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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어떻게 끝나는가
크리스 임피 지음, 박병철 옮김 / 시공사 / 2012년 1월
평점 :
<세상은 어떻게 끝나는가?>
그보다 먼저 삶은 또 어떻게 끝나는가?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았을 물음이다.
이 책의 저자인 크리스 임피(Chris Impey)는 애리조나 대학교의 천문학과 교수로 우주생물학을 연구하는 세계적인 학자이다. 여기서 우주생물학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자면, 우주생물학이란 지구를 비롯한 우주의 생명을 연구하는 신생학문으로서 주로 생명의 기원과 진화과정을 연구 범위로 한다. 지구 밖 존재들에 대한 관심이 증폭됨에 따라 우주생물학은 점점 더 각광받고 있으며 현재 물리학, 천문학, 생물학 등 온갖 분야의 연구자들이 이 학문 분야로 몰려들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이 책은, 저자가 모든 만물의 ‘끝’을 조명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서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각 장마다 수 많은 통계 자료와 작가의 사색적인 고찰을 통해, 생명 있는 것들이 어떻게 생겨나고 진화해가며 멸종하고 또 새로운 종이 생겨나는지를 현란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중 조금 긴 문단이긴 하지만, 우주의 나이에 대해 서술해 둔 부분을 그대로 옮겨 보자면 다음과 같다.
과학자들은 빅뱅의 잔해로 남아 있는 마이크로파 배경복사를 분석하여 우주의 나이가 약 137억 년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것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 이해하기 위해, 시간의 스케일을 137억 배로 줄여서 생각해 보자. 지금은 12월 31일 자정(또는 그 다음해 첫날)이다. 이 해의 1월 1일이 밝던 순간에 빅뱅이 일어나 우주가 탄생했고,9월 중순경에 행성이 처음으로 형성되었으며, 12월 21일이 되어서야 비로소 동물이 번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간이 지구에 처음 등장한 것은 12월 31일 밤 10시 50분경이다. 르네상스와 농업혁명, 산업혁명, 그리고 우주시대의 개막과 컴퓨터의 등장 등은 모두 12월 31일 밤 11시 59분 59초 이후에 일어났다. 이 시간 스케일에서 인간의 수명은 0.1초가 조금 넘는 정도이다. 우주의 수명을 1년으로 압축하면 희망과 꿈, 야망 등 모든 인간사는 눈 깜짝할 시간 안으로 압축된다.(p.24)
우리가 태어나고 자라고 살다가 죽는 것이 우주의 역사로 조명해 보자면 찰나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태어나는 것은 한조각 구름이 일어나는 것이요, 죽는 것은 한조각 구름이 스러지는 것이니 생과 사에 얽매임 없이 자유롭게 살라는 말이 근거 없이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겠다. 물론 작가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이 아니다.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종들의(당연히 인간도 포함하여) 생성과 진화와 멸망에 대해 얘기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엄청난 무게가 실렸음직한 주제를 작가 특유의 위트와 버무려 오히려 즐겁게 읽어갈 수 있도록 글을 썼다는 데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아주 흥미로운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된다. 그 중 하나를 보자면, 인간은 스스로를 지구의 지배자로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미생물의 세계에 세 들어 사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그의 말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믿을 수밖에 없을 만큼 그 이유에 대해 세세하게 알려주고 있다. 미생물뿐만 아니라 소행성, 운석, 별, 외계인, 그리고 또 다른 생명체들에 대해서도 온갖 학설과 증거와 추론을 통해 시원시원하게 알려 준다.그의 글을 따라 가다 보면, 왠지 진지하면서도 건듯 거리는 듯 한 느낌이 전해져 와서 상쾌하다.
그가 말 한 것처럼, 어쨌거나 우리는 생각이 없는 물질보다는 우월한 존재임이 분명하고, 마술 같은 사건으로 가득 찬 이 우주에서 마지막에 어떤 일이 일어나건, 그게 무슨 상관인가? 즐겁게 살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세상에 종말이 올 것이라고 미리 절망할 필요도 없고, 이 드넓고 오묘한 우주 속에서 인간으로, 나아가 내 자신으로 살아가고 있음에 오히려 감동하고 전율해야 할 일이다.세상이 어떻게 끝나는지, 우리 삶이 어떻게 끝나는지는 과학자들에게나 그 연구를 맡겨두고 우리는 그저 즐겁게 열심히 살면 되는 것이다. 재미있는 책이다. 기독교인들이 이 책을 읽으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 궁금하다. 특히 인류의 기원에 대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