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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발론을 여는 주문, 스펠스 ㅣ 윙스 시리즈 2
에이프릴린 파이크 지음, 이지선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난 널 선택할거야. 이번엔 백 퍼센트 확실해. 그는 너처럼 날 이해하지 못해. 그는 내가 아직 준비조차 되지 않은 누군가가 되길 원해.
어쩌면 난 앞으로도 그가 기대하는 그런 모습이 되진 못할거야. 하지만 넌 내가 나 스스로 원하는 모습 그대로이길 바라잖아.
내가 원하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 주는 널, 널 사랑해. 네가 그랬지? 난 나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할 필요가 있다고.
난 그럴거야. 난 널 선택할거야. 네가 날 선택하지 않는다 해도."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온 소녀 로렐 시웰. 로렐은 여름방학을 앞둔 어느날 아발론 아카데미로부터 8주간의 요정 수업 참관 초대를 받는다.
자신이 태어난 고향, 아발론에 처음으로 발을 내딛는 로렐. 7년간의 잃어버린 기억의 공백과 그동안 몰랐던 신분의 장벽을 느끼게 되면서
로렐은 인간세상과 아발론 사이에서 몹시 혼란스러워 한다. 아마 데이빗과 타마니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한다는 표현이 맞으리라.
너무 익숙하고 편안하고 좋은, 함께 있지 않는 걸 상상할 수조차 없는 데이빗과 알 수 없는 이끌림이 강한 타마니.
로렐은 아카데미에서 식물을 다루는 법과 자신과 가족을 지키는 법에 대해서 배워나간다.
그리고 자신 같은 요정들이 태어나는 방식(묘목)과 떠나는 방식(세계수)에 대해서 알게 되기도 한다.
로렐은 스스로 자신과 가족들을 트롤들의 협박에서부터 잘 지켜낼 수 있을까?
확실히 글은 많이 써볼수록 실력이 늘어나는 게 맞는가보다. 윙스도 재미있게 읽었지만 스펠스에서는 더욱 더 끌려들어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로렐의 선택은 어떨지 궁금하고 두근두근하는 마음 때문에 책장을 넘기는 것이 힘이 들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너무 두 사람 모두를 괴롭히는 게 아니냐는 생각도 들지만 내 입장으로 생각해보더라도 데이빗과 타마니 사이에서
고민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로렐의 마음이 십분 이해되기도 하였다.
아발론의 풍광을 묘사한 문장들에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황홀하면서도 화려한 그곳..
특히 여름요정들의 시장에 관한 묘사를 읽으면서 반드시 직접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로 제작되면서 이러한 아름다운 장면들을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한 기대가 점점 커져간다.
조금 씁쓸했던 부분은 계급사회에 대한 이야기였다. 현실세계에서도 다수의 서민이 소수의 부자를 배불리는 것을 많이 보는데
윙스 시리즈 속의 아발론에서마저 봄 요정들이 전체 아발론 인구의 80%를 차지하고 나머지 15%가 여름요정,
그리고 나머지 5% 가량이 가을 요정이고 겨울 요정은 여왕을 포함하여 단지 3명 뿐이라는 것.
그리고 철저하게 계급 사회가 구분된 것 같은 모습에 상상의 세계 속 아름다운 곳에서마저
이런 현실적인 부분을 보아야 하나 싶어서 작가가 원망스럽고 섭섭하기도 했다.
하지만 로렐 역시 그런 신분제도를 뛰어넘는 열린 사고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서 그 부분은 마음에 들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타마니의 아버지가 선택한 소멸의 방법이었다.
온다 리쿠의 어떤 작품에서도 사람이 나무에 흡수되어 소멸되는 장면이 있었는데(물론 그 장면은 몹시 호러쪽이었다;;)
아발론에서 벌어진 타마니의 아버지의 소멸.. 즉 세계수가 되는 것은 아름답고 장엄하기까지 하였다.
세계수를 만진 로렐은 아래와 같은 느낌을 받는다.
다른 식물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나무의 생명력은 손바닥 아래에서 부드럽게 진동하는 정도가 아니라,
장대한 강처럼 포효하며 거센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노래의 리듬 같은 무언가가 로렐의 손바닥을 타고 올라와,
급기야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흐르는 듯 했다.
워낙 음악분야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이 문장의 표현이 참 좋았다.
노래의 리듬 같은 무언가가 손바닥을 타고 흐르다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흐르는 느낌이라는 건 어떤 기분일까.
엄밀히 말해 로렐은 사람이 아니라 식물이기 때문에(이 책에서 요정의 기본 종족은 식물이다) 삼투압 원리 같은 것일까? 너무 딱딱한가.
암튼 스펠스의 문장들을 읽으며, 한동안 또 꿈속을 걷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