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숲에 길을 묻다 세계사 시인선 118
김선태 지음 / 세계사 / 2003년 2월
평점 :
품절


나는 김선태라는 시인을 알지 못한다. 출판사와 시집제목이 나를 끌어당겼을 뿐. 그의 흑백사진을 본다. 눈 덮인 어느 숲 속,소나무에 기대어 그는 어디론가 떠나는 꿈이라도 꾸는 것일까.시선이 애잔하다. 여덟줄로 요약된 그의 이력을 본다. 특별할 것도 없고, 흔히 말하듯 '잘나가는'것도 없는 그저 평범하디 평범한 , 수많은 '몽돌'중의 한 몽돌같은 이력이다. 이원재 시인은 해설에서 '김선태 시의 엔진은 원(둥근 것)이다'고 말한다. 대체적으로 그렇다.

그의 시는 전체적으로 낮게 가라앉은 짙은 색상의 감정이다. '달빛','햇빛','동백꽃','백련','어린 선인장 꽃','함박눈','은어떼','은빛 감성돔' 등 환한 사물과 빛깔들이 도처에 앉아 있지만 그것들도 왠지 아련하게,어쩌면 차분하게 앉아 있는 모습으로 온다. 방방 뜨는 환함이 아닌 차분한 빛남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그의 시는 결코 절망적이거나 냉정하거나 냉소적이지 않다. 따뜻한 기운이 '은근하게' 퍼져옴을 느낄 수 있다.

- 구멍이 뚫린 물주전자처럼 반쯤 울음을 길바닥에
질질 흘리고 온 세월이 문턱에 당도하자마자 직각
으로 걸려 넘어지는 불혹. 한번도 세상의 칼바람
을 이겨내지 못한 마음이 하루에도 몇 번씩 어디로
유배를 떠나는데, 그렇게 생의 어디까지를 떠돌고자
마음이 오늘은 또 한 번 눈송이처럼 잘게 부서져 진도
임회 바닷가 산산 엎으러지고 있다. 항시 어깨에 잔뜩
추위를 지고 다니는 가난도, 뻥 냉가슴을 포탄구멍처럼
가지고 가 버린 사랑도 여기 함께 엎드려 겨울 한 철을
보내고 있다.-
'마음의 유배 중 일부'

- 며칠째 갈치를 낚지 못했다
단 한 번만이라도 짜릿한 손맛을 보고 싶은데
그래야 낚싯대를 접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오기만 발동할 뿐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
.
.
결국 밤새 헛물만 켜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도 여전히 갈치는 물지 않았다.
늘어진 낚시줄처럼 시간이 갔다.
갯바위에 누워 보는 풍광만 죄 없이 아름다웠다.-
'갈치낚시 통신 중 일부'

이런 시편들에서는 차라리 눈물이 난다. '탐진나루에서'는 '아프고 환한' 추억의 강둑에서 '노을처럼 진하고 따스하'게 삶을 느끼는 그의 감성, 그의 성찰이 아름다워 나도 그렇게 눈물이 나곤 했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아름다울 때' ' 나 그냥 눈물 난다'(눈물에 대하여)는 시인... 그는 아마도 낚시와 볼링과 여행이 삶의 취미인듯 하다. 그 행복속에서 '초연한 기다림'도 배울줄 알고 '둥글어서 잘 구르는 힘'도 깨우치며, '강둑에 서서 깊어진 강의 말씀에 귀기울이고 있는 뱃사공'도 되어 보는 것이다.

김선태 시인은 그가 나고 자란 남도에서 역사적, 사회적인 거대 담론을 논하고자 애쓰지 않는다. 이문재 시인의 말처럼 그의 시는 그대로가 '자연산'이다. 아프고 굴곡지게 살아온 추억을 거름삼아 자잘한 일상에 애정으로 시선 던지며 끊임없이 '둥근 것에 대한 성찰'을 해 나가는 시인이 김선태, 바로 그다. 그 성찰이 있어 그의 시는 일상적이면서도 아주 깊다.

'나무늘보'라는 동물의 속성은 어쩌면 평범한 우리들과 닮아 있는지도 모른다. 인기나 평가에 연연해 하지 않고 참 진솔하게 쓰여진 그의 시가 어머니의 바람대로 '홍시같은 시'가 되어 '차고 어둔 마음 구석마다 따스한 불 밝히'는 시가 되기를 기대하고, 믿는다. 나도 그 백련사 동백숲에 들어 오솔길을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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