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기순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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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화된 사회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

 

지난해 '정의란 무엇인가'로 정의가 갈급했던 한국사회에 그야말로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하버드대 교수 마이클 샌델의 최신작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지 않았지만 마이클 샌델의 이름만 보고도 이거 만만치 않은 책이 되겠구나 생각했는데..

정말 생각할거리들을 끊임없이 던져주는 책이었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처음 제시되었던 자유 시장 경제 논리는 이제 현대에 와서는 그 한계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미 돈으로 모든 것들을 해결하려고 하는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시대를 살아내고 있는 우리에게 잠깐 멈추어 서서 과연 돈이, 시장이 나의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는가. 인간의 인생의 모든 것을 해결하고 완벽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가를 묻는다면 답은 글쎄.. 다. 분명 물질만능주의나, 시장경제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어떤 것에 대한 갈급함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가치이다. 뻔한 얘기이지만 돈으로는 진정한 사랑(true love)을 살수 없으며, 최고의 가치(Best value)도 얻을 수가 없다. 사실 어떻게 보면 인간의 삶에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더 많은지도 모르겠다.

 

마이클 샌델은 '사고파는 시장논리가 우리의 삶을 지배하기 시작하고 오로지 돈이 만능해결열쇠가 되어 버린 시대 당신은 어떤 세상을 원하는가'를 화두로 삼아 시장 경제의 논리를 뒤집어보는 방식으로 우리가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함을 역설하고 있다. 그러나 마이클 샌델의 방식이 그렇듯이 자신의 주장을 강력하게 주입시킨다기 보다는 독자가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생각하고, 돈과 물질에 대한 가치를 바로 세우고, 또 우리가 생각하는 시장 경제의 맹점을 짚어보며 독자 스스로가 이것들을 깨닫고 이해하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이클 샌델 특유의 토론과 도발적 문제제기는 이러한 물질만능주의에 젖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아무도 없다는 식의 맘몬의 우상을 섬기는 시대에 다른 관점에서, 내가 살아온 삶을 (경제적 측면에서) 재해석하게 하는 효과도 있었던 것 같다.

 

1998년 옥스퍼드 대학교의 강의에서부터 시작하여 2012년 봄학기 부터 'Market & Morals' 라는 이름으로 하버드대학교 강의로 개설되는 등 마이클 샌델 교수가 15년간 철저히 준비하고 고민하여 완성한 것으로 이 책을 통해 시장 지상주의의 한계를 짚어보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고 할 수 있다.

당신이 생각하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에는 무엇이 있는가? 진짜 소중한 가치를 우리는 어떻게 알아보아야 하는가..

경제학 책이라서 익숙하지 않은 분야에 많이 어렵기도 했지만, 익숙한 것을 전혀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고 계속해서 생각하고 고민하게 해 주었던 이 책을 덮으며 나는 또 한 가지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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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칭 파이어 헝거 게임 시리즈 2
수잔 콜린스 지음, 이원열 옮김 / 북폴리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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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을 들고 관중을 바라본다. 수천 명의 시선을 받으며 나는 이 자리에 서 있다. 

내가 작아진 기분이다. 마음이 아프다. 긴 침묵이 흐른다.

관중 속 누군가가 루가 흉내어치에게 불던 네 개의 음으로 구성된 멜로디를 휘파람으로 분다.

과수원에서 일이 끝났다는 신호로 불던 멜로디다. 경기장에서는 안전함을 의미했던 멜로디.

그 다음에 일어나는 일은 사고가 아니다. 모든 사람이 동시에 딱 맞춰 행동하는 걸 보니 우연히 맞은 거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관중들은 모두 왼손 가운데의 손가락 세 개를 입술에 댄 다음 내 쪽으로 팔을 뻗는다."

 

우승자로서 12번 구역에 돌아온 캣니스와 피타. 두 사람은 헤이미치가 살고 있는 우승자 마을로 이사를 가서 살고 있다.

헝거게임 이후 더 이상 어떤 것도 그전과 같지 않다. 모든 것은 변해버렸고 이제 평범한 일상이라는 것은 더이상 평범하지 않다.

피타와 캣니스가 헝거게임에서 연인으로서 살아남았기 때문에 상처입었을 게일에게 캣니스는 변명조차 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캣니스는 미칠듯한 그 무료함을 이기기 위해 다시 숲으로, 간다. 게일의 가족에게 사냥을 해다 주고, 무료함을 견딘다.

