 입장에서 바다를 보고 포구를 본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마치 지은이와 함께 포구를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지리에 어두운 나는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격렬비열도를 만나고, 화진포를 바라보고 벽련포를 그리고 격포를 걸어본다. 여행자의 시선인 동시에 지은이가 그곳에서 만난 여러 사람들의 일상을 느낀다.

 

에세이 한편 한 편은 지은이가 만난 포구이고, 그곳에서 느낀 감정들 그리고 생각이 난 시와 글들을 적어놓았다. 이름만 보고 느꼈던 섬에 대한 감정을 적어놓기도 하고 가다가 만난 사람과의 대화도, 배를 운전해주는 선장님과의 대화도 있다. 거창한 것이 아니다. 지은이는 가보고 싶었던 포구에 가고, 가서 느낀 점을 쓴다. 나는 그것을 읽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어디에 있는 섬인지 검색을 하거나 에세이 속에 담겨있는 시를 찾아본다. 이 일련의 과정들은 나 홀로 한적한 바닷가를 걷는 느낌이었다.

 

 


 

사연들도 다양하다. 육지면 소속인 두미도에서 만난 지은이와 동갑인 붉게 탄 피부가 아름다운 사내, 그는 게으른 사람이 제일 싫다고 한다. 초등학교 기능직 공무원까지 했지만 학교가 폐교가 되어 명예퇴직을 하고 자랑은 2남 1녀를 다 대학 보내고 취직 시킨 거라고 한다. 소원은 동백나무들이 오래도록 살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도초도에서는 명품 천일염을 만드는 소금장이 채호천씨를 만나는데 그는 6천 평 규모의 염전을 혼자 운영한다고 한다. 우리 식구들 먹을 소금이라고 생각하고 만들면 그게 좋은 소금이라며 소금까지 선물로 준다.

 

팽목항에서는 마음이 울컥하고 눈물이 났다. 2014년 4월 16일. 우리가 잊지 못할 그 일을 말이다. 나는 그때 병원에 누워있었다. 전염성을 가진 병명 덕에 1인실에 앉아 티비를 보며 하염없이 울었다.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친 상태에서 울고 싶어서 우는 건지 그 일이 너무 슬픈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진료를 받으러 퉁퉁 부은 눈으로 가면 의사선생님은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웃기게도 나는 그 사건 때문이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의사선생님은 계속 이렇게 울면 빨리 안 낫는다고 겁을 주셨지만 나는 병실에 혼자 앉아 뉴스를 보며 또 울었다.

 

섬이라는 곳은 누군가에게는 여행지일 수도 그저 관광지일 수도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만남과 이별, 슬픔과 기쁨, 사랑과 연민과 같은 우리네 삶이 모두 들어 있다. 누군가는 벗어나고 싶어 하는 곳이고, 누군가는 가보기를 희망하고 꿈꾸기도 하는 그런 곳. 그 모든 감정들과 삶이 한데 섞여 파도처럼 밀려왔다 다시 밀려가는 곳 말이다.

 

다정하기도 하고 무덤덤하기도 한 지은이의 글체도 좋았지만 더욱더 내 향수를 자극하고,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조금이나마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최수연님의 사진이었다. 작은 사진들도 있지만 두 페이지 가득 차있는 사진들이 갑자기 펼쳐질 때면 나도 모르게 와- 하고 감탄사를 내뱉곤 했다. 멀리 보이는 수평선, 탁 트인 바다, 고기를 잡는 사람들, 바다에 떠 있는 배.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도 그 사진들을 몇 번이나 뒤적여 봤는지 모르겠다.

 

나에게 휴가는 없지만 문득 섬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드는 책이었다. 곽재구님의 글도 최수연님의 사진도 좋았지만 역시나 내가 눈으로 보고 느끼고, 삶의 냄새를 맡으며 그 자리에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원하고 행복하고, 때로는 슬프고 아련한 포구를 바라보며, 이 책을 읽는다면 그보다 좋은 휴가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어느 한 포구에 떠 있는 배처럼 나도 그렇게 인생과 함께 일렁이며 살아가야지.


 

 

밤새 창을 열고 파도소리를 들었다.

 

바람이 슬몃 불어오면 매화꽃향기가 조용히 다가왔다. 인생에서 내게 제일 행복한 시간 중의 하나는 밤의 섬마을에서 파도소리를 들으며 잠드는 것이다. 하룻밤 내내 파도소리를 듣고 일어난 아침이면 마음 안의 텅 빈 공간들이 알 수 없는 꿈으로 채워지는 걸 느낀다.

 

 

 

고개를 돌리면 멀고 가까운 바다가 보이지요.

 

바다는 햇살을 만나면 반짝거려요. 그런 바다를 보면 마음이 넉넉해져요. 인생이 좀 힘들면 어때? 슬픈 일들이 마음을 떠나지 않으면 어때? 시가 써지지 않으면 어때? 노래가 절로 불러지는 것이지요.

 

 

 

당신이 사랑하는 영혼이 있다면

 

그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내게도 조금 나눠주시길. 난 이 도시에 처음 들른 외로운 이방인이니까. 나 또한 당신이 사랑할 인간 중의 하나이니까. 이렇게 인사를 하는 동안 마음은 한없이 사랑스러워지고 설레게 된다. 내가 사랑할 세상이 이 지구 어딘가에 꼭 있으리라는 추상이 마음 안에 새겨지는 것이다.

 

 

아이를 잃었을 때 세상을 잃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팽목항에서 아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비참한 것은 아이 잃은 우리를 매일 누군가가 감시한다는 것이지요. 국가가 무엇인지, 국가 권력이 국민에게 이래도 되는 것인지 가슴이 찢어졌지요. 그때부터 마음을 다 닫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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