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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도서관
조란 지브코비치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우린 모든 사람들이 강제로 책을 읽게 만들지. 덕택에 아름다움과 유용함을 조화시킬 수 있게 됐어.
무엇보다도 재소자들이 여기 오게 된 핵심적인 결점을 없앨 수 있지. 책을 많이 읽을수록 나쁜 짓을 할 시간과 동기가 점점 줄어들거든. 이 친구들에게 독서가 정말로 치유의 효과를 발휘하는 거야.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벌이 아니라 치료로 생각하는 거지."
유고슬라비아(현 세르비아) 출신의 작가 조란 지브코비치.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나도 역시 책이나 도서관을 소재로 한 소재의 책에는 환장(!)하는 편이다.
발터 뫼르스의 "꿈꾸는 책들의 도시"가 그랬고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바람의 그림자"가 그랬다. 워낙 유명한 작품인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나 랄프 이자우의 "비밀의 도서관", 존 코널리의 "잃어버린 것들의 책", 요슈타인 가아더의 "마법의 도서관" 등이 모두 그런 부류라고 할 수 있겠다. 지난 2011 국제도서전에 갔다가 북폴리오 부스에서 이 책의 제목을 발견하고 눈이 반짝반짝 해졌었는데 리뷰 블로거라서 책을 받아서 많이 기뻤다. 어제 택배를 확인하고는 퇴근 후 집에 가는 길에 후루룩 다 읽어버렸다. 책을 읽다보면 두 종류가 있는데 속도가 참 안 나는 책과 손에 잡으면 절대 놓기 힘든 책이 있다. 지금 몇 권의 책을 동시에 읽고 있는데 속도가 좀 안 나서 미뤄놓고 있는 참이었더랬다. 그러나 새롭게 얻은 환상도서관 덕분에 즐거운 독서의 시간을 향유할 수 있었다.
환상도서관 안에는 모두 6개의 색다른 환상도서관이 등장한다. 이런 도서관이 주위에 있어? 라는 의문을 가지지 말기 바란다. 제목을 보면 어디까지나 환상도서관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에 등장하는 이러한 환상도서관들이 없다고 단언할 수도 없다. 그건 모르는 거니까. 지금도 세상의 무수히 많은 곳에서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새로운 일이 날마다 수백가지, 혹은 수천가지도 더 일어나고 있을게 아닌가. 가상 도서관, 집안 도서관, 야간 도서관, 지옥 도서관, 초소형 도서관, 위대한 도서관의 6개의 도서관으로 이루어진 책은 읽어가는 내내 이런 도서관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나 지옥이 도서관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상상력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감탄하게 했다.
가상도서관 속에서 화자의 직업은 작가이다. 그는 어느날 이메일로 온 스팸메일 중 "가상도서관"이라는 제목의 메일을 발견한다. 작가들도 도서관이나 책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당연하기에 그는 클릭을 해서 해당 사이트로 방문해 본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가상도서관>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세상에 이 무슨 엄청난 자신감인가.. 하루에도 수백권, 혹은 수천권의 책이 생산되고 그 수를 모두 합치면 몇 백만권, 몇 천만권이 될지 모른다. 그런데 모든 책이 다 있는 도서관이라니, 이런 도서관이 있다면 나도 꼭 한 번 방문해보고 싶다. 검색창도 오로지 저자명으로만 검색할 수 있는 단순한 검색. 화자는 자신의 이름을 넣어본다. 그러자 너무나도 빨리 작가소개와 작품이 뜨는데,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사진과, 분명 그는 살아있건만 사망일까지.. 그리고 이미 출간한 3권의 책 외에도 거의 21권이나 되는 책의 제목이 나열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출간된 책을 눌러보았더니 책의 내용이 첫 글자부터 마지막 글자까지 빠짐없이 들어가 있다. 그래서 그는 항의 메일을 보낸다. 그리고 결과는?
책을 통해 직접 확인해보시기를 부탁드린다.
두번째 내용은 집안 도서관이라는 제목인데, 어느날 혼자 사는 그의 우편함에서 그는 노란색으로 된 두꺼운 <세계 문학> 책을 발견한다. 우편함을 열었다 닫을 때마다 그 안에는 새로운 두꺼운 <세계 문학>이 차 있고 그는 마침내 가방을 가지고 와서 우편함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책을 계속해서 꺼내서 나르고 다시 가방을 비우고 다시 책을 나른다. 책을 둘 공간을 만들기 위해 책상을 치우고 옷장을 치우고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방에는 계속해서 노란색 표지의 두꺼운 <세계문학>들이 쌓여간다. 하룻밤을 꼬박 새며 책들을 옮겨둔 그는 백마흔세번째로 짐가방을 나르고 나서야 팔천삼백다섯권의 책으로 방 안을 가득 채울 수 있었다. 상상만 해도 뭔가 흐뭇한 광경이라고 이야기한다면 나도 너무 책에 미쳐있는걸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다. 본의 아니게 속독을 하는 편이라 2시간 정도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갈 때 읽을 책을 챙길라 치면 왕복 4시간 분량의 책을 챙기기 위해선 적어도 380페이지 이상으로 된 5권의 책을 가져가야 한다. 이 책들의 부피가 만만치 않기 때문에 먼 길을 갈수록 책을 들고 이동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더하다. 물론 책을 읽는 순간엔 너무 행복하지만 그것을 들고 나르는 일이 보통 고역이 아닌 것이다. 가방이 마치 돌덩이처럼 무겁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책을 읽기 위해서라면 감수해야 할 고통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해리포터에 나오는 마법의 주머니가 너무 갖고 싶었었다. 어떤 물건을 넣어도 부피가 느껴지지 않는 마법주머니. 그것이 있다면 6시간 거리의 먼 길을 가도 읽고 싶은 책을 잔뜩 넣어서 갈 수 있을텐데.. 뭐 이런 생각?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가능하다면 저 우편함을 들고 다녀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 권을 다 읽고 옆에 두고 문을 열면 다시 책이 생길 것 아닌가..
