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우는 것 같다 시요일
신용목.안희연 지음 / 창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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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산문집, 에세이, 시집을 잘 읽지 못한다. 이야기

읽는 것을 좋아해서 책을 읽기 시작했고 항상 나를 어디론가

데려다주기를, 내가 내가 아니어도 되는 책들을 좋아했다. 그래서 어쩌면

현실과 맞닿은 현실과 가까운 글들을 읽지 않으려 애썼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구성은 어떻게 보면 독특하다. 그저 시집을 묶어서 낸 책이 아니라

책의 반 중 앞은 신용목님이, 뒤는 안희연님이 쓰셨다.

 

각 글은  아버지를 소재로 한 시가 나와있고,

그 뒤는 시와 관련된 아버지에 대한 추억과 기억들을

담은 작가님들의 에세이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쉽게 말해서 시, 에세이, 시, 에세이의 형식이다

 

처음에 이 책을 읽고 내가 느꼈던 건 부끄러움이었다. 내가 하루 동안

내뱉는 말이, 블로그에 써 내려갔던 그간의 글들이 얼마나 의미 없고

그저 그런 말과 글들이었나 싶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내 모자란 표현력을 비웃듯

한자 한자가 의미와 그리움으로 가득했다.
 

특히 신용목님의 글을 읽으면서 가슴 한편이

계속 아려와 새벽 감성 버프인가 싶어

오후에도 읽어봤지만 역시나 계속 아려왔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후로 매일 밤 잠들기 전

'아버지'에 대해 생각했다.

 

'아버지', '아빠' 20년도 넘게 나에게

너무 낯설었던 그 단어를 매일 밤 되새기며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나 생각해 보았다.

 

우리 집 '아빠'라고 남들과 조금은 달랐을까.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던 그 사람은 어린 시절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얼음장사를 했다고 한다.

 

내 기억속에서는 흥이 많고,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했으며,

술도, 담배도, 도박도 무척이나 좋아해서 집에 있는 날보다

없는 날이 더 많았던 사람이었다.
 

엄마 말에 따르면 돈 버는 재주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놀고먹는 한량은 아니었다 한다.

사실 나도 아직까지 우리를 떠나기 전

그가 했던 노력들을 조금씩 기억하고 있다.

 

가족여행을 계획하다 아무도 반응이 없어

화가 나 집 밖으로 뛰쳐나가버린 일,

내 방학 숙제를 아무렇지 않게 뚝딱 만들어

주던 일,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진미숯불갈비에

서 외식했던 일, 일요일 아침에는 전축을 틀어

놓고 가족 모두 집 안 청소를 했던 일까지.

 

다만 내가 그땐 너무 어려 '아빠'라는 사람과

함께 있던 그 공간을 무서워 피했고, 유독

나에게만 엄격했던 사람이라 그 사람을

좋아할 수 없었던 것뿐이었다.

 

아빠는 내가 아들이길 바랐다.

태몽조차 아들이었던 나는 그에게는

자신의 든든한 편이자 분신이 될 거라는

기대감을 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는 더 무서운 호랑이 같은

사람이었다. 마중은 물론 깍듯한 인사.

그리고 인사를 한 후에는 들어가도 좋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까지 서 있어야 했다.
 

왼손잡이였던 나를 아침마다 밥상머리에

앉혀 오른손으로 다 먹지 못하면

못 일어나게 하셨다.

 

집에서 쿵쾅거리면서 뛰어다니면 본인이

만족할 때까지 다시 걷게도 하셨다.  

그래서 나는 아빠가 우릴 떠난 후 그에 대한

반발심으로 예의라곤 1도 없는 청소년기

시절을 보낼 수 있었고, 여태 쿵쾅 거리며

다니는 발걸음을 못 고쳤다.


 

부모님은 헤어짐의 이유가 명확했기에,

그리고 잘못이 분명했기에 나는 편하게

한쪽 편을 선택할 수 있었고, 누구를 미워해야

되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있었다.


 

다만 아버지는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있으면 무섭고 부담스럽고 싫었지만 그가

끓여주던 라면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의 혼란도 불안함도 없을

거라는 자유로운 마음과 동시에 아빠가

없는 삶을 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세상이

얼마나 차가운지, 현실이 얼마나 차갑고

냉혹한지 또한 느낄 수 있었다.


 

놓아주었다고 생각하면 정말 놓아준 것이

아니라고 한다. 10여 년 전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나는 그 사람을

놓아주었다 생각하지만 어쩌면 내 마음속에

그 사람은 영원히 남아서 '아빠'라는 이름으로

존재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책을 세상의 모든 딸과 아들들이,

아빠가 될 아빠들이 읽으며 미웠던 아빠,

좋았던 아빠, 그냥 아빠를 기억했으면 좋겠다.

 

 

세상 저 끝으로 간다고 말해주었다. p018

무엇이 되고 싶다는 말은 아름답다.

혼자 걸어가야 하는 길이고 혼자 감당해야

하는 일이지만,  세상에는 외롭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도 있다. 우리는 모두 그런 류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엑스레이 필름처럼 검은 유리창 속에. p046

병원에 가면 세상은 아픈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것 같고, 밤의 고속도를 달리다 보면

모든 사람들이 사랑을 잃고 차를 모는 듯한

느낌이 든다. 결국 세상엔 사람과 사람의 일들

로 가득 차 있었고 그것은 어김없이 쓸쓸한 풍경으로 다가왔다.


 

나는 내가 다 지나가기를 기다릴 뿐. p070

말이 반복되면 강조일 뿐이지만,

행동이 반복되면 그 사람이 된다,


 

그러나 아버지는 죽지 않으리. p97

정작은, 아버지도 당신의 아버지를 감당하기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에 미치면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은 아버지를 반복해 사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너무 긴 칼을 가진 무사처럼 허둥대다가. p108

엄마 나이 서른다섯, 언니 나이 열, 내 나이

아홉의 일이었다. 그저 한 사람이 사라졌을 뿐

인데  그날 이후 우리의 세계는 잘 익은

수박처럼 쩌억 갈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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