전체 구역을 돌고 캐피톨에 가는 우승자 투어가 시작되기 직전, 캐피톨에서 벗어나지 않는 스노우 대통령이 캣니스를 만나러 온다.

그리고는 캣니스가 행한 그 반항적 행동의 댓가가 어떤 것인지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조용히 경고한다.

다시 한 번 두려움에 떠는 캣니스 하지만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 피타와의 사랑을 캐피톨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세번째의 25주년 헝거게임이 발표되는 상황, 11구역부터 거꾸로 각 구역들을 돌아보고 다시 12구역으로 돌아온 캣니스와 피타.

세번째의 25주년 헝거게임의 참여자는 각 구역별 우승자 중에 추첨을 하는 것으로 하겠다는 충격적인 말을 듣는다.

추첨을 통해 캣니스와 헤이미치가 뽑히고, 피타는 헤이미치 대신 자원한다. 그리고 그들은 모르는 충격적인 무엇이 시작된다.

캣니스.. 그리고 흉내어치.. 스노우 대통령은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걸까?

 

헝거게임 때도 그랬지만 캣칭파이어에서는 제목처럼 뭔가 거대한 불꽃이 타오를 듯한.. 그런 움찔거리는 느낌이 있어서 진짜 책을 정신없이 읽어내려갔다. 아아.. 캣니스의 도발..? 반항적 행동이 가져온 여파. 사실 반항이라는 것은 정철이 쓴 불법사전에 나왔던 정의로 철저히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쓴 말이기 때문에 캣니스의 행동, 그리고 이 판엠의 12구역이 보았던 캣니스의 행동은 반항이 아닌 희망의 행동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캣칭파이어를 읽는 내내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나도 무언가 판엠의 이 거대한 물결에 동참해서 빌어먹을 캐피톨을 향해 엿 먹어라는 외침이라도 날리고 싶었다. 이제 이 캣칭파이어에서 시작된 불꽃이 어디로 향해 갈지.. 모킹제이에서 확인하고 싶어졌다.

진짜 다음 권이 이렇게나 땡기는 책도 참 오랫만이다. 춥지 않은 날씨였지만 밖에서 한 시간이나 서서 책을 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날씨를 느낄 수 없다가 다 읽고 나자 춥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날씨 뿐만이 아니라 캣칭 파이어에서 나오는 상황 자체에서 느끼는 차가움일 것 같다.

캣니스를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캣니스가 사랑하는 사람들.. 시나의 용기있는 결단...

네타나 스포일러가 될까 차마 말할 수 없는 이 많은 것들을 쓰지 못하는 것이 아쉽고 아쉬울 뿐이다..

헝거게임을 읽었다면 캣칭파이어를 반드시!! 그리고 모킹제이도 반드시!!! ㅎㅎ 영화로 개봉한 헝거게임, 내년쯤에 개봉될? 캣칭파이어!!

아... 진짜.. 마음이 벅차오르는 책이었다. Cheer up! 캣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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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의 동행
미치 앨봄 지음, 이수경 옮김 / 살림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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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질문이 있었다. 그리고 결국 그 질문은 대답을 찾았다.

하나님은 노래하시고, 우리도 그 노래를 따라 부른다. 이 세상 수많은 사람들이,

하지만 그것은 결국 하나의 노래다. 똑같이 아름다운 노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로 우리들에게 익숙한 작가 미치 앨봄. 그가 자신이 어릴 때부터 다녔던 유대교 회당의 랍비 렙으로부터

렙이 죽은 후의 추도사를 부탁받는 것으로 이 책은 시작된다. 오랫동안 자신의 종교를 떠나있었던 미치 앨봄은

렙의 추도사를 쓰기 위해 회당에서만 만났던 랍비 렙이 아닌 렙이라는 사람에 대해 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의 집을 방문하고 그가 일하는 회당을 방문해 그에 대해 알아가고자 한다.

추도사를 준비하기 위해 시작한 일은 렙의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8년간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 8년간의 만남에서 미치 앨봄은 자신이 잃어버리고 놓아버렸다고 생각했던 유대교의 신앙적 뿌리 뿐만 아니라

삶 그 자체에 대한 하나님의 역사하심, 일하심을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렙으로부터 배우게 된다.

