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수견본집 K-포엣 시리즈 8
김정환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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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포엣시리즈는 아시아출판사에서 한글과 영어로 국내 시인들의 시를 동시에 게재하는 국내 유일 시집으로 아마존에서도 세계 독자들에게 판매하고 있다고 한다. 낯설지만 새롭고 멋진 시도를 하고 있는 아시아 출판사에 큰 호감이 간다


이번에 그 시도의 여덟 번째로 김정환 시인의 시집 자수견본집이 발행되었다. 영문학을 전공한 작가답게 자신의 시도 직접 번역하여 함께 실었다. 자수견본집이라니 무엇인가 궁금하기도 하고, , 영 으로 함께 실린 시들도 궁금하기도 하여 읽게된 책이다.

 

그러나, 많이 어렵다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페넬로페의 실에서 작가는 자신의 규방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신약처럼 작낮게 다정하게 속살거리는 실이라고 한다. 또한 육욕의 미로를 풀고 대낮의 죽음을 짜는 갈수록 가늘어 지는 실이라 부르며 내 생애의 선율 투명(透明) 자수견본집, 5천년 뒤에도 내가 살아있을 것 같다고 표현한다. 작가는 어쩌면 갈수록 가늘어지는 실에 자신의 생애 투명한 빛이나 아름다운 선율을 빚어 내고자 한 것은 아닌지, 정말 내 나름대로 생각하고 해석해 본다.

인생의 결국을 이 시집 제목에 담아낸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도 든다.

 

페넬로페의 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리스 신화를 알아야 한다. 그녀는 그리스신화속에 나오는 오디세우스의 아내이다. 오디세이아 Odyssey에는 트로이 전쟁 이후 남편이 오랫동안 집을 비웠을 때 이타카와 주변 섬들의 많은 지도자들이 페넬로페에게 구혼했던 이야기가 나와 있다. 구혼자들의 끈질긴 요구에서 벗어나기 위해 페넬로페는 오디세우스의 아버지인 라이르테스의 수의를 다 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녀 중의 하나가 비밀을 누설하기 전까지 페넬로페는 3년 동안 매일 낮에 짰던 천을 밤이면 다시 풀어버림으로써 실종된 남편을 저버려야만 하는 재혼의 날을 늦추어나갔다. 그러던 중 마침내 오디세우스가 돌아와 그녀는 구원되었다.


낮에 짰던 천을 밤에 풀어버리는 것을 3년동안이나 반복했으니 그 실들이 갈수록 가늘어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신이 원치 않는 것을 거부하는 하나의 방법, 문득 우리도 살면서 그런 것들이 있고, 페넬로페가 수의를 짜듯이 그럴싸한 명분을 만들어 행동하고 있는 것들이 있을거라는데 생각이 미친다. 작가가 읽어낸 페넬로프의 실 이야기가 살폿 이해되기도 한다.

 

참으로 난해한 시이기는 하지만, 곳곳에 작가의 세심하고도 애정어린 시선들이 놓여있음을 본다. 이제는 나이 들어 언제까지 김장을 하게 될까 염려하는 아내에 대한 이야기나, 미운 다섯 살 손녀를 꿈속에서 야단치고 난 후 부를 노래를 다 부른 가수인형을 쥐어 주며, 아내와 아들들과 며느리들 모두가 그 인형이 되는 꿈을 꾸는 것 등등.

 

난해하면서도 뭔가 친근한 분위기, 느낌들이 있었는데 그게 무엇일까? 따라가다 보니 시인에세이 부분에서 아하! 그것이었구나 라는 생각에 혼자 끄덕끄덕 하였다. 바로 모더니즘이다. 내가 한 창 시를 좋아하고 읽어댔던 시절 80-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분위기의 시들, 그 향기였구나. 마지막 부분에 실린 박수연 평론가의 해설을 통해 나의 자수견본집 읽기는 완성된 듯 여겨진다.


 좀 더 깊이, 집중하여 읽어볼 일이다. 뭔가 느낌이 오지만, 그것을 말이나 글로 표현해 낼 능력이 내게는 부족하다. 그것을 해갈시켜주는 박수연 평론가의 해설과 시인이 직접 쓴 시인에세이가 고맙고 알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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