룬의 아이들 - 윈터러 7 : 새벽을 택하라
전민희 지음 / 제우미디어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판타지 소설을 읽는 사람이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모르긴 몰라도 주인공의 성장을 통해서 느낄 수 있는 쾌감과 다양하고 내가 경험해보지 못할 비현실적이고 놀라운 이야기에 대한 간접체험이 가장 크다고 본다. 
  하지만, 주인공 보리스의 파란만장한 모험기이자 성장 스토리가 주 내용이 되는 룬의 아이들을 읽는 동안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생각이 있었다.  

“불편한 책이다. 아니 주인공을 보고있기 불편하다.” 

재미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흠잡을 데 없는 책이다. 진네만 가문의 항쟁과 가족사, 그 사이에서 생겨난 아버지와 삼촌의 반목, 아버지와 형제를 잃고 사람들에게 배신당하는 주인공 보리스, 우여곡절 끝에 스승을 만나 비밀의 섬에 들어가서 겪게되는 신비로운 이야기들.
  끊임없이 연결되는 새로운 이야기, 그리고 이야기를 꾸려나가는 등장인물들은 각기 다양하고 독특한 개성으로 잘 표현되어 있었다. 물론 그 안에서 판타지적인 요소도 잘 어우러져 있었다.
  스토리의 진행이 재미있었기에 멈추지 않고 끝까지 읽었지만 정작 내가 이 책을 통해서 느낀 감정은 위에서 이야기한 불편함이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는 그 순간까지도 난 이 불편함을 떨쳐내지 못했다.

왜 그런것일까?

아마도 이렇게 생각하게 된 가장 큰 요인은 주인공의 나이가 아니였나 싶다. 주인공 보리스의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것이다. 본래 소설 속의 주인공 나이란 전혀 문제되는 요소라고 할 수 없다. 문제가 되어서도 안된다. 어디까지나 작가가 창조한 세상이니 그 세상 안의 주인공이 몇 살이든 상관이 없다는 건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느낌이 조금 다르다. 아버지에게서 얻지 못한 신뢰, 형의 죽음, 그리고 반복된 배신 등…... 이야기의 초반,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설정하기 위한 각종장치들을 지나치게 짧은 기간안에 응축해놓은 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그 장치들의 결과가 미치는 대상이 다름아닌 열 살을 갓 넘긴 소년이라는 점은 더 큰 문제였다. 
  글쓴이의 의도를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의식이 완전히 자라지 못한 시기의 사건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 인물의 인생 전반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 그렇기 때문에 사건과 인물간의 연결고리를 특별한 장치 없이도 매우 단단하게 만들어줄 수 있고 그런 연결고리는 이야기를 진행하는 데 있어서 상당한 힘이 된다. 즉, 별도의 설명없이도 대부분의 행동에 대한 당위성을 만들어 주기 때문에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정이입을 하기 쉽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여러 사건을 통해서 보리스의 성장을 보던 내 입장에서는 단순히 ‘그런 일이 있었구나’하고 이해하기 힘들게 만드는 요소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나이였던 것이다. '정말 이게 아이에게 일어난 일이라고?' '더구나 그 사건을 이렇게 받아들인다고?' '그리고 이렇게 변한다고?' 이 모든 것이 너무 극단적이었다. 어찌보면 너무 잔인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주인공이 성숙해지는 과정에서 생기는 사건이나 결과 자체는 합리적이지만 그것을 얻는 대상은 이제 갓 열 살을 넘긴, 그것도 귀족에 가까운 생활을 하던 소년이었다는 점이 나와 주인공과의 거리를 벌려놓고 불편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극한의 상황을 겪음으로써 정신적으로 불과 몇 개월 만에 아이에서 어른으로 훌쩍 커버린 아이 보리스. 하지만 육체는 그렇게 갑자기 클 수 없다. 일부러 어른스러운 아이라고 생각해보려해도 이미 주인공의 사고방식은 흔히 우리가 이야기하는 불혹, 지천명, 이순 등을 넘어 세상사를 모두 알고 있는 듯한 성인(聖人)의 느낌마저 들었다.
  이렇게 주인공의 인격이 내가 생각하는 현실적인 면과 차이를 보이게되자 생기는 문제점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주인공의 주변에서 사건을 같이 겪어 나가는 또래의 친구들조차도 주인공 수준, 혹은 주인공보다 더 나은 수준을 보인다는 것이다.

결국 이렇게 잘 갖추어진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들은 이야기와 동떨어진 특별한 존재처럼 느껴진다. 심지어 스토리상 절대적인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일리오스마저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붉은 심장을 파괴하는 행동을 하는데 주인공은 전혀 그런 실수를 할 것 같지 않다! 주인공 보리스와 그 주변인물 몇 명은 소설의 세계관에서 살짝 어긋난, 혹은 완전히 다른 길에 서있는 존재처럼 보인다. 애초에 주인공을 스무살에 가까운 인물로 설정했다면 좀 달라졌을까? 대답하기 힘들다. 단지 아쉽다는 생각뿐이다.
  보리스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재미있지만 가슴이 두근거리지는 않는다. 마치 결말을 알고 보는 반전영화를 보는 것처럼 무언가 큰 재미가 빠져있는 느낌. 어느 순간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주인공의 이야기보단 조연에 가까운 인물들의 이야기에 더 집중하고 즐거워하던 나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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