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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호 - 1950년, 받지 못한 편지들
이흥환 엮음 / 삼인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조선인민군우편함 4640호!
미국은 전쟁을 끝내고 이 우편함에 담긴 수많은 편지들을 무슨 생각으로 가져갔을까?
이렇게 살갑고,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편지들조차 전리품으로 여긴 것일까?
반세기가 넘는 시간동안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 잠자고 있던 편지들이 빛바랜 얼굴을 보여준다.
- 전사보다 더 생생하고 소설보다 더 감동적인- 이 책에 실린 편지들은 아직 흐르고 있는 역사다. 주소에 나타난 바와 같이 조선인민군우편함에 담겨 있던 편지들은 대부분 북에 사는 사람들의 편지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한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전선으로부터 38선을 넘어 압록강변의 초산까지 진격하였던 유엔군 반격 및 북진기(1950년 9월 15일-1950년11월25일까지)에 노획한 물건들일 것으로 짐작된다. 편지에는 미군의 폭격에 낮과 밤을 달리하여 북으로, 북으로 향한다는 내용도 보이고, 폭격에 목숨을 잃은 이야기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날씨가 추우니 ‘도랑크 안에 흰 내복을 원근이에게 입히시요’(p. 54)라는 애타는 엄마의 편지, 공습이 계속되는 가운데 가족들 걱정으로 ‘아이들 죽이지 말고 잘 길러주시우’(P.108)라고 아내에게 부탁하는 남편의 편지, 인민군에 입대한다고 말도 못하고 입대해서 죄송하고 그립다는 아들의 편지, 군에 입대한 자식의 생사를 알지 못해 애타하는 부모의 편지, 형제자매, 친구, 동료, 애인 등을 향한 이 편지속의 주인공들은 정말로 너무나 생생하여 읽는 동안 애간장을 녹이게 하였다. 이 편지는 결국 주인들에게 전달되지 못하였다. 그러니 그 당사자들이 그 후 다시 만났는지, 혹은 폭격에 목숨을 잃었는지, 아니면 영영 생이별하였는지 알지 못한다. 이 책을 편집하여 낸 이흥환님의 바람처럼 행여, 먼 세월 돌아왔지만, 이 책을 통하여 한 사람이라도 다시 만날 수 있는 기적이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간절히 바래본다. 이념과 전쟁의 역사 틈새에서도 인간의 삶은 일상적으로 흘러가는데, 이 사실이 또한 처절하게 애달프고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중공군 침공기에는 남쪽의 사람들이 우편함에 넣었던 편지들이 그들의 전리품으로 실려 갔을지도 모르는 일, 그렇다면 중국이나 소련의 비밀문서 보관소에 그 편지들이 잠자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곳에 있을지도 모를 살아있는 역사가 보관소에서 영원히 잠들지 않고 빛을 만나 사람들에게 읽혀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편지를 통하여 짐작해 볼 수 있는 것들이 참 많은 것도 이 책을 읽는 소소한 기쁨인데, 솔직히 ‘기쁨’이라고 표현해 놓고 보니 너무 미안하다. 전쟁은 그 당사자들에게 있어 무엇을 갖다 붙여도 결코 웃을 수 있는 역사가 아닌 것을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