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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 굿바이
이시다 이라 지음, 김해용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연애담을 담은 단편 소설은
예를 들면
1. 아주 눈물이 뚝뚝 흐를 것 처럼 감각적, 감성적이거나
2. 인간의 치부를 드러내는 파렴치한 면까지 여과없이 드러내거나
3. 환상적인 느낌을 주는 화려한 미감의 소설이
전부가 아닐까.
아니 그래야만 단편으로서의 맛을 가지는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서
평범하고 리얼리스틱한 이야기도
이렇게 실 개울물이 흐르듯,
흐르는 물 속의 물고기들이 노니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듯
투명하게 보여주면.. 만들어 낼 수 있구나, 라고 느꼈다.
강물도 아니고 바다도 아니고
그냥 집 근처에서 볼 수 있는 개천이다.
단지 개울물은 투명하고 맑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이 소설을 읽고 내가 느낀건
상징적으로 위와 같은 느낌이었다.
구체적으로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이야기
단지 옆에서 지켜볼 땐 모를 수도 있지만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보여지는 이야기.
그냥 이웃들의 연애담을 스토킹하는 느낌.
혹시 남의 감정을 그대로 읽을 수 있다면 옆에서 지켜보며 알 수 있는 상대의 감정을
느끼고 보는 느낌.
작가는 이런 식으로 이 책을 쓴 동기를 밝혔다.
“거대한 작품 세계가 아닌, 바람의 살랑임이나 기분의 술렁임만을 담담히 마음 속에 남기는 것인 소품의 매력. 읽으면서 독자가 언제나 느긋하게 자기 자신인 채로 남을 수 있는 단편. 제트 코스터처럼 이야기 속에 휘말려 엄청 피곤해 지는 일이 없는 즐거운 단편.”
아울러 책을 진행하는 방식에 대하여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지금’을 살아 가는 남녀 간의 연애의 한 장면을, 선명하게 잘라내서, 누구도 쓰지 않은 주제를, 누구도 쓰지 않은 방법으로 쓰고자 한다. 좀 달콤해도 괜찮으니까 읽고 나서 기분 좋게 취기를 날려 버릴 만한 러브스토리를 쓰고자 했다.”
고개 끄덕끄덕- 내가 이 책을 읽고 나서 느낀 느낌이 딱 그랬으니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원하는 방식으로 표현하고
읽는 사람에게 자신이 표현하고자 했던 바를 그대로 느끼게 하는 건
작가적 역량.
참 창조적인 태도이고 또 창작인으로서 부럽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내가 이러한 스토리를 좋아하는가 와는 별개로
자기 느낌을 그대로 글로 표현하는 작가의 표현력엔 감동.
만화로 치자면 아다치 미츠루의 단편집 ” short program”을 보는 느낌이었다.
도형으로 이야기하면
지그재그로 각이 나 있는 동그라미 모양.
색으로 치자면 하얀색, 혹은 투명한 유리색.
영화의 한 장면으로 치자면 러브레터 속의 흰 눈의 장면.
배우로 치자면 박해일의 매력적으로 연기를 잘 하면서도 평범해 보이는 그런 모습.
이 책을 보고 좋아하게 될지 아닐지는 독자의 취향에 달렸다고 생각하지만
어쨌거나 수많이 존재하는 연애 소설의 형태 중에서
또다른 느낌을 주는 이런 형태의 탄생은 참으로
신기하고도 축하할만한 일인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