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듀본의 기도 - 아주 특별한 기다림을 만나다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지은이

이사카 고타로 | 오유리 옮김

출판사

황매(푸른바람)

 

환타지?

 

오랫만에 명작을 발견했다.

500페이지 가까운 책을 10페이지처럼 읽었다.

 

저자는 이사카 코타로라는 1971년 생 법학부 졸업생

생긴 모습도 예리하면서 약간 삐딱해 보인다.

 

그의 데뷔작?

바로 이 소설인데

소설 내용이 어른용 환타지 미스터리이다. 그런데..정말 어른을 위한 동화같다.

(어린이가 보기엔 이해가 어렵고 잔인한 장면도 많은데다가

인생의 묘미를 한 구절로 승화한 부분도 곳곳에서 발견되고-즉 심오하기까지 하다-)

 

.. 이소설을 만일 어떤 범주에 놓아야만 한다면

미스테리 추리극, 환타지 동화, 공상 발랄 만화의 중간 접점에 놓일 것이다.

(순정 환타지 일수도 있다. 잘생긴 남자들이 많이 나오니까)

 

마술?

 

500페이지 중 약 400페이지 정도는 발단이며 전개이다.

황망한 미스테리 추리 모험극이 계속 진행된다.

나머지 약 80페이지 정도는 사건의 해결이 보인다.

그리고 나머지 약 20페이지 정도가 남으면

"이 작가 이걸 어떻게 짰지?"싶을 정도로 아귀가 꼭꼭 들어 맞는 해답이 전개된다.

그리고 결말.

여운과 아쉬움이 바람처럼 독자를 휘감는다.

"아, 왜 내가 그런 복선들을 놓쳤을까. 아 그 때 그 사람의 행동은 바로 그래서 그랬는데...

설마 이런 결말일 줄이야"

-여기에서 아쉬움은 서운함과는 다르다. 결말을 납득할 수 없는게 아니라

결말에 너무나 납득할 수 있기 때문에

내자신이 감쪽같이 속았다는 사실에 경의와 전률을 느끼는 것이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말이 되는 이야기"로 바꾼건 작가의 마술같은 글만드는 솜씨 때문.

일단 상상의 화폭이 넓다.

일본에서 고립된 외딴섬을 환타지 세계로 설정해서

그 섬만의 규율, 사회 체계와 다양한 개성의 섬사람들을 만들어 낸 것만으로도

눈이 휘둥그래질 지경인데

날실과 씨실을 엮어 그 세계와 현실 세계를 접목해서

하나의 미스테리 사건을 만들어내고 풀어헤치는 솜씨가 전혀 군더더기도, 빈틈도 없었다.

 

천재?

작가 스스로도 이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

고심하고 연구하고 연습하고 머리를 쥐어짰으리라는 상상이 어렵지 않다.

만일 그게 아니라면

이 작가는 진정한 천재일 것이다.

 

이 소설을 바라보며 한 마디로

"2차원 세계의 독자를 위한 3차원 세계에서 온 작가의 선물"이라고 한다면 과찬일런지?

 

 

이유가 안 돼?

 

한가지 놀라웠던건 번역 솜씨

원본을 알 도리는 없으나 단어를 고르는 번역자의 안목이 상당히 빛나는 소설이었다.

그 단어나 문장을 읽으면 바로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 보이는..

상당히 기억에 남는 문장은  이 문장

"이유가 안 돼"(사쿠라의 말)

 

 

여운?

 

또한 한가지 더 놀라왔던건

비록 이 소설이 어쩌면 그저 재미있고 기발할 수만 있었던 소설일 수도 있었는데

덤으로 보여주는 작가의 도덕관과 가치관이다.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이 흘리는 말에서(위의 사쿠라의 말을 포함해서)

인생에서 들어봐야만 할 말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온다.

그래서 이 소설은 단지 재미있는 시간때우기가 아니고

지적 유희 게임만도 아니고

다시 한번 나를 돌아보고 내주변을 돌아보는

'생각'을 하게 하는 소설이 되었다.

 

책을 덮고 나서도 여운이 남아

다시 책을 쓸어보게 되는 소설.

 

최근에 읽은 가장 멋진 소설이었다.

 

 

 

인상적인 구절들

 

".. 자기가 사라지는 장면을 누군가가 지켜봐 주길 바라지 않겠어요? 저 같으면 그럴텐데요. 그렇지 않으면 나란 사람이 처음부터 존재했는지 안 했는지 누가 알아요?"

 

"인생이란 건 말이지. 백화점에 있는 에스컬레이터나 매 한가지야. 나는 제 자리에 멈춰 서 있어도 어느 틈엔가 저 앞으로 나가 있지.(중략) 도착하는 곳은 정해져 있지. (중략) 자기가 있는 장소만큼은 에스컬레이터가 아니라고들 생각해."

 

..내가 강해서 그런 게 아니다. 약하기 때문이다. 그냥 대충 그 자리만 모면하면서, 딱히 살아갈 이유도 목표도 없던 나는 그녀가 보기에 제일 먼저 쓰러트려야 할 대상이었음에 틀림없다.

 

"그 아이...(중략 ) 그런, 사람을 밀쳐낸 적이 있는 손이었어. 눈은 또 살인자의 눈을 하고 있고 아주 부정한 짓을 한 손이더라고." (중략) "아무렴 네가 걔랑 친구겠니. 두고 봐라. 세상을 어지럽히는 건 꼭 그런 아이란다."

 

"내가 알고 있는 한, 그렇게 머리가 좋고 상대의 아픔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자는 오래 삽니다."

..나는 권선징악을 컨셉으로 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나쁜 짓을 하면 반드시 천벌을 받는다.'는 옛말을. 나는 좋아한다. 왜냐하면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까.

 

"동물을 먹고 살아간다 나무껍질을 벗겨 살아간다. 몇 십, 몇 백의 희생을 치르고 한 사람의 인간이 살아간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해서 살아갈 가치가 있는 인간이 몇이나 되는지 아나?"

 

사람이 살아가는 데 어느 만큼의 동물들이 희생을 치러야 하나.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꽃들을 짓밟을 것인가. 사쿠라는 그런 의문을 던지는 대신 사람을 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가게들이 있으니까 인간이 저 잘났다고 착각하는 게야. 이렇게 살다간 '태양이 없어도 우린 문제 없다.'고 떠벌릴 테지.

 

 

"다만 민들레꽃이 피는데 가치는 없어도 그 꽃의 천진한 아름다움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인간에게 가치는 없지만, 없는 것은 없는 것일 뿐 그렇다고 화를 낼 일을 아니지요."(중략) "우리 꽃이나 심을까요?"

 

광기와 수용, 미치기와 받아들이기. 둘은 닮은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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