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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고양이 1~2 세트- 전2권 ㅣ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5월
평점 :

베르베르의 책은 정말 완전 오랜만이다.
20살 때쯤 읽기 시작하다가 <나무>
이후로 상당히 오랫동안 읽지 않았다.
식상해서도 아니고 그냥 자연스럽게
멀어졌던 것 같다. 그리고 한번 손을 놓으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읽어야 될지 막막해서
읽지 않았다. 어느 날 신작 <고양이>
서평단을 모집한다는 글을 읽고 오랜만에
그의 글에 빠져보고 싶어서 신청을 했다.
당첨돼서 오기전까지 얼마나 설레던지...
나는 베르베르의 책 중 <타나토노트>와
<천사들의 제국>, 그리고 <아버지들의
아버지>를 재밌게 읽었다.
일곱 살 때부터 소설을 썼다고 하던데
천재는 뭔가 달라도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감히 생각하지도 못한 전개와 상상해 본 적
없는 소재로 우리를 항상 놀래킨다.
어느 한쪽에서는 베르베르가 비슷한
글만 써와서 식상하다는 말도 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지지부진한다는
평가까지 듣고 있다. 나는 반대로 생각한다.
자신의 개성을 담아 지금까지 꾸준히
책을 낸 작가가 어디 흔한가 싶고, 아직도
우리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많다는 게
감사할 따름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고양이이다. '바스테트'는 여러 종과
대화(소통)이 가능하다고 믿는 호기심 많은
암컷고양이이다. 자신의 집사인 '나탈리'와
끊임없이 대화하기 위해 애써보지만
'나탈리'에게 그녀는 그냥 귀여운 애완묘일
뿐이다. '바스테트'는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이해하고 싶어 하고, 인간은 자신을 받드는
존재라 생각한다. 인간 = 집사
상당히 자기 주체적 성격을 가진 '바스테트'는
언젠가는 말이 통할 거라는 생각으로 만나는
모든 종에게 대화를 시도하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그러던 어느 날
옆집으로 한 이웃이 이사를 오게 되고 이마에
USB가 박혀있는 특이한 수컷 샴고양이를
만나게 된다. 그의 이름은 '피타고라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그녀는 다른 고양이들과
다른 그의 모습에 빠져들지만 '피타고라스'는
그녀를 계속 무시한다. 하지만 그들이 살고
있는 파리와 세계 곳곳에서 테러가 일상화되고
전쟁이 일어날 듯한 위기감 속에서 함께
지내게 되면서 '피타고라스'의 능력과
비밀에 대해 알게 된다.
'피타고라스'는 '바스테트'에게 자신은
제3의 눈을 가지고 있으며 그래서 인간에
대한 모든 정보를 알고 있다고 한다.
그녀에게 인간의 역사, 그 속에서 고양이인
자신들의 역사를 알려준다.
'바스테트'는 소통의 꿈을 계속 품은 채
꿈속에서 이를 형상화하고, 지식을 습득
하고 사고하여 지적인 존재로 발전해간다.
전쟁과 테러가 점점 심해지던 어느 날
쥐들로 인한 페스트까지 만연하면서
인간과 고양이 모두 위협을 받게 된다.
흩어진 동족들과 인간을 찾아 '바스테트'
와 '피타고라스'는 모험을 시작한다.
예전에 남자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멀지 않은 미래에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부속품처럼 갈아끼울 수 있게 될 것 같고
더 이상 겉모습은 장식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게 될 것이라고.
그 순간 공각기동대가 생각이 나서
마지막엔 인간들도 어떤 형태로 존재하기
보다 정보 그 자체로 인터넷 세계를
떠돌면서 지식을 확장하고 존재하는 게
더 큰 의미를 가질 거라고.
고양이가 주인공인 베르베르의 <고양이>도
넓게 보면 비슷한 생각이 아니었나 싶다.
'바스테트'는 종과의 대화를 넘어
영혼(정신)의 대화를 꿈꾸며
끊임없이 지적 영역을 확장한다.
'바스테트'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 상당히 흥미롭고
고양이의 눈으로 본 인간들의 세상은
재미있기까지 하다. 그녀는 소통을
중요시하지만 '피타고라스'와 [정보]를
만나기 전까지 호기심 많고 욕구에 충실한
[동물]일 뿐이었다. 사고를 가지게 되고,
소통을 하며 다른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
'바스테트'의 성장일기를 보는 것 같다.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기만 해서는
그저 아는 것이 많은 존재밖에
되지 않지만, 끊임없이 사고하고
호기심을 가지고 행동하면
지금보다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
책은 두 권이지만 크기가 작은 덕에
빨리 읽히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개미>와 비교될 것도 같은데 사실 너무
오래전에 읽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상당한 충격을 줬던 소설만큼은
아니지만 나는 재미있게 읽었고
주인공들이 변해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집사님들
혹은 고양이를 좋아하는 분들이
읽는다면 재미가 두 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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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p.12
그때부터 나는 확신했다.
살아있는 것은 모두 영혼이 있다.
영혼을 가진 것은 모두 소통이
가능하다. 소통하는 것은 모두
나와 직접 대화할 수 있다.
1권 p.91
새로운 지식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기보다는 안도감을 주는 것 같다.
이제 내가 누군지,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내가 어디에 사는지, 내 주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더 잘 알게 됐으니까.
배움은 최고의 특권이 아닐까.
무지한 채 살아가는 존재들이
안타깝고 불쌍할 뿐이다.
2권 p.178
그동안 깨달은 게 있다면 뭔가를
소유하려는 욕망이야말로 모든 갈등과
분쟁의 원인이라는 사실이다. 배우자를
소유하고, 땅을 소유하고, 인간 집사를
소유하고, 음식을 소유하고, 자기 자식을
소유하려는 욕망 말이다. 누구도 타인의
소유가 될 수 없다. 존재는 물건과 다르니까.
2권 작가의 말
추신. 마지막으로 아주 간단한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만약 여러분보다
덩치가 다섯 배는 크고 소통도 불가능한
존재가 여러분을 마음대로 다룬다면,
문 손잡이가 닿지 않는 방에 여러분을
가두고 재료를 알 수도 없는 음식을
기분 내키는 대로 준다면, 어떤 심정일까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아이들 처지도
이와 비슷한데, 기간이 짧아요. 그렇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