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던 시절에는 SF 판타지라기 보다는 그냥 판타지가 유행했었다.
<퇴마록>을 읽고 자랐고, <드래곤 라자>를 읽으면서 내 인생철학을
다시 세우고, 나는 누구인가 고민하곤 했다.

20대가 되면서 다른 것들에 마음을 뺏겨 판타지는 물론, 한국소설에서도
많이 멀어졌었는데 최근에 혼자만의 계기가 생겨
이 책을 보자마자 어린 시절의 호기심이 떠올라서 신청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자의 이름이 너무 가슴 철렁해서 신청할 수밖에 없었다.
나랑은 정말 모음 하나만 다른 이름. 분명히 뭔가 있다 싶었다.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SF판타지>
나는 사실 과학에 별로 흥미가 없다. <인터스텔라>를 봤을 때도
이해가 안가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간단한 질문을 몇 번이나
남자친구에게 해서 곤혹스럽게도 했다.
그런 내가 SF 판타지라니...
처음에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책 표지만 보고 우주선으로 우주 아이돌을
배달하는 이야기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첫 장 을 열고
얼마 안 읽었을 때는 솔직히 난감했다.
지금까지 읽어 온 소설의 대부분이 전지적 작가 시점이었는데
이 책은 1인칭 시점인데다 주인공이 발랄한 20대 여성이었다.
그것도 내가 잘 모르는 SF, 우주 배경으로.
초반까지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프사이라든가
테라인 이라든가 갱남 시티라는 단어들이 실소를 자아내게 했고
계속 읽을까 말까 고민을 한 것도 사실이었다.
근데 신기하게도 읽으면 읽을수록 생각보다 재밌었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들이 쏙쏙 나왔고 어느새 중반부에는 빠져들어서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우주 아이돌 배달 작전>은 쩐의 민족, 배달의 민족의 후예인 시현과 은령이
배달의 일환으로 판타므 교단의 소속 아이돌 '체인'을 은하 라이브 투어로
이동시키면서 일어나는 초발랄 스페이스 모험 활극이다.
소속사를 교단으로 표현하며 마찬가지 파파라치의 개념으로 귀 레기옹을
등장시키키도 한다. (이런 표현들이 흥미를 유발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체인의 매력적인 멤버들과 그들을 둘러싼 교단과의 갈등, 다른 아이돌 그룹과의 갈등.
과연 시현과 은령은 그들의 투어를 무사히 성공시키고 난 뒤 쩐을 챙길 수 있을 것인가?
<영원토록 연결해! 너와나의 다섯반지!
영롱하게 이어져! 최강체인 영원체인!>
이건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도 모르게
따라 하게 되는 구호인데 마치 무한도전의
하하가 천년만년! 영원히 사랑해! 라고 외치는 구호 같지만
실제는 '체인'의 팬클럽이 외치는
팬클럽 구호이다. 근데 나도 모르게
계속 따라 하게 되는 건 왜지?
<우주아이돌 배달작전>은 좋게 말하면 통통 튀는 발랄한 SF고
안 좋게 말하면 산만하고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설정들로 뭔가
그들만의 세계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후반에도 계속되는 설명에 조금 지치기도 했다. 물론 적절한 비유와,
오마주 그리고 패러디의 향연은 생각보다 재치 있어서
대단하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잘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이 읽었을 때는
도통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 우리 손 작가님은 친절하게도
마지막 페이지에 우주아이돌 배달 가이드를
따로 작성해주고 있다. 그리고 패러디 했던
영화, 책 등등 온갖 작품을 설명해주신다.
나도 만화나 애니메이션, 판타지 소설을 좋아한다고 자부해서
몇 개 정도는 찾았는데 정말 얕은수였고 정말 알지도 못하는
어마어마한 작품들이 많아서 주눅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이 책을 좋아하는 재료를 한데 모아
매콤하게 비빈 비빔밥 스페이스 오페라라고 표현하시며
쓰까- 묵는다는 이야기를 하시던데
그게 좀 은근히 기분 나쁜 표현이라 (왜인지는 모르겠다 ㅠㅠ)
당황스럽긴 했지만 내가 몰라서 그렇지 여러 재료들을
한데 넣어 잘 버무린 SF 소설은 맞는 것 같다.
한국소설에도 이런 SF 장르의 소설이 있다니 뭐 당연히 그간 있어왔겠지만...
막상 읽어보니 신기하기도 했고, 좋은 경험이 된 것 같다.
20대 시절 간간이 읽었던 일본 판타지
<보너스 트랙>, <라스만차스 통신>이
생각나는 추억여행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