 

렙과의 만남 도중에 우연히 찾아가게 된 한 기독교 교회. 그곳에서 미치 앨봄은 자신들의 유대교 회당과도 다르고

다른 교회들과도 너무나 다른 헨리 코빙턴이라는 한 목사를 만나게 된다. 일반적으로 느껴지는 목사의 이미지와 너무 다른 헨리..

그렇지만 미치 앨봄은 헨리를 보면서 헨리와 렙 사이에 공통된 일치점들을 발견해 나가기 시작한다.

유대교의 하나님이 기독교의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이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으심에 대해 유대인들이 모르고 인정하지 않는 부분 외에는 기독교가 유대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 맞다.

 

미치 앨봄은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속해 있었던 유대교 회당과 헨리를 만나고 느낀 기독교에 대한 감상과 유대교 회당을 둘러싼

디트로이트 지역의 가톨릭 교회들의 이야기를 동시에 하며 모든 종교에 동일한 지점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종교 다원주의에 대해서 비판적인 입장이고 유대교와 가톨릭, 기독교 모두 동일하신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 종교이기 때문에

그리고 기독교가 단지 종교 그 자체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지금도 변함없이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에

미치 앨봄의 종교 다원주의적 관점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지만 유대교 랍비 렙과 마약중독자였던 목사 헨리 코빙턴

이 두 사람의 삶을 통해 미치 앨봄이 무엇을 발견했는지는 알 것 같다.

 

단지, 그것을 제외한다면.. 이 책은 영적인 부분에 대해 고찰하게 해 주는 책이었고, 진짜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를

보여주는 책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모든 영적인 책들이 다 영적으로 좋은 것은 아니기에 경계하며 분별하며 읽으려고 많이 노력했다.

하지만 나 역시 유대교 랍비인 렙과 개신교 목사인 헨리 코빙턴을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 것은 사실이다.

이 책은 종교다원주의를 담고 있어서 정확한 기준이 서 있지 않은 사람이 읽었을 때 혼란스러워할 수도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하나님이 정말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어느 정도의 예시 혹은 대답을 들을 수도 있겠다.

 

미치 앨봄이 말한 것은 그런 것인 것 같다. 그 어떤 종교적 형식이나 관습을 떠나 렙과 헨리의 삶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분명히 계시며

지금도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옳은 길로 가기를 원하고 계신다는 것, 그리고 각자의 삶에 하나님께서 분명한 목적과 이유를 주셨다는 것, 그들이 어디서 어떻게 태어났든, 자라면서 무엇을 경험하고 경험하지 못했든, 그들이 죄 가운데 빠졌든 아니면 의롭게만 살았든,

각자의 삶에 대한 목적과 방향성을 가지고 우리의 삶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이끌고 계시다는 진리는 변치 않는다는 것. 바로 그것 아닐까!

 

<책 속에서..>

 

 

p.303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져도 우리는 막막한 공허감과 허탈감을 느낀다. 아무리 많은 학식을 쌓고, 아무리 큰 성공을 거둔 사람이라 해도 괴로워한다.

그들도 우울해 하고, 무언가를 갈망하고, 상처를 입는다. 그들은 아래를 내려다보는 대신 위를 올려다봐야 한다. 나 역시 바라봐야 했던 그곳을.

세상 모든 소음에서 등을 돌리고 자기 자신의 조용한 숨소리에만 귀를 기울여 보면, 우리는 누구나 똑같은 것을, 즉 위로와 사랑, 마음의 평화를 갈망하기 때문이다.

 

p.337

나는 마음 속으로 그의 초라한 교회를 떠올렸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누구나 삶이라는 지붕에 구멍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닐까.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내리는 구멍, 슬프고 불행한 일이 거센 바람처럼 몰아쳐 들어오는 구멍 말이다.

우리는 세상의 공격 앞에서 한없이 나약해지고, 다음번엔 어떤 폭풍이 몰아칠지 두려워한다.

하지만 그날 설교하는 헨리 목사를 보면서, 그리고 그의 교회를 도와주러 찾아온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나는-언젠가 렙이 말씀하신 대로-

믿음만 있으면 그 구멍을 수리할 수 있음을, 사람들이 진정으로 변화할 수 있음을 확실히 믿게 되었다.

