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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의 살인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8년 6월
평점 :

나는 드라마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사극이나 어려운 드라마는 잘 안 보는 편이다. 이해하기
힘든 건 둘째치고 역알못이라 그런지 허구와 재미를 더했다고 해도 드라마에서 나오는 장면
들이나 말투는 어쩐지 낯설고 정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엄청나게 유명했던
사극들도 본 적이 없고, 관련된 책들은 당연히 읽은 적이 없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는데... 부끄럽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처음으로 읽어보는 역사소설이라 겁을 많이 먹었다. 이 책을 지은 분은 김별아라는 작가님
인데 알고 보니 엄청 유명하신 분이다. 역시 나만 몰랐다. 선덕여왕으로 유명해진 <미실>을
그전에 책으로 쓰셨던 분이고,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사랑을 이야기로 쓴 <열애>도
이 분의 작품이라고 한다.
사실 읽고 나서야 괜히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구나 싶었지만 처음으로 접하는 역사소설은
나에게 많이 어려웠고 특히나 그 시절의 문체라고 해야 하나 말투를 그대로 쓰시는데 따로
*를 달아 설명해주고는 있지만 안에 내용을 읽느라 따로 또 시선을 왔다 갔다 하기가 힘들긴 했다.
책의 구성은
< 차 례 >
서(序)
죽은 자의 말
바다의 도장
처음의 풍경
수사
뜨겁고 독하고 맑은
도깨비 자식
비밀과 거짓말
대군궁의 궁노
고통을 묻다
호홀지간
금을 얻다
십자 모양 칼자국
검은 강 붉은 놀
관노와 사노
살을 먹이다
지박령의 비밀
꽃의 순서
작가의 말
로 이루어져 있으며, 조선시대 석양이 내릴 무렵 도성 한복판에서 일어난 괴이한 살인사건을
그려내고 있다. 처음 <구월의 살인>이라는 제목을 보고 9월에 일어난 살인사건이라고
각했지만 구월은 이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의 이름이다. 시체도 있고, 목격자도 있지만 이상
하게 범인은 없는 이 사건, 이 사건이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것은 단 한 번, 효종 1년
2월 27일 기사에 삼성국문 을 받던 범인이 옥중에서 물고 당했다는 여덟 줄의 기록이
다라고 한다. 이 범인은 자신이 사람을 죽인것은 자복하였지만 자기가 죽인 자의 종이
된 것에 대해서는 불복하였다고 적혀 있었다.
어째 누가 보아도 수상한 결말. 그래서 작가인 김별아 님은 이를 토대로 자료를 수집하고
살인사건이지만 살인사건 이상의 무엇이 있다 생각하여 상상력과 사실, 진실, 비밀과 거짓말
사이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추리력이 더해진 역사 소설을 지으셨다고 한다.

앞에도 잠시 말했지만 책 한 장에 모르는 글자가 수두룩한데 그만큼 조선시대의 사회를
반영하려고 하였고, 그에 따른 단어와 문체를 쓰시는 것이 엄청 대단하게 느껴졌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생동감 있고, 나오는
등장인물들에 대한 몰입도가 상당하다.
각 이야기마다 주인공이 있으며 과거와 현재가 반복되기 때문에 헷갈릴 수도 있지만 등장
인물들에 대해 알아가다 보면 한 편 한 편 읽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만나기
시작하면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알고 보면 더 매력적인 인물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을 <구월의 살인
>을 통해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다. 숙종 10년 실록에 첫 등장하는 반사회 조직 '검계'와의
관계도 추측하여 소설 속에 나오는데 우리나라 영화 <조선 명탐정>의 느낌도 제법 난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지만 수십 차례 과거에 낙방하여
결국 형조의 좌랑이 되지만 오히려 형조로서의 자질을 발견하고 미제 사건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전방유, 어머니의 억울한 죽음을 복수하기 위해 계에 들어온 윤 선달, 종의 신분으로
자유와 희망을 꿈꾸지만 남편을 잃고 배신당한 복수를 하기 위해 역시 계에 들어온 구월,
그리고 계의 수장인 노장까지. 그들의 이야기는 그 시대의 현실이었을 것이다.

범인은 누굴까? 그리고 목격자는 왜 범인을 진술하지 못할까? 죽은 자의 몸에서 발견된
여러 개의 상흔은 과연 한 명의 복수심일까?
이것을 생각하며 읽는 것만으로도 책은 상당히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다. 나는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김별아님의 흡입력과 글에 반해서 이 분의 다른 작품도
보려고 한다. 내가 좀 더 아는 게 많았다면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역사 소설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그리고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더욱더 재밌는 소설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