세번째의 단편은 야간 도서관인데, 도서관이 폐관할 시간이 되어 아슬아슬하게 들어간 그는 전혀 보지 못했떤 야간 도서관을 만나게 된다. 이 야간 도서관에는 천억권이 넘는 책들이 있는데, 각각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의 일생을 사실적으로 더하거나 덜하거나 한것도 없이 기록한 책이다. 화자인 그는 자신의 일생을 적은 책을 찾아보면서 기묘한 감정에 빠진다. 그의 환상 속에서 일어난 일 같았던 이 야간 도서관 사건이지만 그는 문 닫힌 도서관 너머로 보고야 만다. 자신이 두고 나온 우산의 둥근 손잡이를..
네 번째 단편은 지옥의 도서관인데 위에 이미 적어둔 문장.. 지옥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의 일생 동안 읽는 책의 권수가 적고 그래서 예전처럼 지옥불이 타고 화형을 하는 비인격적인 곳이 아니라 각각에게 필요한 책을 영원히(!) 읽게 하는 곳이라는 상상.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지옥이 아닐테지만 책을 싫어하는 사람이 평생동안 아니 무한의 시간동안 책을 읽어야 한다면..(강제로) 이것도 일종의 지옥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실제로 그런 곳이 있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다섯번째 단편. 이 책 속에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 작가이거나 책을 몹시 사랑하는 독자인 것 같다. 아, 지옥의 도서관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다섯번째 단편인 초소형 도서관에도 역시 작가가 등장한다. 굉장히 오랜동안 아무런 책도 출간하지 못한 작가. 소재가 고갈된 작가라고 해야 하나. 그는 어느날 다리 옆 가판대 근처에서 한 노인에게 세 권의 산다. 집에 오니 봉투 안의 책은 네 권.. 노인이 몰래 넣은 밤색 책을 펴보니 첫번째 페이지에는 <초소형 도서관> 이라고 써 있고 두번째 페이지는 비어 있고 세번째 페이지에는 책 제목으로 짐작되는 한 단어가 씌여 있다. 이 책이 무엇인지 찾아보기 위해 국립도서관 사이트에 접속하여 검색해보았으나 아무런 정보가 없다. 다시 책을 펼쳐든 그는 깜짝 놀라게 된다. 세번째 페이지에 아까와는 전혀 다른 제목이 씌여있던 것이다. 내용 역시도 달라져 있었다. 책을 덮었다가 펼칠 때마다 새로운 소설이 나타나는 책. (정말 갖고 싶다!!)
"더 이상 이 밤색 책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걸 스스로에게 증명하기 위해서 나는 책을 펼쳤다 재빨리 닫기를 반복했다. 매번 세번째 페이지에서 제목이 바뀌는 것에 완전히 매료되어 버렸다. 독특하고 근사한 장난감을 선물 받은 아이처럼 순수한 흥분이 온몸을 가득 채웠다. 이거야말로 진정 초소형 도서관이다. 제목이 아니라 권수로 따졌을 때 말이다. 책이 한 권 밖에 없는 도서관이라면 가장 작은 도서관이 아니겠는가?"
마지막 여섯번째 단편에는 위대한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서의 이야기가 나온다. 무엇이 들어갈지 신중히 결정해야 하는 위대한 도서관. 어느날 사서는 자신이 구입하지 않은 장서 한 권이 책들 사이에 삐죽이 튀어나와 있는 것을 발견한다. 깨끗하고 완벽히 관리되는 위대한 도서관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싸구려 같은 책 한권. 사서는 책을 빼서 쓰레기통에 버린다. 그리고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시 서가를 둘러보는데 아까 그 책이 정확히 그 위치에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한다. 분개한 사서는 책을 돌에 묶어 강에 가서 빠뜨리고 돌아온다. 다시 서가를 보니 여전히 그 책은 물에 들어간 흔적조차 없는 채로 꽂혀 있다. 다음 방법으로 사서는 높은 빌딩 위에서 책을 던져 버린다. 그러나 여전히 어울리지 않는 그 책은 위대한 도서관으로 돌아와 있다. 아무런 피해의 흔적도 남지 않은 채로. 마지막으로 사서는 책을 챕터별로 뜯어내서 소금과 후추를 치고 요리를 만들어 다 먹어버린다. 그리고는 이 책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 안심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프란체스카 비어만의 "책 먹는 여우"에서 보면 소금과 후추를 쳐서 책을 먹는 여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게 얼핏 떠오르기도 했고, 결국 그 책은 펴보지도 않고 버렸기 때문에 계속해서 사라지지 않았고 마침내 그가 챕터별로 조각조각 뜯어 먹어버리자(즉, 책을 읽자) 그의 몸속으로 들어가서 그 사서의 일부가 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환상적인 내용의 책을 볼 때면 항상 느끼는 부분이지만 정말 기발한 상상력들을 발휘하는 것 같다. 나같은 평범하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의 이야기들. 내가 쓰는 글은 대부분 정형화되어 있고 딱딱하게 느껴지는데 어쩜 이렇게 자유롭고 창조적인 글을 쓸 수 있을까. 조란 지브코비치 작가의 상상력과 필력에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낸다. 내가 아까 집안 도서관에서 했던 고민도 초소형 도서관의 책이 한 권 있다면 사라질텐데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짧게 짧게 읽을 수 있어서 지루하지 않아 좋았고,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도 재밌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