 

p.341

그때 나는, 내가 렙이나 헨리 목사와 보낸 그 모든 시간들이 의미하는 바를 깨달았다.

신앙이란 결코 어떤 결론을 내리는 일이 아님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공부하고 무언가를 발견하는 일임을.

하나님을 상자 하나 안에 담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야기와 전통과 지혜로운 깨달음을 모으고 또 모을 수는 있다.

그러면, 때가 되면, 굳이 애써 다가갈 필요가 없다. 이미 어느새 하나님은 당신 옆에 와 계실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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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적의존 - 하늘의 모든 좋은 것을 받는 삶 김길 목사의 제자도 시리즈 4
김길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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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 수도 없는 실수 속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돌이키는 훈련을 반복하면, 점점 자신의 연약함과 욕심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으로 자라나게 된다. 사람은 저절로 하나님의 사람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원칙이 나의 삶을 다스리고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으로 전파될 때까지 고통스런 훈련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명동 길거리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대로 예배하는 김길 목사님. 목사님의 제자도 시리즈 네번째 책. 전적의존이다.

사실 내가 요즘 가장 많이 고민하는 부분이 이 부분이다. 하나님께 붙들리고 어느 정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던 시간이 죄다 무너져 버리고, 또다시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와 나는 얼마나 죄인인가를 반복하면서

도대체 나라는 인간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손톱만큼이라도 있는가에 대해 좌절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셔서 참 다행이고, 우리의 연약하고 잘 무너지는 성품을 너무나 잘 아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으면 살 수 없도록 인간을 만드셨다. 지금도 기회만 되면 하나님 뜻이 아니라 내 힘으로 살려고

아둥바둥 대다가 또 좌절하는 나에게, 하나님은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고백하고 인정하게 하신다.

 

우리는 그렇게 누구나 각자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훈련시키시고, 하나님의 방법에 맞게 살아갈 수 있도록, 즉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존하는 방법을

계속해서 훈련시키시고 가르치신다. 왜 나에게 이렇게 빡센 훈련을 시키느냐고 가끔 건방지게 하나님을 흘겨볼 때도 있지만,

그래도 그분안에 있는 것이 가장 기쁘고 행복한 삶임을 알기에, 이제는 그냥 되는대로 내버려 둘 수가 없다.

예전엔 5년 넘게 말씀과 기도 한 번 없이 잘 산다고 착각하며 죽음의 길을 가고 있었는데, 지금은 어려움과 힘든 상황이 와서 넘어졌다가도

내 모자라고 부끄러운 모습에 고개조차 들 수 없을 때에도, 회개하며 "그래도 하나님이 계시니 얼마나 다행이냐" 싶은 걸 보면,

이전의 삶에 비해서 하나님이 참.. 나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가시는 과정 중에 있음을 또한 감사함으로 깨닫게 된다.

요즘 또 살살 눈치봐가며 내 맘대로 살고 싶어 안달난 스스로를 다잡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하고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 책을 통해 다시 되짚어 보고 내 행위와 마음을 점검해 보는 시간이었다.

 

<책속에서..>

p.16

다윗이 왜 왕이 되었는지 잘 모른다. 하나님의 기준이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아무런 검증도 되지 않은 양치기 소년이 왕으로 선택된 과정과 판단을 누가 알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문제이다. 그래서 은혜이다.

 

p.17

하나님은 기적을 뚝딱 베푸시기 전에 사람을 만들어가는 오랜 훈련을 하신다.

개그맨은 웃기면 잘나간다. 그리스도인은 은혜 받으면 잘나간다. 예수님이 베푸시는 은혜를 사모해야 한다.

은혜 베푸시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노력도 하고 재능도 닦아야 한다.

 

p.23

인생에서 가장 큰 위기는 오직 예수님밖에 없고, 오직 은혜밖에 없다는 의식이 약해지는 순간이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우린 거지입니다."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돌아가야 한다.

 

p.24

용서받은 사실을 잊지 않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항상 가난한 마음으로 은혜를 구한다면...

 

p.26

우리는 하나님을 누구로 알고 있는가. 머리로 아는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아는 하나님 말이다.

기도할 때 주로 이야기 하는 것들을 잘 분석하고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하나님이 누구시며 그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관심을 갖는 기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기도가 많은지 아니면 자신의 필요를 더 많이 이야기하는지 살펴보면 된다.

