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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구의 포구기행 - MBC 느낌표 선정도서, 해뜨는 마을 해지는 마을의 여행자
곽재구 글.사진 / 열림원 / 200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래전 섬에서 그를 만난 적이 있다. 그리 커 보이지 않는 키에 벌써 눈에 띠게 솟아난 흰 머리들, 편안하게 생긴 얼굴과 아이의 그것을 닮은 맑고 선한 눈빛, 미소가 떠날것 같지 않은 입술.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의 모습이 선명한 것은 그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향기가 그만큼 인상적이고 향기로웠던 까닭이다. 그후로 나는 그의 팬이 되었다. <사평역에서>,<서울 세노야>,<꽃보다 먼저 마음을 주었네>, <참 맑은 물살>,<아기 참새 찌꾸>,<내가 사랑한 사람 내가 사랑한 세상>등 그가 써낸 글들을 사모하듯이 읽곤 했으니까.
이번에 나온 그의 기행산문집 '포구기행'을 읽게 된 것도 참 행복한 일임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책을 보는 순간 내 생각이 나서 환장할 것 같더라며 전해준 그녀의 마음부터가 너무나 행복했으므로. 1판 1쇄 발행이 2002년 10월 9일인데, 10월 24일에 벌써 2쇄 발행을 한 걸 보면, 이 책도 그의 다른 책들처럼 이 땅의 수많은 영혼들에게 무량한 감동과 꿈을 심어줄 것임에 틀림없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서 '포구'를 찾기란 그닥 어려운 일은 아닐터이다. 그러나, 그 크고 작은 포구들을 일일이 다니며, 그곳에 뿌리 내리고 사는 이들을 무한한 애정으로 감싸 안고 이토록 아름답게 포구 이야기를 들려 줄 수 있는 사람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그는 해가 뜨고 지는 포구에 서서, '인생이 아름다운 것은 우리들 삶의 골목골목에 예정도 없이 찾아오는 외로움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쓴 외로움을 받아 들이는 방식에 따라 한 인간의 삶의 깊이,삶의 우아한 형상들이 결정된다'고 친절히 알려준다. 혼자 걷는 여행의 길 위에서도 '조금 외로운것은 충분히 자유롭기 때문이야'라는 넉넉한 여유를 잃지 않는 그는, 바다의 물살을 보며 '육지로 닿은 물살들이 소멸해가는 것처럼 존재하는 그 모든 것은 스러져 간다'는 해탈의 경지를 읽어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쓸쓸함의, 허허로움의 큰 언덕을 넘어서면 그곳에도 분명 또 다른 세계가 기다리고' 있을 것을 알며 그 세계는 '인간의 영역'이 아닌 신의 영역이므로 우리는 지금 이순간, 이곳의 삶을 사랑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도 따뜻하게 깨우쳐주고 있다.
'우도로 가는길'에서는 집어등의 불빛을 보고 '삶의 속내음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이 불빛들은 아름답기 그지없다'고 노래하기도 한다. 자신의 마음을 미련없이 그곳 길과 바다에 다 주었다는 거제도 학동, 구조라, 지세포와 같은 포구들을 다시 찾아가서는, 문명의 냄새가 물씬 배게 변해버린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인의 마음 한켠에 이미 남아 있는 예전의 그 풍경들이 있으니 그곳은 그에게 영원히 아름다우리라.
살면서 여행을 꿈꾸지 않는 이 누구 있으랴. '포구기행'을 읽으며,나 또한 새로운 떠남에의 꿈을 꾼다. 그 꿈을 품에 안으며 나는 오랜만에 마음이 따뜻하게 적셔지는 것을 느낀다. 시인의 음성은 나직하고 부드러우며,시선은 어느 한 순간도 따뜻한 빛을 잃지 않으며,삶의 세밀한 부분도 결코 놓치지 않는다. 그의 영혼은 '지독히도 흉물스러운 일상'들도 그리워 하며 다시금 먼 여행에의 꿈을 꾼다.
책 사이사이에 놓인, 목선이 머물고 있는 개펄의 모습이나, 떨어져 내린 모습이 오히려 더 아름다운 지심도의 동백꽃, 하늘과 바다가 하나가 되는 노을빛, 어부들의 삶의 모습 등 그의 눈에 포착된 풍경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가슴이 설레는 '포구기행'. 분주한 일상에 쫓겨 여유없이 달려가는 사람,그러면서도 자신의 영혼을 늘 들여다 보는 아름다움을 지닌 이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