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라벌 사람들
심윤경 지음 / 실천문학사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서라벌 사람들-혼을 빼놓는 문체와 발칙한 소재,화염과 냉정이 자리하는 소설
 

아무래도 이건 관점의 차이가 아닐까 싶은데..


난 쉬운 글을 좋아한다.


또 그만큼 발칙한 내용을 좋아한다.


여기서 "발칙한"의 의미는 기괴발랄한. 뒷통수를 치는. 너무 흥겹고 속도감이 있는. 그러면서도 인간의 내면의 흐름의 예리한 부분을 잊지 않는-한마디로 팽팽한 활시위같은 소설.


 


"서라벌 사람들"은 내가 읽어왔던 그 어느 소설과도 달랐다.


또한 내가 기대하던 소설의 모습과도 달랐다.


이건 말이지.. 난 고소하면서도 풍부하고 미적으로 보기좋은 화이트소스 크림 스파게티를 기대하고 식당에 왔는데


식당에서 쉐프가 추천! 하며 내놓은 요리가 뜻밖에도 생전 보고 듣지도, 냄새맡지도 못했던 무슨 특별 사슴요리 혹은 꿩요리 등등을 맛본 것과 비슷하다. 이국적인음식. 참 고급인듯, 웰빙인듯 보이는 음식. 누구나, 특히 요리 평론가들이라면 "베스트"라며 입맛을 다시며 열심히 먹겠지만 일반인인 나는 뭔지 낯선 느낌이 드는 요리.


 


그래.


이 소설은 친숙하지 않다.


친숙한 걸 기대했던  이유는


신문의 소설 소개에 신라 시대의 비보이나 남남상열지사 등등의 "획기적인, 참신한"문구를 보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소재를 다루고 있는데


뭔가.. 낯설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이 소설이 좋은 소설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문체? 정말 잘 썼다. 난 이런 고급스럽고 고상하면서 우아하며 화려하고 역동적인, 사람 혼을 쏙 빼놓는 듯한 문제를 만난지 참 오랫만이다. 처음 든는 단어들도 신선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글을 이끌어나가는 기교. 작가의 담대함과 놀라운 상상력이 천둥번개처럼 번쩍거린다. 이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참 " 많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이 좋은 책이거나 참신한 소재라거나 훌륭한 감각적 문체라거나 하는것에 절대 이의를 가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난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 책의 방향과 비교를 하고 싶은 마음일 뿐.


 혹시 이런 느낌 알려나? 숲을 기대하고 한없이 걷다보니 반짝거리는 바다가 나타나더라. 난 모래 사장에 주저앉는다. 한참 걸어왔고 날도 저물었고 배도 고픈데 이젠 "여기서" 뭘하지?하는 느낌.


 


혹시 이책의 내용이 궁금할 사람이라면 여기저기에  쓰여진 자세한 설명들이 있을 것이다.


만약, 내용이 아니라 "방향"이 궁금한 사람이라면


앞으로 내가 쓸 "이책의 느낌"을 잘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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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책엔 "두근거림"이 없다.


꽃미남들과 멋쟁이, 여왕과 외사랑이 등장하고 화랑들과 미녀들이 줄줄이 등장하는데


정작 가슴에 불결을 일으키는 "애정"은 느껴지지 않는다.


이 책이 묘사하고 있는건


내 생각엔 "사랑의 감정"이나 지도자의 "현실"이 아닌 것 같다.


 


이 책이 묘사하고 있는건 신라시대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다.


그건 경외롭기도 하고 호기심에 차 있기도 하며 상당히 "관찰자적"이다.


두 화랑이 정을 나누는 장면은 사랑이 느껴지기 보다는 관음증적인 "관찰"이 느껴진다.


작가 스스로도 선데이 서울이 적절치 않겠느냐는 언급도 잠시 한 적 있지만 딱 그런 느낌이다.


왕과 왕비의 교접의 묘사. 정말 생동감 있다. 그런데 정작 왕과 왕비에게는 어떤 설레임도 느껴지지 않는다.


 


음--말하자면 이 책은 발산하고 보여주고 "느낌"을 전달하는데 충실한 소설이다.


흔히 어떤 일본 소설들을 보면 주인공의 내면을 미묘하게 쫒아가거나


주면사람들과의 미묘한 교환(단순한 눈짓이더라도)을 통해 행동보다 마음을 보여주는 그런 것들이 있는데.


이 책은 행동을 보여주고 마음을 피상적으로 짐작토록 한다.


작가의 관찰자적 시점 때문일까.


 


단지 발산하기만 했다면 이 책은 그야말로 선데이서울에 불과했겠지만


문학적 표현력과 서라벌을 아우르는 작가의 역사적 철학이 잘 통합되어 있어 작품성은 높다고 본다.


 


누군가가 이 책을 읽고 이런 느낌을 적었는데 맞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은 품위있고도 무척 역동적이며 발칙하되 경건하다.


이 소설 안에는 유교 사상이 이땅을 지배하면서 "방종"이라 금해졌던, 신명나는 풍속들이 살아 숨쉰다.


단어선택이 뛰어나고 화려한 버라이어티를 보여준다. 살아있는 서라벌에 다녀온 듯한 착각마져 들게 한다."


 


맞다.


3줄로 압축을 하자면 위와 같을 것이다.


 





이 풍속에 대한 묘사만큼 인물의 슬픔이나 갈등을 보여주었더라면,


드라마틱한 묘사만큼 동화적인, 만화적인 느낌을 전해주었더라면...


다른 사람에겐 어떨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게는 더욱


운치있었을 것이다.


 


 


보너스:


이 책을 읽고 나면 "정말 신라가 저런 시대였을까" 싶을 정도로 궁금하고 놀랍다.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우리나라의 과거의 한 시대.


신과 인간, 토속신앙과 불교가, 자유연애와 제사적 국가 행사들이 아무 금기를 내비치지 않는


자유로운 곳.


성골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시대에 왕과 왕비가 어떤 의미로 사람들에게 다가왔었는지.


-참으로 경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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