 

p.27

하나님은 우리가 욕심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도 우리를 바로 징계하시거나 관계를 끊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욕심에 반응하시지 않는다.

다만 욕심이 우리를 붙잡아 죄로 가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 손상을 입히고 인생을 잘못된 방향으로 몰고 갈 뿐이다.

 

p.31

하나님 아버지는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어도 우리가 돌아오기만 한다면 받아주신다. 우리는 돌아가야 한다.

 

p.40

자신의 삶에 큰 문제가 없고 큰 죄를 짓지 않았어도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가 전과 같지 않다면 회개와 각성이 필요하다.

입으로만 섬기는 하나님은 진짜 하나님이 아니다. 관계가 회복되려면 자신에게 정직해야 한다. 나는 하나님을 어떻게 대하고 있으며, 그분과의 관계가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가를 정직하게 봐야 한다.

 

p.43

말씀은 경험되어야 한다. 말씀이 지식으로만 남으면 믿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되지 않는다. 경험하여 아는 것이 진정한 앎이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선하신 능력을 베푸신다는 것을 경험해야 그 말씀이 진짜 삶의 규범이 될 수 있다.

 

p.44

사람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시는지 잘 모른다.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자기 마음대로 일을 저지르는 위험천만한 행동을 한다.

삶의 과정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고 익힌 사람은 반드시 그것을 최우선 과제로 알고 실천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p.47

하나님이 모든 일에 주도권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 의존에 문제가 생기면 모든 것에 문제가 생긴다. 이는 절대적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의존의 문제를 소홀히 여긴다.

 

p.48

하나님을 의존하지 않을 때 우리는 반드시 무언가를 의존해서 살게 마련이다. 자기 의로움이든 원수의 유혹이든 그 무엇이라도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의존하지 않는 것을 가장 싫어하신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8:2,3)

 

p.50

하나님은 인정받지 못하고 굶주린 상태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는지, 하지 않는지 보고 싶어 하신다.

낮아지고 배고픈 것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시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p.51

교만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이다. 교만함은 마음의 내용이다. 말하지 않아도 그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이다.

그들은 먹고사는 데 문제가 없어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게 됨으로써 하나님을 잊어버린다. 사람의 이런 속성을 하나님은 이미 알고 계신다.

 

p.68

성경은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 빚도 지지 말라고 하셨음에도 사람들은 빚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p.77

재정을 다스리는 것은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고, 삶에 대한 통제력을 높인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돈에 끌려가지 않고 내가 원하는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다. 재정에 있어서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p.82, 83, 85

우리의 기도에는 항상 죄 문제에 대한 깊은 고백과 성찰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죄를 지었던 순간부터 하나님과의 동행은 깨어진다.

죄는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트리므로 관계가 회복되자면 죄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하나님과 점점 친밀해진다면 죄도 그 관계 안에서 해결될 것이다. 나의 죄의 영역에서 하나님을 의존하고 은혜를 받는 것이 깊어질수록 관계는 친밀해지고 해결과 회복은 그만큼 빠르게 일어난다.

하나님께서 나의 죄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신다면 나도 심각하게 여기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비로소 친밀한 관계 안에서 죄가 다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고, 오직 하나님만 사람의 죄를 해결하실 수 있다.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해주셔야 우리는 비로소 메마른 땅이 아니라 촉촉한 대지 위에 풍성한 곡식이 심겨진 것과 같은 삶을 맛볼 수 있다.

 

p.87

순종은 은혜를 깊이 받은 사람, 조건 없는 용서를 받은 사람, 넘치는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이 잘한다.

 

p.88

의인과 악인을 가르는 기준은 사람의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의 용서하심이다. 하나님께 용서받은 사람들이 의인이다. 의로움은 자신의 행위로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허물을 사하시고 죄를 가려주시는 하나님으로 가능하다. 그러므로 자신의 죄를 아는 사람이 죄를 정직하게 고백하고 하나님의 의로움으로 깨끗함을 받을 때, 의로워지는 것이다.

 

p.94

다윗이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 한 모든 일을 하나님은 보고 계셨다. 항상 기억해야 한다.

자신의 모든 행동과 마음의 동기가 감찰되고 있다는 것을. 하나님을 피하여 숨을 곳은 없다.

 

p.97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도 죄를 짓는다. 나를 보고 계신 하나님은 두렵지만 죄가 더 달콤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는 죄를 덮고 싶어 한다. 나중에야 어떻게 되든 당장은 죄를 덮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지은 죄를 스스로 보는 것도 힘들거니와 그것을 남이 아는 것은 더 두렵다. 죄를 덮기 위해 더 큰 죄를 짓더라도 끝까지 죄를 감추고 싶어한다.

 

p.103

하나님이 사람을 평가하실 때 기준은 '그가 어떤 성취를 했는가'가 첫번째가 아니다. 대신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을 잘 따랐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p.119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모양이 되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속량하셨다. 그는 우리와 동일하게 시험과 고난을 받으셔서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아신다. 고난과 시험에 빠진 우리를 돕기 위해 그는 십자가를 지셨고, 우리 죄를 단번에 해결하시고 속량하신 것이었다.

 

p.121

회개를 하자면 나의 죄를 위해 피 흘리신 예수님의 심정을 구할 필요가 있다. 이 부분에서 간절한 기도가 필요하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9:14)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는 깨끗함을 얻었다. 예수님의 보혈은 우리의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해 피를 흘리셨다는 사실에 대해서 인격적으로 느끼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p.127

죄를 지은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있어야 할 진지한 관계의 회복없이 누가 용서받았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용서는 인격적인 관계 안에서 세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하나님께서 하시지 않은 용서를 사람이 대신함으로써 하나님과 보다 친밀한 관계로 발전하는 것을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

 

p.131

평소부터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잘 연결되어 있다가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새롭게 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예배를 드렸다는 것도 소중하지만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살아있는 예배를 드리는 것이 더 아름답다.

 

p.133

우리가 회개하는 것은 다시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이다. 회개했으면 헌신해야 한다.

그래야 회개가 반복되는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끝낼 수 있다. 고난과 헌신은 우리를 참된 회개로 이끌어 준다.

 

p.138

그 믿음은 내 행위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내가 잘해서 예수님께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사탄의 핍박에 넘어졌지만 예수님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신다는 그 사랑에 대한 믿음이다. 언제라도 실수할 수 있지만 믿음이 떨어지면 안 된다. 사랑이 식어지면 안 된다.

 

p.143

(요21:18) 그것은 베드로의 죽음에 관한 말씀이었다. 남이 원하는 곳으로 끌려가는 삶. 예수님을 사랑하는 삶. 사랑은 쉽지 않다. 목숨을 걸어야 한다.

예수님을 사랑하려면 목숨을 바쳐야 한다.

 

p.149

거룩함의 원천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다. 항상 나의 죄보다 은혜가 더 크다.

은혜가 내 안에서 커질 때 나는 하나님과 함께 나의 죄를 다루어갈 수 있다.

 

p.154, 157

하나님은 우리의 실수를 덮어주신다. 어느 누구도 우리 죄를 해결해 줄 수 없다. 그분만이 우리 죄를 해결하실 수 있다.

우리는 울고 마음을 깨트리는 회개가 무엇인지 모르는 시대를 살고 있다. 나의 죄와 실수에 대하여 슬픈 마음이 없으면 회개는 없다. 나의 죄에 대해서 두려움이 아니라 진실로 슬픈 마음이 들어야 한다. '죄를 책망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성령께서 하시는 일'

 

p.159

하나님은 우리 죄를 보시면서 마음이 가난하셔서 구원하고 싶어 하신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 죄와 실수들에 대해 가난한 마음을 갖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천국의 마음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진다. 천국은 마음이 가난하신 하나님이 주인 되시고, 그 가난한 마음을 이해하는 우리들이 순종하는 나라이다.

 

p.165

정죄감은 스스로를 죽인다. 우리는 하나님께 용서받아야 하고 또 스스로를 용서해야 한다. 자신을 용서하는 것은 나를 용서하신 하나님이 나를 보는 것처럼 보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죄를 등 뒤로 던지고 기억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 맡겨버린 죄를 다시 찾아오지 말고 자유를 주신 하나님을 믿고 자유하자.

 

p.174

예수님과 친밀한 관계일 때 우리의 삶 속에는 그분과 함께하는 감동이 있다. 당연히 간증도 있다.

간증이 꼭 기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그분과 함께 생각하고 나누었던 마음과 받은 은혜에 감동한 내용들,

결국 '내가 겪은 예수님은 이런 분이셨다'라는 것이 간증이다. 예수님과 친밀하게 동행할 때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쉬워진다.

 

p.175

예수님과 친밀한 동행을 하게 되면 나의 삶이 감동으로 충만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도 반드시 그런 감동을 나누고 전달하게 된다. 절대 가만있지 못한다. 감기와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은 숨길 수 없다고 한다. 은혜는 사랑보다도 더 숨길 수 없다. 예수님께 받은 은혜는 더더욱 그렇다.

 

p.178

만약 우산을 잃어버렸다면 어디까지 우산이 있었는지 하루 동안의 움직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생각할 것이다. 마찬가지다. 예수님과 동행했던 시간을 기억하고 동행을 잃어버린 순간을 생각해내야 한다. 어디서부터 예수님을 무시하고 나 혼자 와버렸는지 구체적인 사건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그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p.200

하나님은 회개하는 그의 자녀들에게 평강을 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평강하면 삶의 모든 영역에서 평강을 누릴 수 있다.

 

p.214

하나님이 아니면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생각으로 뒤도 보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원칙을 목숨처럼 지켜야 한다.

리더가 목숨처럼 그 원칙을 지킬 때 사람들이 설득된다.

 

p.219

지금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분별해서 순종해야 한다. 혹 실수가 있다면 다시 돌아가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면 된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내 인생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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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 차일드
팀 보울러 지음, 나현영 옮김 / 살림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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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잠, 긴 잠. 가능하리라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긴 잠. 마치 여행과도 같은 잠. 꿈을 통과하는, 기억을 통과하는, 그 자신을 통과하는.

고요한 방, 열린 발코니 문 너머로 들리는 바람 소리와 파도 소리. 오후가 저녁이 되고 저녁이 밤이 되며 시시각각 달라지는 리듬."

 

끔찍한 교통사고로 기억을 잃은 소년 윌, 그리고 그에게 나타나는 핏빛 환영.

검은 머리칼, 푸른 눈동자의 소녀와 다섯 개의 얼굴 없는 검은 그림자. 윌은 의미를 알지 못하고, 자신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윌은 아름다운 해안 마을 헤이븐스마우스에 뭔가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그러나 아무도 환영을 보는 소년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미친 정신병자 취급을 받는다. 부모조차도 그를 믿지 않고

그를 유일하게 믿어주는 여자아이 베스와 해안가를 떠도는 떠돌이 크로와 아이 먹..

환영 같은 소녀가 그에게 말하고자 하는 건 무엇일까?

 

팀 보울러의 작품. 사실 팀 보울러라는 작가가 주는 작품의 신뢰성과 메리트가 있기에 망설임 없이 읽었는데

조금 실망이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전의 팀 보울러가 현실 속에 환상을 녹여 내어 공감을 일으켰다면

이번 블러드 차일드는 마치 환상문학 같은 느낌이 너무 많이 들어서 이야기가 겉돌고 맴도는 느낌이 들었다.

기본 중심라인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 소년이 보는 환영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이야기는 대체 무얼 말하고 싶은 건지

독자에게 어떤 것을 느낄수 있게 혹은 생각할 수 있게 화두를 던지는 것인지 중반 이후까지도 알기가 어렵다

그냥 환상적이고 이질적인 그 풍경 속에 기억을 잃어버린 소년과 그 소년이 꾸는 환상같은 꿈이 계속 일렁여서

보는 사람도 그 일렁이는 환상에 동참한 듯 머리가 아프고 토할 것 같은 기분, 그리고 썩 좋지 않은 핏빛 그림자의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 부분에 있어서는 이해가 되었지만 썩 깔끔한 마무리의 느낌은 아니어서(사건 자체가) 찜찜한 느낌이 남아 있다.

환상적이고 영적인 것을 쫓다가 작품이 점점 이상해져 가고 있는 파울로 코엘료의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무섭고 으스스하고 질척거리는 느낌이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지배하다 보니 읽고 나서도 기분이 영 아니고 찝찝하다..

 

세상은 얼마나.. 잔인한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했던 작품.

오히려 이건 영화로 만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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